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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의 설화 (호러스 알렌) - #1. 머릿말

INTRODUCTORY. 안내 

 

코리아Korea, 코리아Corea, 또는 초센Chosen(아침의 고요함)은 차이나와 재팬 사이의 대륙에 위치해있고 만주 및 시베리아로부터 연결된 북위 33~43도 사이에 있는 반도 국가다.

이 지역 및 주변 섬들을 합치면 대략 10만 평방마일 정도가 된다. 인구는 최근의 믿을만한 추정에 따르면 1600만명을 조금 넘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와 마을에 살기 때문에, 국토가 빽빽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기후는 반도에서의 위치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다. 남부지역은 일본을 아열대 기후로 만든 바로 그 남부의 난류의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일본 열도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영향력이 매우 크지는 않다. 중부와 북부 지역은 미국의 중북부 지역과 거의 유사한 날씨를 보인다. 수도에 있는 거대한 강은 겨울 동안에 얼지 않은 날이 거의 없고, 그래서 얼음 위로 무거운 수레가 지나다닌다. 이 얼음은 보존되었다가 여름에 일상적인 용도로 사용된다.

이 나라에는 산이 정말 많고, 강과 강우량도 또한 많다. 북동부 지역에는 거대한 목재가 많이 있다. 계곡은 매우 기름지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잘 경작되어 있다.

천연 광물은 아직까지 초보적인 개발만 이루어졌으나, 그 정도로도 매장량이 매우 풍부하다는 것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특히 금광의 개발 사례를 봤을 때 말이다.

아무리 부정적인 방문객이라도 코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서만큼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인 스스로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다. 아주 옛날부터 그들은 지역별로 어떤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는지를 안내하기 위한 책자가 있었다. 그리고 단지 경치만을 즐기기 위해서 먼 거리까지 여행을 떠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국왕은 절대 군주로서 국가를 지배한다. 그를 보좌하는 것은 수상과, 두 명의 보좌관(왼쪽 장관과 오른쪽 장관)이 있다. 그 다음에는 여섯 개 부서별로 각각 담당관이 있다. 이들은 예절과 의식, 재무, 전쟁, 공공 사업, 사법, 그리고 입법을 각각 담당한다.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두 개의 부처인 외무부(또는 대외부)와 내무부(또는 대내부)가 있는데, 이 두 개의 부서는 외국과의 교류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방금 설명한 공직자들이 왕의 회의체를 구성하는 공식 부처들이다.

국토는 여덟 개의 지역으로 구성되어있고, 각 지방마다 주지사가 파견되며 주지사는 지사, 지방 치안판사, 촌장, 하급 공무원 등으로 완결형 조직이 구성되어 있고 공무원이 부족한 일은 없다.

몇몇 특수한 직책은 왕이 직접 지명한다. 예를 들면 정부 감찰관이 있는데, 그는 변장을 하고서 지역민의 상황을 관찰하고 지방 관리들에게 위법 행위가 있거나 지역민을 억압하는지 등을 살펴본다. 만약 위법상황이 발견된다면 즉결심판을 수행한다.

현재의 왕조는 498년을 이어져왔다. ‘Ye’씨 성을 가진 장군의 반란으로 형성된 왕조라서 예 왕조Ye Dyansty’로 흔히 말한다. 하지만 왕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절대 없다. 사람들에게 그는 거의 신성불가침이다. 높은 직위에 있어서 왕을 만나는 고위 공직자들은 그를 만날때면 땅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고 먼저 왕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을 때에만 말을 한다. 그리고 왕궁 내에서만 사용되는 매우 격식을 갖춘 언어를 사용한다.

세금이 현물로 징수되기 때문에 공직자들의 급여도 돈 이외에 일정 량의 쌀이나 또는 다른 현물로 구성된다. 또한 이 나라에서 유명한 인삼의 판매 수익은 왕이 모두 독점한다. 왕의 개인적인 지갑을 채우는 것이다.

화폐는 일반적인 구리를 사용하는데, 1200개의 동전이 1멕시칸달러로 환산된다. 지금은 새로운 화폐가 구리, , 금 등을 이용해서 주조되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현금은 소액 거래에서 편리하기 때문에 이것들이 금방 대체될 것 같지는 않다.

