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야망 #2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2.

김나나는 오후를 거의 패닉 상태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액정에는 세 글자의 이름, 이.종.민 이라고 떴다.

이종민은 보름 전, 복지부의 고위 공무원들과 함께 찾아온 컨설팅 회사의 젊은 컨설턴트였다. 멀끔하게 잘 생기고, 검은 양복에 흰 와이셔츠, 그리고 품위있어보이는 넥타이를 맸다. 그 옷이나 양복이 얼마나 비싼 건지는 김나나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최소한 평소에 봐오던 우중충한 공무원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날 밤, 회의가 끝난 뒤의 회식자리에서, 반쯤은 우연으로, 또는 반쯤은 이종민이 작업을 걸어서 두 사람은 술을 마셨다. 그 때 이종민의 작업은 어떻게 보면 찌질하다고 할 정도였는데, 그래도 김나나는 이종민을 포기할 수 없었다. 명색이 컨설턴트 아닌가. 지잡대를 나온 주제에 컨설턴트와 약혼했노라며 최고급 외제차를 타고 친구들에게 십오만원짜리 스테이크를 사먹인 친구년을 생각하면, 이종민이 그 날 조금 찌질했다고 해서 그대로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날 이후 전화통화 두 번을 더 했고, 밥을 한 끼 더 먹었다. 

두 번째 만나서 밥을 먹던 날, 김나나는 여자의 직감으로 이종민이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컨설턴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를 말하라면 김나나도 하나하나 설명할 자신은 없었지만, 아무튼 자신의 친구들에게 십오만원짜리 스테이크를 사주고 외제차에 태워줄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 뒤로 전화통화를 두 번 더 했고, 또 전화가 오는 것을 두 번 씹었다.

이종민과 앞으로 진도를 더 나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중이지만, 방금 전화를 걸었던 이사와는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어쩌면 앞뒤 사정을 알 지도 모른다. 김나나는 핸드폰 액정을 지긋이 쳐다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나나씨, 저 이종민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통화 잠깐 괜찮아요? "

"네."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돼요? "

"네?? "

"아, 왜 그렇게 놀라세요? 괜찮은 오페라 표가 생겨서요. 되게 유명한 건데. 오페라의 공룡 알죠? "

"오페라의 공룡? "

"그 왜 어느 폐가에서 티라노사우르스가 나타나서 오페라를 부르면서 악당들을 섬멸한다는..."

"네..."

"아홉시 표인데 시간 괜찮으면 함께 봐요."

오페라라면 여태 비싸서 못 봤지, 보고 싶지 않을리가 없다. 그저 극장안에 들어있는 것 만으로도 온몸의 엔돌핀 지수가 팍팍 솟아오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김나나의 머릿속에는 딴 생각이 잔뜩 들어있어서, 오페라 티켓이라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 네, 제가 뭐 좀 여쭤볼 게 있어서요."

"왜요 ?"

"있잖아요, 저기 이사님 있잖아요- "

"무슨 이사님요? "

"김 무슨 이사님...."

그 때 갑자기 이종민의 전화기 건너편으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종민이 다급하게 대답하는 소리. 이어서 이종민이 전화로 속삭였다.

"좀 이따가 전화 드릴께요.아무튼 이따 저녁에 봐요."

"근데 제가 저녁에 약속이..."

김나나의 대답이 끝나기 전에 전화가 끊겼다. 김나나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전화를 끊고, 한숨을 폭 내쉬었다. 박진희가 옆에서 꿀밤을 먹였다.

"이년아, 넌 남자들하고 전화할 때 말꼬리 좀 질질 끌지 마."

김나나가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그래도 언니처럼 욕하는 거 보다는 낫다 뭐."

"그나저나 저녁에 오늘 황선생님이 쏘기로 했는데 너 약속있어? 정말 안 간다고? 그냥 고기도 아니고 꽃등심인데? 이야, 너 배 불렀다."

