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삔의 하얀 손가락 - 1

안중근은 이등박문에게 총을 쐈고 그 총탄은 정확히 심장을 향해 날아갔지만, 총을 맞은 자는 죽지 않았다. 죽기는 커녕 킬킬거리며 웃었다. 

“감히 그딴 총알이 나를 다치게 할 수 있을 것 같나? “ 

안중근은 허둥지둥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이등박문의 양옆에 서있던 사람 두 명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손에 칼을 쥐고 머리에 일본 상투를 튼 사무라이들이었다. (일본에서 저런 복장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사무라이에게 칼을 휴대하지 못하게 했던 조치 한 번으로 말이다.) 

사무라이들은 칼을 뽑아 휘둘렀다.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진 칼은, 안중근이 쏜 탄환을 튕겨냈다. 예리하게 벼린 칼이 허공을 가르자, 탄환은 마치 파리처럼 튕겨나갔다. 이등박문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껄껄 웃었다. 

이등박문을 환영하기 위해 모여든 수백 명의 인파들이 웅성거렸다. 그 웅성거림 속에는 기대와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공포, 두려움, 충격 등은 없었다. 안중근이 이 때 뛰어나와 총을 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고, 누구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꽤 위험한 서커스를 볼 때에 그것이 쇼인 줄 알면서도 걱정하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안중근은 낭패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자포자기하듯이 마구잡이로 몇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 중 몇 발은 아주 겨냥이 엉망으로 되어 허공으로 뻗치듯 날아갔으나, 일본의 칼잡이들은 그 몇 발 마저도 마치 파리 사냥하듯 총탄을 튕겨내버렸다. 안중근은 입을 조금 벌리고, 어째서 상황이렇게 되었는지를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등박문이 턱짓을 하자 사무라이들이 아주 무거운 위압감으로 안중근에게 다가섰다. 안중근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망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에야 나는 내 역할을 깨달았다. 나는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내가 이 자리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 이유는, 이 상황을 도와서 역사를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임무를 받은 것이다. 내 손가락 중 검지, 중지, 이 두 손가락은 빛을 쏘는 손가락이다. 

나는 두 손가락을 모았다. 기운이 모이면서 손끝이 뻐근해졌다. 손끝에서 조금씩 흰 빛이 돋더니 차츰차츰 더 짙어졌다. 처음에는 물안개 같았으나 차츰 희게 얼어붙은 고드름 같은 색이 되었다. 

그 때 사무라이가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는 안중근을 향해 걸어가던 움직임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게서 범상치 않은 흰 빛이 뿜어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키가 조금 크고 덩치도 조금은 큰 편이었으나, 다른 사람들과 섞여있을 때 눈에 띌 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입고 있는 비단옷, 그가 들고 있는 번쩍이는 칼 같은 것이 더 눈에 띄었다. 좋은 물건을 잘 모르지만 얼핏 보기에도 귀한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물건들은 그 사무라이의 몸과 하나인 것처럼 잘 어울려서, 그는 마치 존재 자체로 귀한 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빛의 탄환을 모으고 있는 나를 향해 다가섰다. 나는 긴장으로 마른 침을 삼키고, 두 손가락을 들어 이등박문을 정확히 가리킨 다음, 두 손가락에 팽팽하게 들어갔던 힘을 풀었다. 희다 못해 푸른 빛까지 도는 빛기둥이 곧게 뿜어져 나갔다. 안중근이 쏜 구형 권총의 납탄환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였다. 

사무라이의 몸이 휙 사라진 것도 그와 동시였다. 그는 원래 서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잔잔하고 맑은 물에 비친 그림자에 잔돌을 던지면 그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사무라이는 나와 이등박문을 잇는 직선 상에 다시 나타났고, 내가 뿜어낸 빛기둥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의 칼집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나왔고, 휘두른 칼을 따라 붉은 궤적이 남았다. 

흰 빛과 붉은 빛이 부딪혔다. 

챙그랑-! 

빛과 빛이 부딪혀서 날 수 없을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붉은 물과 흰 물이 가득 든 두 개의 유리공이 허공에서 부딪힌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찔렀고, 그 속에 든 물이 사방으로 튀듯 빛이 사방으로 뿜어졌다. 나와 사무라이 두 사람 모두 몸이 얼얼해져서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0.5초 가까이 지났을 때에야 주변에서 비명이 터졌다. 

“으아악”

운 나쁘게 근처에 서있던 일본의 경찰과, 바바리 코트와 중절모를 갖춰입은 일본과 만주의 공무원들이 튕기듯이 뿜어져나온 빛덩어리를 맞았기 때문에 지른 비명이다. 대장간에서 망치와 쇠가 부딪힐 때 튀어나온 불티에 맞은 듯한 통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등박문은 그제야 변수가 생긴 것을 알아차린 모습이었다. 그는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자신의 몇 발짝 앞에서 자신을 보호하던 사무라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쥬베이! ” 

이등박문의 두려움이 목소리로 바뀌어 나왔을 때, 안중근도 상황이 바뀐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다시 침착하게 총을 들어올려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요란한 폭음이 울렸다. 누런 군복을 입고 칼을 찬 군인 하나가 이등박문을 힘껏 몸으로 밀쳤다. 이등박문이 볼썽 사납게 바닥으로 엎어질 기세가 되었을 때, 어떻게인지 모르게 이등박문은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려던 군인만 으악 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조금 전까지 이등박문의 심장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군인의 어깨가 있었고, 총탄은 정확히 그 어깨를 꿰뚫었다. 

