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별의 료리강좌 #22 - 곤약 삼겹살 볶음
자본주의의 패악을 논하기위해 마르크스나 그람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이 시대에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모순은 공공연히 극대화되고 적극적으로 합리화된다. 가장 극악한 예시는 발렌타인데이다. 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이 날이 나쁘지 않다. 대기번호를 7-8번까지 뽑아야 하는 만큼 나는 가진 자에 해당한다. 기득권자가 체제를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게 초콜릿을 주기 위해 8번까지 줄을 서야 하는 가련한 솔로 딸기 아가씨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저 평등의 땅을 향한 불타는 투쟁과 혁명 승리의 의지는 그보다 더욱 고귀하다. 그래서 나는 쓴다.

후기 자본주의는 없는 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마을에 스무살 넘은 솔로가 하나라도 있으면 수령이 파직되던 우리의 미풍양속은 찾을 길이 없다. 오히려 가진자들은 안여돼, 오탁후등의 신조어를 동원하여 가지지 못한 자를 강철군화로 짓밟는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일컫는, 환상속에 살고 있는 유부남들은, 나는 벌써 장가 갔으니까 내 사정 아니야라며 진실을 외면한다. 일부는 '억울하면 너희도 장가가라' 같은 쁘띠 브루조아적인 계급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들의 힘은 강하고 지금의 우리는 그들에 맞서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불타는 항쟁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제 아무리 초콜렛과 크리스마스 트리로 우리를 짓밟아도, 밟히면 밟힐수록 우리는 시퍼렇게 투쟁의 날을 쎄울 것이다. 자 전 세상의 동지들이여. 곤약 삼겹살 볶음 먹고 힘내자. 잃을 것은 수궁사요 얻을 것은 아무도 시집장가 못가는 저 평등의 땅이다.


곤약 삼겹살 볶음의 상세한 레시피는 삼호어묵에서 나온 곤약 봉지를 사면, 뒷면에 나와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가진 자들이 우리에게 제공한 정보는 아주 간략하고 추상적이다. 그것은 마치 모든 문제는 교과서에서 나왔고 교과서는 모든 학생에게 지급되었으니 모든 학생은 교육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과도 같다. 그리하여 본인은 상세한 레시피를 제공한다.

1. 재료
메인 : 삼겹살 - 200그람. 곤약 - 한 봉지. (250g).
야채 : 대파 한 대. 마늘 서너톨. 생강 - 마늘 한 톨 만큼. 기타 잡동사니 야채 - 양파나 버섯이나... 그러나 이 야채는 냉장고에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넣어도 된다.
소스 : 간장 세 큰술, 설탕 티스푼으로 둘, 술 한 잔.

2. 요리법
a. 소스를 넣고 냄비에서 약한 불로 끓인다.
b. 대파는 뿌리쪽으로 절반 정도를 큼직하게 썰고, 마늘 두 톨을 잘게 썰고, 생강도 썰어서, 소스에 넣고 함께 끓인다.
c. 삼겹살을 넣고 약한 불로 살살 졸인다.
d. 곤약을 넓덕하게 썬다.
e. 삼겹살이 적당히 익어보일 때 곤약을 집어넣는다.
f. 단단하고 쫄깃한 육질을 원하는 포악한 사람들은 불을 키워서 화르륵 볶기도 하지만,
   스님이나 찬별같은 초식 동물들은 뚜껑을 덮고 한참 기다려서 고기가 연하게 익기를 기다린다.
g. 물기가 다 빠졌다 싶으면 불을 끈 뒤 나머지 마늘을 잘게 썰고 파/버섯을 잘게 썰어서 얹는다.
   생파와 마늘이 씹히는 맛이 나쁘지 않다.

여기에 찬군 같은 경우, 웬지 색깔이 너무 프톨레라리아틱해보여서, 럭셔리하게 굴소스를 한 방울 넣었다. 그리고 삼겹살에 부족한 지방을 보충하기 위해서 참기름도 한 방울 넣었으며, 느끼함 극복을 위해 후추도 좀 넣었다.

맛은 훌륭하다. 동파육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곤약은 속이 편해서, 찬군처럼 과일과 야채만 먹는 사람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by 찬별 | 2006/02/11 19:09 | 찬별의 료리강좌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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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rometeus at 2006/02/11 20:37
여태까지 본 발렌타인 데이 탄핵성명서 중 가장 심오하고 선동적이며 심금을 울리는 명문입니다. 역사해석의 새로운 경지가 열렸군요. 쿨럭;;;
(그런데, 이게 대기자 여덟 명을 보유한 '독점자본형 솔로'가 할 말은 아닐 듯 한데...)
Commented by kyoko at 2006/02/11 21:52
존나 명문이다;;; 난 사실 삼겹살 초콜렛 볶음 같은 게 올라왔을 줄 알았삼;;아니면 곤약 초코;;;;어쨌든 글을 읽으니 감동으로 안구에 습기가.. 요리강좌 출간의 그날만을 기다리마, 흙흙-_;;;
Commented at 2006/02/11 22: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6/02/11 22:43
주제는 글이 아니고 요리입니다 -_- 글 말고 료리를 보고 군침흘려주세요 -_-
Commented by 찬별 at 2006/02/11 22:51
비밀글/ 아 그게... -_-;;;; 몰라요 몰라 흑흑 우앵앵앵앵
Commented by 미한인 at 2008/05/10 11:53
나도 자본주의 미원하고 남의 돈을 강탈해가는 증권을 싫어 합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8/05/11 18:25
아주 심오한 말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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