황학규 주사가 또 쏜다고? 이번에도 꽃등심? 김나나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보면 예비 아내 친구에게 십오만원짜리 스테이크를 대접한 컨설턴트가 대단한 봉인 것도 아니다. 삼인분 사인분씩 먹어치우는 박진희 같은 사람 예닐곱명에게 꽃등심을 한 번 쏘면 적게 잡아도 오륙십은 들텐데, 그걸 보름이 멀다하고 쏘는 황학규 주사 같은 사람이 진짜 봉일 수도 있다. 주식 투자에 성공해서 외제차를 사고, 경매에 성공해서 빌라를 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재개발에 투자해서 또 몇 배를 벌고. 돈이 돈을 버는 가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오십대의 기혼남이 아니라면 황학규 주사 같은 사람을 꼬실 일이다.

"어머, 너 진짜 대단한 약속 있나보다. 꽃등심을 포기하고 가다니. 어디 가는데? 누구 만나? 이종민 아저씨 또 만나? "

김나나는 절대 딴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된다던 김정봉의 말을 떠올렸다. 아니, 사실 김정봉은 절대 딴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된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냥 '은밀하게 진행하자'는 알듯 모를듯한 말을 했을 뿐인데, 자꾸 그 말이 기억속에서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김나나는 임금님귀는 당나귀귀를 외치는 심정으로 박진희에게 사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차관님 지시라는 말이 자꾸 걸려서 결국 얼버무리고 말았다.

*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가운데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저녁 여섯시가 넘어가자 직원들이 대략 나이순으로 하나둘씩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여섯시반 가량이 되자 절반 정도가 퇴근한 가운데, 김나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김나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

"김나나씨? "

전화기 건너편에서 굵고 힘있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김나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지금 동사무소에서 길 코너쪽 돌아서 뒷편에, 세븐일레븐 편의점 하나 있죠? 그 앞에 있습니다. 얼른 나와요."

김나나는 다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조용히 가방을 들고 빠져나갔다.

김나나는 건물 뒷편으로 돌아가서 편의점을 바라봤고, 잠깐 눈을 끔뻑거렸다. 세븐일레븐 앞에 서있는 것은 진한 밤색에 헤드라이트가 김나나의 머리보다 큼직한 거대한 외제차였다. 차를 잘 모르는 김나나가 보기에도 나 외제차요 라고 번호판에 써져있는 듯한 그런 차였다.

김나나가 후문 앞에 나타나자, 외제차가 마치 그녀를 알아봤다는 듯 불을 깜빡였다. 그리고 검정색으로 거울처럼 코팅된 유리창이 스르륵 내려가고, 안에서 거대한 얼굴 하나가 나왔다. 보름전 회의때 봤던 얼굴이다. 중앙에서 내려온 복지부의 실장을 바로 옆에서 수행하고 있던, 그러나 수행이라기에는 너무 뻣뻣한 태도였던 얼굴이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공무원 생활이 이미 삼년. 그녀에게 김정봉은 실장과 동급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말단 공무원에게 중앙부처 실장이란, 직장인에게 사장님보다 더 높은 존재다.

"자, 이쪽으로 타세요."

김나나는 잔뜩 긴장해서, 그가 타라는대로 차 반대편을 향해 돌아갔다. 어휴, 차가 너무 커서, 이쪽 편에서 저쪽 편까지 가는 거리가 무슨 지하철역 입구에서 매표소까지 가는 거리는 되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쇼파 위에 앉는데, 쇼파 크기가 침대라고 해도 믿을만큼 넓었다.

김정봉 이사는 김나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머리는 듬성듬성 벗겨졌고, 피부는 조각칼로 퍼낸 듯 거칠다. 얼굴 크기는 김나나의 두 배는 될만큼 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나이가 그렇게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삼십대 후반이나, 높게 잡으면 사십 세 정도? 김나나는 잠시 자신도 김정봉 이사를 똑바로 마주 쳐다봤지만, 조금 더 마주보다가는 한 대 얻어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김정봉은 눈싸움에 이겨서 만족한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 식사 전이죠? 우선 식사부터 합시다."