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여러 지방 정부에 어음을 결재해주는 일종의 은행 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각 지역을 여행하는 공무원들이 돈을 짊어지고 다녀야 할 필요는 없다. 수도에 있는 몇몇 대형 중개인들이 정부의 이와 같은 재무적 거래를 지원하고 있다.

모든 미점유된 땅은 왕에게 귀속되지만, 누구든 토지를 개간하고 삼 년 간 세금을 내면 그 토지가 본인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만약 정부에서 그 땅을 필요로 할 때에는 돈을 주고 구입해가도록 되어 있다.

거래는 판매자가 영수증과 권리양도증서를 작성하는 형태이다. 이 증서들은 지방 관청에 등록하기도 한다. 유언장은 서구 사회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첩의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고 싶은 아버지들이 설령 별도로 유언을 남긴다고 하더라도, 그 유언을 집행할지 여부는 장남에게 달려있다.

남성들의 출생 및 사망 기록이 작성, 보존되고 있으나, 신뢰성은 낮은 편이다. 15세 이상의 모든 남성은 항 성 푸Hang Sung Poo(역주:한성부), 또는 등록 관청에서 등록되어 있으며 그들에게는 이름과 주소가 기입된 표찰이 주어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이와 같은 표찰이 주어지는데, 아이들의 실종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일반적으로 건장하고 강하다. 충성스럽고 욕심이 많지 않으며 지나치게 느긋한 편이지만, 영리하고 배움이 빠르다. 이웃 국가인 중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특성이 많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매우 다른 특성을 보여서, 그 기원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미국 원주민과 닮아있고, 그들의 조상은 북쪽에서 왔다고 믿어지고 있다.(역주: 원문 상으로 조선인의 기원이 미국 원주민이라는 느낌에 더 가깝다: In some slight degree they resemble the aborigines of America, and it is believed that their ancestors came from the north) 이 문제는 아마도 광범위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의 기록된 역사는 대략 삼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의 첫 번째 왕은 오천년 전에 천국에서 내려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오랜 문명의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서양의 역사가 짧은 국가들의 새로운 문명에 대해 오랫동안 빗장을 치고 있던 것도 그럴 법 하다. 한편으로는 이 둘 사이에는 본질의 차이 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알려진 것보다도 서양 문명에 훨씬 더 많은 문제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대 문명 고유의 미덕으로 알려진 것들이 사실은 폐쇄된 자기 충족적 국가에서는 이미 지난 수 세기 동안 수행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예외는 물론 있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수입된 면직물로 지은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의 옷은 겨울에 입을 수 있도록 면과 모직으로 두텁게 충전되어 있고, 표백된 하얀색이나, 또는 연한 파란색 및 녹색으로 염색되어 있다.

쌀은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 가장 필수적인 식품이다. 북부 지역에서는 밀이 더 중요한 식품이다. 가축은 크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키운다. 사람들은 쇠고기를 많이 먹고, 가죽은 매우 중요한 수출 품목이다.

주택은 튼튼하고 편안하다. 외국인들이 살기에도 큰 불편이 없다. 주택의 바닥 아래에 난방용 열대류 시스템이 있다. 이 열대류 시스템은 송기관의 윗쪽에 커다랗고 넓적한 판석을 튼튼하게 부착한 것인데, 이 판석은 아주 두툼하며 표면에는 기름먹인 종이를 접착해서 진하고 어두운 느낌의 광택을 내고 있다. 이 판석을 통해 항상 충분한 열기가 올라오고 연기는 통과하지 못한다.

집들은 대개 단층이고 외벽 안쪽에 몇 채의 건물이 안뜰을 둘러싸듯 지어져 있다. 이 건물들은 보통 신사용 주택으로 사용된다. 건물의 외부에는 두껍게 흙이 발라져있고, 지붕에는 타일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도록 덮여있다. 이 지붕 덕택에 여름에는 집이 시원하다. 방들은 벽의 안과 바깥, 문과 창문에 매우 많은 종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충분히 밀폐된다.