안중근이 아쉬워하며 다시 총을 겨누던 그 때, 쥬베이라고 불리웠던 사무라이의 모습이 다시 호수에 비친 그림자처럼 흐리게 사라졌다. 나는 급히 두 손가락에 다시 기를 모았다. 손가락은 급속 냉동되듯 희게 변했다. 사라졌던 쥬베이는 안중근의 불과 몇 발짝 앞에 다시 나타났고, 그의 칼이 다시 붉은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칼은 마치 묻어있던 끈끈한 물감을 털어내는 것처럼, 지나온 자리에도 궤적을 남겼지만 휘둘러져 나가는 방향으로도 붉은 빛을 쐈다. 

나는 안중근을 보호할 것인지 이등박문을 공격할 것인지 짧게 망설였다. 하지만 망설임이 끝나기 전에 반사적으로 내 손가락은 방향을 정했다. 안중근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내 손끝에서 얼음같은 흰 빛의 기둥이 뿜어져 날아갔다. 내가 쏘아낸 흰 빛은 쥬베이의 심장을 노린 것이었다. 

쥬베이의 칼이 멈칫했다. 안중근을 향해 뿜어져가던 붉은 빛이 현저하게 약해졌다. 대신 그의 칼이 다시 새빨갛게 변했다. 그의 붉은 빛과 나의 흰 빛이 다시 충돌했다. 

와장창-!

이번에도 유리가 깨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그와 나는 모두 가벼운 충격을 받고 멀겋게 서로를 바라봤다. 첫 번째 격돌에서 나는 이등박문의 심장을 뚫을 정도로만 힘을 모아서, 그리고 위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겨냥이 틀리지 않도록 주의해서 공격했다. 두 번째 역시 온힘을 다한 공격은 아니지만, 가진 힘의 7할은 들어갔던 것 같다. 이 정도 힘이면 일본의 전국시대를 거꾸로 찾아들어가더라도 적수가 많지 않을 것이며, 메이지 유신으로 전통을 압살중인 현대의 일본에는 그런 고수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했었다. 

쥬베이가 고개를 들었는데 그의 눈에 분노와 당혹이 맺혀져 있었다. 방금의 승부에서 받은 충격 때문인 것 같기도 했지만, 자기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다기보다는 다른 누군가에게 부끄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등박문쪽을 한 번 바라보더니 노골적인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인가? 이등박문?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등박문은 아까 안중근의 납탄조차 피하지 못한다. 그가 가슴속에 어떤 경륜을 가졌는지, 얼마나 뛰어난 두뇌를 가졌는지, 또는 뛰어난 영도력으로 조선과 만주까지 짓밟고 있는지는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는 자기 한 몸을 스스로 지킬 무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방금의 대결에서 서로의 힘을 확인한 것은 힘을 맞댄 그와 나, 두 사람 정도일 뿐, 고등무술을 알지 못하는 제 삼자의 눈에는 서로 우열을 가리는 싸움이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순간 나는 아까 안중근 의사가 회심의 일격으로 발사했던 권총탄이 떠올랐다. 황군 하나가 몸으로 이등박문을 막아내던 그 순간, 황군에게 떠밀려 바닥을 뒹굴어야 했던 이등박문이 불가사의하게도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능력이 없다. 

나는 이등박문을 다시 바라봤다. 이등박문은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다. 몇 사람의 정체모를 암살자에게 포위되어서, 주변에서 폭탄이 터질듯한 요란한 소리가 계속 일어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만큼 그릇이 커서?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이 상황에서 절대 다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등박문의 곁에서 나는, 얼핏 봐서는 아무도 없지만, 이등박문의 그림자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사람이 한 명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자는 마치 그림자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 그림자 같기도 하며 유령이나 도깨비인 것 같기도 했다. 아주 뛰어난 은신술 실력을 가지고 있고, 몸이 바람보다 날쌘 사람이 틀림없다. 

그 자다. 누군지 알아차리기도 힘들게 기척을 숨긴 고수 한 명이 이등박문을 보호하고 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쥬베이는 지금 그 고수에게 열등감과 창피함을 느끼고 있다. 자신이 이등박문을 깨끗하게 보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 고수에게 들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오늘 싸움을 빠르게 끝내려면. 나는 왼손바닥을 펼쳐서 내려보았다. 남들 같으면 다섯 개의 손가락, 각각의 손가락에는 두 개의 마디가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내 왼손의 새끼손가락에는 마디가 하나 뿐이다. 그 때의 싸움 때문에 한 마디를 사용했었다. 스승님은 내게 내 몸의 피와 살을 갉아먹는 이 한 수는 부모님의 원수를 만나지 않는 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또 한 마디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이등박문을 쓰러뜨리려면 쥬베이, 그리고 또 한 명의 이름모를 고수를 쓰러뜨려야 한다. 수십 명의 황군들 틈에서 안중근을 구해내는 것도 내 능력으로 과연 가능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 오늘 또 나는 한 마디를 써야겠다. 


계속 - 할지 안할지는 나도 모름. 서피스를 구매했으니 그 약빨로 당분간은 쓰지 않을까 싶음. 

예전에 하얼삔의 푸른 손가락이라는 연재물을 두편인가 쓴 적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임. 

by 찬별 | 2018/02/18 16:57 | + 긴소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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