"네-? "

"스파게티 좋아하죠? 스파게티 먹으러 갑시다."

차에 부르릉 시동이 걸렸다. 엔진소리가 마치 낮게 그르릉거리는 호랑이 소리 같았다. 그 때 김나나의 전화기가 울렸다. 김나나는 마치 큰 실수라도 한 사람처럼 허겁지겁 핸드백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려서 그런지 핸드백을 놓쳤고, 내용물이 우루루 쏟아졌다. 변속기와 가속페달 위로도 이런저런 물건이 굴러떨어졌다.

"어머, 죄송해요, 죄송해요."

김정봉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차를 다시 세우고, 쏟아진 물건들을 하나하나 주워서 김나나에게 건네주었다. 전화기가 여전히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김정봉이 전화기를 주워서 김나나에게 건네주었다. 김나나는 발신자 표시기에 뜬 이름을 확인할 틈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네 종민씨..."

김정봉의 눈썹이 살짝 구겨졌다.

"네... 네... 그렇죠 오페라... 그런데요... 제가 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네... 네... 네... 아무튼 그렇게 돼서... 네... 네... 잠깐만요... 좀 이따 전화 드릴꼐요."

김나나는 건성으로 네- 네- 대답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김정봉의 눈치를 살폈다. 바윗덩이같은 굳건한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자, 가시죠."

김나나는 핸드백의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김정봉은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가 도로로 나설 때 쯤 김정봉이 전화기를 꺼냈다.

"김정봉입니다. 아까 내가 지시한 보고서 있었죠? 그거 진행이 어떻게 됐나? 내일 오후까지 초안을? 안 돼. 갑자기 급한 상황이 생겼어. 오늘 저녁 10시까지 초안 완성해서 나한테 메일로 보내. 내가 밤에 마무리해서 내일 아침에 제출할테니까."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버럭 커졌다. 눈에 힘이 들어가고, 콧김으로 불을 뿜는 것 같았다.

"뭐라고? 무슨 약속인데? 뭐?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겁니까? 당신 컨설턴트 아냐? 프로페셔널로서의 자세가 되어있다고 생각하나? 열 시에 메일 확인 할테니까 틀림없이 보내도록 해."

김정봉이 벌개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전화를 끊었다. 김나나는 꼭 자기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잔뜩 얼어붙었다. 문득 치마가 무릎 위로 너무 올라온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그녀는 치마를 좀 더 무릎 아래로 끌어내렸다.


캄보디아의 술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설사 죽어도 자본주의와 서양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라고 해도, 코카콜라만큼은 세계 공통의 언어가 되어간다고들 한다. 그 코카콜라와 쌍벽을 이룰만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맥주다. 어쩌면 코카콜라가 팔리지 않는 세계에서조차도 맥주는 팔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면, 코카콜라는 미국의 브랜드이고, 맥주는 대개가 자국의 브랜드라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지지리 못살던 천구백육십년대에도 오비맥주가 있었다. 세계의 가난한 나라들도 상당수는 자국의 맥주를 가지고 있다. 그건 아시아 여러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니 필리핀이니 하는 나라는 물론이고, 연간 국민소득이 백달러니 얼마니 하는 캄보디아에는 앙코르비어, 라오스에는 라오비어나 란쌍비어가 있다. 머 어떻게 보면 가장 손쉬운 산업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가난한 나라의 외화벌이를 위해 공헌하는 산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외화벌이가 전부는 아니다. 중국인들은 중국술보다 칭따오 맥주를 더 좋아하고, 베트남 인들은 베트남술보다 비아호이라고 불리우는 생맥주를 좋아한다.
 
뭐 어쨌든간에, 캄보디아에서 마셔본 몇 가지의 맥주 이외의 술들.


