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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의 조선 투자유치활동 (1888~1890), 알렌의 일기 중 발췌

알렌이 조선공사관 사람들을 몰고 미국으로 방문하던 1887년 당시, 그가 고종에게 받은 밀명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몇 개 기록들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들을 뽑아보면 

- 200만 달러의 차관
- 군사 고문 또는 군부대 
- 이를 위해서 조선 내 자원개발권, 철도/가스/도로 등의 인프라 부설권을 제공 가능 
- 이하영의 기록에서는 원산, 인천, 부산 등 세 개의 항구를 담보로 200만 달러를 빌려오라는 기록도 있음 -> 조금 신뢰성이 떨어짐 
- 박정양 대사에게는 조선의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기 : 조선의 외교활동은 1905년 일본에 합병되기 전에도 명분상 불가능했고, 당시의 보호국은 청국이었는데, 청국의 허락 없이 미국 대통령을 알현(...)하고 독립국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박정양 공사와 이완용 등이 받았던 미션이었음 

대략 위와 같은 것들이 있는데, 현대식으로 문서에다가 땡/찍 그어가면서 이거이거이거 해오라고 지시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이것도 하면 좋고 저것도 하면 좋고... 하는 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200만 달러의 차관은 맞는 것 같다. 
 
이하영은 본인이 200만 달러의 차관과 20만명의 병력을 받아오라고 지시를 받고 그 중 16만 달러를 활동비로 써버렸다는 기록을 남겼다. (전봉관의 "이하영 대감의 영어 출세기" -> 이하영의 "한미국교와 해아사건", 신민, 1926년 6월호에서 재인용) 이 기록에 의하면 뉴욕은행에서 200만 달러 중 100만 달러에 대한 대출 허가가 이미 떨어졌었다고 하는데, 어딘지 이하영의 과장이라는 느낌이 있다. (당시 일반 노무자의 한 달 월급 삼십 달러, 일년 연봉이 400달러였다. 16만 달러는 그 400배에 해당한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연봉 3천만원 * 400배면 120억에 해당하는데, 이게 쓴다고 써질 액수인지 잘 모르겠다)  

http://shindonga.donga.com/3/all/13/105895/8, 한미국교와 해아사건, 신민, 

아무튼 알렌의 일기에서 투자와 관련된 그의 활동을 기록하자면. 

1888. 1. 26 (목). 세리던 장군을 만남. (그는 국무성에서 조선에 파견할 군사교관 3명 중 1명이었음) 

1.27 (금) 대통령의 리셉션 참석, 이어서 휘트니 해군장관댁에서 만찬. 

8월 (일기에서는 8월에 아래의 내용들을 회상하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음) 

2월, 델라웨어 주 윌밍턴으로 가서 제임스 H. 윌슨 장군과 차관 문제를 협의함. 그에게 월스트리트의 금융계 인사를 소개받고 함께 만났지만, 월가에서는 조선에 차관을 제공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없음. 

로스엔젤레스의 Alfred James, 샌프란시스코의 W.B.King 등과 서신 교환. 그들은 광산 이권에 관심을 보여 차관 교섭을 개시했고, 미시간에서 이들을 만나려다가 아들의 건강 문제로 만나지 못함. 

4~8/15 사이 (원문 상에서 정확한 날짜 상의 선후관계 등을 알기 어려움). 로스엔젤레스에 가서 광산에 대한 협상. 그들은 처음에는 광구 사용료를 10%로 책정, 이어서 20%를 제시하고 알렌에게 커미션 1%를 제안했으나 거절. 이완용, 이채연, 허용업 등이 귀국하는 길에 그들에게 차관교섭이 잘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광산 개발을 제의. 

<영아소동 발생> 

7~8월 사이에 조선에 관한 언론 논쟁이 벌어짐. 
James Russel Young 은 뉴욕 헤럴드에서 조선에 대한 경멸적인 기사를 지속 보냄. 조선은 국제적으로 경제상 책임을 질 자격도 없으며, 재정적으로 불안하고, 청국의 속국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기사. (1888. 8. 4)

7월, (뉴욕) 조선 국왕으로부터 전문 훈령에 복종하여 뉴욕에서 차관 교섭을 벌이던 중. 일부 개스 회사가 개스, 수도시설권, 철도부설권을 전제로 차관 문제에 관심을 보임. 이 무렵에는 뉴욕 금융계 인사들로부터 후대를 받고, 조선 사정에 대한 설명도 여러차례 해줌. 그러나 금융계 에서는 차관을 제공해주지 않음. 결국 다른 광산업자들과 새로운 합의 : 조선 국왕에게 광구 사용료로 1/3을 제공하는 데에 동의. 내일 그들과 만나기로 함

11월 1일. 
조선국왕은 뉴욕상사에 광산개발권 특허를 거부. 대신 3만 달러를 보내면서 광산장비 및 광산전문 기술자를 보내달라는 요청. 적합한 광산기사를 구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을 겪다가, Williard Ide Pierce 를 고빙하기로 함. (연봉 5,000달러 + 여비) 

(비고. 피어스는 조선에 파견되어 1889.1월에 도착, 1년 이상 평안도에서 광산작업을 했으나 실패로 끝남. 1890.1월에는 워싱턴에서 조선의 광산전문가로서 강연도 실시했던 바 있음) -> (서양인의 조선살이, 푸른역사, p285)

1889년 - 일기에는 특별하게 기록된 내용 없음 

조선의 투자유치와 관련된 중요한 업무는 완수하고, 이후 피어스 등이 미국으로 요청하는 사안들을 처리해준 것으로 보임 (서양인의 조선살이 p285)  

<Korean Tales 출간> 

1890년 7월 귀국, 다시 조선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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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해링턴은 알렌의 차관 교섭이 실패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박정양의 담배 밀수사건, 그리고 서울에서 야기되었던 영아소동Baby Riot 으로 판단하고 있음 

시애틀 여행 기록.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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