코리아에는 크게 세 개의 신분이 있다. 귀족, 중류층, 일반인이다. 일반인은 경쟁 시험을 통과하는 경우 귀족으로 신분상승도 가능하다. 노예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공직자는 귀족 계층에서 선발된다.

그들의 언어는 이 나라에서만 사용된다. 공문서에 사용되는 문자는 중국이나 일본과 동일하지만, 음성 언어는 서로 다르다. 코리아의 언어는 자체적인 알파벳과 문법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음절로 된 언어로서 중국어보다는 영어와 더 비슷하다.

종교는 없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현재의 왕조 이전에는 불교가 국교였으나, 498년 간 지속적 차별을 받았고 어떤 불교 수도자도 감히 성 내 도시로는 들어오지 못한다. 여전히 산악지대에는 불교 사원이 있으나 영향력이 거의 없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학을 신봉하며, 조상에 대한 그들의 경건한 애착은 부분적으로 종교의 일부로 작동한다.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한국인들은 하늘에 기도하는데, 정말로 간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독교는 초기 선교사들의 경솔함 때문에 한때 금지되었는데, 현재는 그런 불신은 차츰 사라지고 있으며 선교사들은 최근 교육자로서 여기저기서 채용되고 있다. 이는 매우 이질적인 신앙을 성공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선행 작업이다.

최근 8년간 외국과 교류를 시행한 결과 중에도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 미국인 및 유럽인 관원이 항구 세관을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병원 또한 코리아 정부의 지원과 미국 장로교 선교회 소속 의사들의 무료 봉사로 잘 운영하고 있다. 또 코리아 정부는 미국인 교사를 채용한 학교 또한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무관들이 군대를 재조직하고 있으며, 젊은 무관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조폐국, 기계 공장, 제분소, 비단실 공장, 전등, 전보, 전선 등은 모두가 최근에 도입되어 운영 중인 새로운 문물 들이다. 증기선도 구매되었는데, 해군의 전투선이 아니라 세미(稅米)의 운송 용도다.

코리아와 중국의 관계에 대해 독자들께 자신있게 권할 책은 북경의 미국 대사이자 중국학 학자인 W. W. 락힐이 아메리칸 오리엔탈 소사이어티에서 펴낸, 1888년에 출간된 책의 3권에 담긴 내용을 소개하면 될 것 같다. 락힐은 자신의 책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코리아와 중국의 관계의 특성을 지난 삼십 년 동안 서구에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중국 정부는 서구의 국가들에게 코리아에 대해 매우 모호하게 이야기했다. ‘코리아는 중국의 속국이며 조공을 바치지만, 그들의 정부나 종교, 외교 등은 완전한 독립권을 가졌다.’ 이 표현을 코리아가 중화 제국의 일부라는 의미로 봐야 할까, 아니면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주권을 가진 군주국가로 봐야 할까?

이 문제는 코리아가 일본과, 그리고 이어서 미국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결론이 내려진 바 있지만 지난 4세기 동안 존재했던 중국과 그들의 소위 속국 간의 관계를 실제로 바꿔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국이 코리아의 국가간 무역을 개방하는 것으로 이득을 얻어온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코리아와 자유롭게 조약을 체결할 수 있으므로써 자국 상인들을 위해 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왔다. 그들은 그 조약을 중국과 코리아 간 상업 및 무역협정이라고 하고, 서울에 거주하는 외무관에게는 정치와 무역 변리공사Minister Resident for political and commercial affairs.’라고 매우 듣기 좋은 이름을 붙였지만 말이다. 중국과 코리아의 관계는 코리아가 1883년 조약을 통해 문호를 개방하기 전부터 존재해왔기에, 이제 나는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작성된 문건이나 공적인 인쇄물을 통해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역주: 관련된 조약으로 1876년 강화도 조약,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 1883년 조독, 조영 수호통상조약. 언급된 기사의 원문은 아래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https://archive.org/details/jstor-592442/page/n1 )

 


역주. 