Palm Beer, 팜 비어라고 불리우는 술이다. 야자로 빚은 서울쌀막걸리라고 말하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듯 하다. 프놈펜의 야시장,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칠백오십밀리짜리 두 병을 구입해서 마시는데, 거 참 정말 오묘한 맛이다. 그러니까 서울쌀막걸리 비슷한데, 쌀 냄새 대신 야자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면.... 그런게 상상이 되는 사람은 몇 없겠지만, 아무튼 그런 맛이다. -_-





쌀 문화권인 인도차이나 및 중국 남부지역까지는 모두 쌀로 만든 술을 가지고 있다. 내가 못 마신건지 실제로 안 마시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라에서 막걸리와 비슷한 술을 마셔본 적은 없다. 반면 청주류의 술과 증류한 쌀 소주류의 술은 여러 곳에서 마셔봤다. 대부분은 한국의 전통 증류주보다도 훨씬 맛이 좋았다 OTL 장립종 쌀이 좀 더 단맛과 쌀 향기가 짙어서일 것 같다.

밧땀방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교외 투어를 나갔는데, 그 곳에서 본 술독이다. 그 독 속에서 익어가고 있는 술은 더도덜도 아닌 막걸리였다;;;



그 농가에서 우리에게 술을 내놓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돈을 주고 산 것이다. 그들은 과일과 술을 내놓았고, 오토바이 가이드는 우리에게 <나중에 갈 때 얼마간의 돈을 줘라. 보통 일달러 정도 주면 된다> 라고 귓뜸을 해줬다. 산더미같이 파인애플과 바나나를 썰어내놓는 가운데, 과일을 듬뿍 넣은 소주도 한 통을 내놓았다. 오토바이 운전사 녀석과 둘이서 홀짝홀짝 마시는데 (생각해보면 위험천만했다 -_-  나중에 거의 소주 한 병을 마신 오토바이 운전사넘 뒤에 타고 도시를 한 바퀴 돌았으니 -_-) 이것도 맛이 괜찮다.




그러고보면 론니플래닛에서는,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내놓는 술을 함부로 마시면 식중독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던 것 같다. 과학적 지식은 별로 없지만, 생각해보면 독한 술에 식중독 균 따위가 살 것 같지는 않다. 몇 번인가는 그 경고가 마음에 걸려 술을 마시지 못했으니, 서양인의 위생 미신에 함께 속아넘어간 것이 아닌가 싶다.


밧땀방에서 요리강좌를 수강할 때, 그 집 아저씨가 뱀술을 내놓았다. 아주 좋은 뱀을 썼는지, 동물성의 역한 냄새가 없는 향긋한 맛이었다 -_- 요리를 하는 틈틈히 한 잔씩 마셔서, 소주 한 병 분량을 마셨더니, 나중에 아저씨가 <그걸 다 먹었냐> 라며 아주 아까운 표정을 지었다 -_- 여행 중에는 낮술로 그만큼 마셔도 별로 체력에 지장이 없던데 -_-


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야망 #1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 이 소설은 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의 연작입니다 -_-

1.

우리나라 임대아파트 집중 수준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드는 곳, 등촌 18동. 그곳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김나나가 하루에 받아서 처리하는 전화 건수는 적으면 하루 네다섯 통, 많은 날은 백통도 넘었다.


사실 동사무소로 걸려오는 전화에는 별의 별 것들이 다 있다. 주민등록등본 떼는데 얼마냐는 전화야 업무적으로 친절하게 받으면 된다. 저소득층 대상으로 발급하는 보육카드를 받고 싶은데 자격요건이 어떻게 되냐는 전화를 받으면, 규정집을 뒤져가면서  답변해주면 된다. 내가 월소득이 한 천만원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저소득층이니 보육카드를 발급 받아야겠다고 하면, 그냥 알아서 하시라고 하면 된다. 처음에는 일일히 당신은 자격이 안 되며, 더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는 당신이 양보하셔야 된다는 둥 해가면서 대꾸를 해줬지만, 몇년이 지나고보니 일일히 대꾸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대꾸해봐야 소용이 없기도 하다. 어차피 심사 과정에서 짤릴테니까 말이다.


김나나가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술취한 할아버지들의 전화였다. 내가 말이야 꺽꾹- 왕년에 독립군으로 만주에서 피를 흘리던 사람이야- 꺽꾹- 그런데 말이야, 이 나라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느냔 말이야, 꺽국- 사람 우습게 보지 말란 말이야- 꺽꾹. 도대체 이런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는건지, 당장 눈앞에 몰린 업무도 산더미인데, 이런 취한 할아버지까지 상대를 해줘야 하나. 몇 년의 사회복지사 생활 동안 이런 전화에도 익숙해졌다. 방법은 간단하다. 수화기를 곁에다가 내려놓고, 업무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전화도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잊지 않고 오는 전화, 바로 내 몸속에 외계인이 있으니 꺼내달라는 전화다.


"외계인.... 꺼내주세요... 제발요... 제발 좀 꺼내주세요."


김나나는 머리털이 쭈삣 섰다. 희극적이어야 정상일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화기 건너편의 상대방이 너무도 진지하다는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은 진정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고, 마치 괴물에게 목이 졸리고 있는 상태인 것 같다. 그는 장난전화를 거는 것이 아니었다.


"악-! 악-! 외계인이-! 내 뱃속에-! 우아아아악! "


김나나는 서둘러 전화기를 탁 내려놓았다. 오후 네 시의 졸음이 한꺼번에 가실만큼의 두려움이었다. 아마도 동사무소에서 지원을 받는 어느 정신장애인 중 한 명일 것이다. 목소리가 어눌한 것으로 봐서는 뇌성마비일 가능성도 높다. 두 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전화를 거는 것은, 아마도 두 달에 한 번씩 이혼한 부모가 만난다거나 또는 두 달에 한번씩 병원을 간다거나 하는, 그의 입장에서 아주 스트레쓰 받는 일이 있을 것이다.


"다 좋은데 그걸 왜 동사무소에다 푸냐고 T_T"


김나나가 울상을 짓고 전화기를 쳐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덩치 큰 박진희가 옆에서 김나나를 보더니 말했다.


"왜, 또 똥싸는데 휴지 없다고 가져다 달라는 할아버지야? "


김나나가 고개를 젓자, 박진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휴 씨발, 예전에 김치 가져다주러 갔더니 할아버지가 낮부터 술 쳐먹고 똥싸다가, 휴지 없다고 그냥 나올려는거야. 씨발 그래서 내가 똥까지 닦아줬다. 냄새 나서 뒤져버리는 줄 알았어."


박진희의 무신경한 욕지거리에 김나나는 피식 웃었다. 노인네 똥닦아주는 상황이 결코 씨발씨발 한두마디로 스트레스 해소 될 상황은 아니다. 모르긴해도 김나나였으면 사방에서 노인네의 똥꼬에게 포위공격 당하는 꿈을 보름정도 꿨을지도 모른다.


역시 사회복지사는 이런 사람이 해야 돼. 요새 광고 보니까 오드리 햅번이 흑인 아이들 안아주는 영상으로 어지간히 광고하드만, 그 아줌마는 차라리 돈 많이 벌고 기부하는 편이 나을 거다. 젓가락 같은 팔목으로 애들 안아줘봐야 얼마나 안아줬을까. 차라리 박진희 같은 전투력 높은 사회복지사가, 열악한 봉급 사정에 좌절해서 이 바닥을 떠나 욕쟁이 아줌마 순대국집 같은 걸 차리지 않도록, 뽀너스나 넉넉히 챙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언니, 커피나 마실까? "


김나나가 담배갑을 챙기면서 박진희에게 말하자, 박진희도 함께 일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김나나는 도망치듯 전화기에서 멀어지려고 했고, 박진희는 투덜거리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전화를 김나나에게 건넸다.