1. 호러스 뉴튼 알렌의 이 저작물, 특히 이 도입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 같다. 첫째로 호러스 알렌이 국내에 의료선교사이며 제중원의 창시자, 개화의 아버지 등 긍정적인 측면 중심으로, 위인전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조금 더 이 인물의 동기와 행적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글 (http://coldstar.egloos.com/5361717) 을 참고하면 되겠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그는 의료선교사보다는 본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외교관, 또는 무역브로커로 두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제중원을 그가 설립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운영한 기간은 거의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미국 대사관에서 일을 했고, 왕실의 신임도 받는다. 


1887년 12월에 재미 조선공사관이 설립되고, 초대 공사 일행으로 박정양, 이완용, 이채연 등이 미국에 파견된다. 5년전, 대통령에게 큰 절을 한 에피소드로 유명한 민영익 서광범 변수 등의 보빙사 일행 이후 5년만의 고위공직자의 파견이었는데, 보빙사의 리더였던 민영익이 20대초반이었던 것에 비해 미국 공사 박정양은 거의 오십에 가까운 나이였고 일행에 제대로 영어를 하는 사람도 없다. 이 일행에 알렌이 함께 이동했으니, 실질적으로는 알렌이 리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렌은 대사관으로 떠나면서 한 가지 특명을 받는데, 미국으로부터 200만 달러의 차관을 마련해오라는 것이었다. 고종이 원한 것은 200만 달러의 '돈'이고, 이것을 위해 알렌은 1888년 한 해를 미국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데, 주로 광산업자들에게 광산 이권을 제시하는 대가로 선투자를 받는 교섭을 한 것 같다. 그러는 과정에서 워싱턴, 델라웨어, 로스엔젤레스 등 각지를 다니면서 금융업자나 광산업자들과 협상도 하고, 투자설명회도 가지고, 그러는 중에 언론사에서도 관심을 가져 조선에 대한 갖가지 기사를 내기도 하던 그런 와중이었다. (사실 이건 외교관의 역할이 아니라, 투자 브로커의 역할이다. 이 투자가 성공했을 때 그의 성공보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나와있지 않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부지런히 투자유치를 위해 애쓰는 것이 쉽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데다가, 조선이 미개한 나라라는 인상 때문이다. 특히 '서양인이 어린아이를 잡아먹고 눈알을 뽑아 사진기 렌즈로 쓴다' 는 소문은 치명적이었다. 이 소문 때문에 조선 내의 서양인들이 실제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이것이 미국의 신문에서도 보도가 되었을 정도였다. (어느 신문에 어떻게 보도가 되었는지는 나중에 다시 찾아서 보완하기로...) 


이 책이 발간된 시점이 바로 이 때다. 이런 배경지식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이 '안내' 단락을 읽어보면, 조금 산만한 이 안내 단락이 다르게 읽힌다. 초반부터 천연자원과 광물의 현황을 소개하고, 장자상속제, 계약의 습관 등 굳이 필요해보이지 않는 내용이 담긴 것도 이때문이다. 또 책 전반에 걸쳐서 조선의 자연과 풍광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와 애착이 돋보이는데, 이 부분도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이지만 삐뚤어지게 보자면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호레이스 알렌 - 연보

1858.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 출생1881. 웨슬리안 대학교 이학사. 1882. 콜럼부스 대학에서 의학 수학.1883. 마이애미 의과대학 졸업.     북장로교회 해외선교본부에서 중국 파송 선교사로 임명. 결혼. 1883. 여름. 상해 도착1884. 9. 20 제물포 도착1884. 9. 22 서울 도착 ... » 내용보기

알렌 - 코리아의 설화 (서문)

구한말 미국 대사였던 호레이스 알렌의 저서 Korean Tales 를 번역합니다. 국내에 번역본은 없는 것 같으니 최초 번역인 것 같고, 저작권이 끝난 책이라 아마존에서는 예닐곱개의 번역본이 나오고,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도 무료 버전이 있습니다. http://www.gutenberg.org/ebooks/55539그리고 충격적이지만 리...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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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후 공항에서 구입한 쿠마몬 라멘.5개 600엔인가... 비쌌는데사리곰탕면 맛. (좀 더 짜고 느끼함)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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