"나나야, 너 찾는데? "


김나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지명해서 전화를 걸 사람이 누구지?


"누군데? "


"몰라 무슨 밸브 어쩌고 하는데."


김나나는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전화바꿨습니다, 김나나입니다."


"네, 김나나씨? "


"전데요."


"안녕하세요. 밸류뷰 컨설팅의 김정병 이사입니다."


"예? "


"보름쯤 전에 찾아뵈었었죠. 밸류뷰 컨설팅의... "


낮고 굵으면서도 힘있는, 사회적인 점잖음으로 이글거리는 욕망을 감춘, 중년의 목소리라고나 할까. 김나나는 여전히 헤매다가, 컨설팅이라는 말에 조금 뒤늦게야 기억을 해냈다. 그가 최근에 사귀기로 한 남자, 이종민이 다니는 회사가 바로 밸류뷰 컨설팅 아닌가.


"아, 네. 네. 네. 밸류 컨설팅이요. 안녕하세요. 얼른 기억 못해서 너무 죄송해요."


"별말씀을요. 다름이 아니라 좀 여쭤볼 부분이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사실은 은밀하게 좀 부탁을 드릴 일이 있습니다."


김나나는 당황했다. 은밀한 부탁이라니.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따위가 은밀하게 알려줄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무슨 부탁요? "


"전화상으로 드리기가 좀 곤란한 부탁이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드렸으면 하는데..."


"그게... 무슨 일인지를 알아야... "


"사회복지정책과 관련되어서, 차관님의 지시로 은밀하게 진행하는 일이 좀 있습니다. 그 부분과 관련해서 협의드릴 사항입니다."


김나나는 더욱 당황했다. 차관님이라니.


대충 머릿속에서 줄을 세워보자. 내가 구급 공무원인데, 구급에서 십년쯤 근무하면 팔급이 되고, 또 십년쯤 근무하면 칠급이 된다. 복지 공무원으로 칠급 쯤 오르면, 그 이상 승진하는 건 쉽지 않다. 처음부터 칠급으로 공직에 입문했으면, 이십년 쯤 근무하면 아마 5급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운이 좋을 때의 이야기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과 달리, 복지직은 진급 티오가 적어서, 그냥 육급에서 끝날 가능성도 높다.


5급은 동장이다. 구청에 가면 과장도 5급쯤 된다. 4급 이상은 모르겠다. 나름 공무원으로 사오년을 근무했지만, 아직 사급 이상의 공무원과 독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다. 4급 위에서 몇 번을 더 진급해야 차관이 되는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차관에게 지시를 받아서 나를 찾아오겠다고 한다.


김나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서, 얼른 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김정병 이사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시간 약속을 좀 부탁드리려는데, 혹시 오늘 저녁에 다른 일이 있으십니까? "


"없는데..."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녁 7시에 모시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핸드폰 번호가 010-588-6969번인데 맞는지요? "


"네...? "


"이번 건에 대해서는 주변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말고 은밀하게 처리했으면 합니다. 아시겠죠? "


김나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너무 느닷없이 생긴 일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박진희가 뭐라곤가 말을 걸었지만 김나나는 머리를 싸쥐면서 주저앉았다.


머릿속에 수많은 것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갑자기 아이리스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차관이 비밀리에 추진하는 일이라면, 국가 안보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아이리스의 일원으로 갑자기 차출 되어서... 그런데 내가 할 줄 아는게 뭐가 있지? 얼굴 좀 반반한 거 말고는 없는데? 그렇다면 설마 미인계? 방중술을 훈련받아 북한으로 비밀리에 파견되어.... 아 제기랄 내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거야.



ps. 정말 소설이 안 써진다고 생각하다가, 모디아를 잡는 순간 손가락이 풀리기 시작하더니, 이지프로를 켜는 순간 손가락이 두다다다 움직였다. 역시 솜씨 없는 장인에게는 도구라도 좋아야 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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