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드라마처럼 감성적인 글이 오히려 애착이 남는다. 잡담 외전 #1 (雜談 外傳)
"스물 셋, 혼자 오랫도록 마음에 품어두었던 사랑을 편지로 띄우기에
봉투는 두껍고 빳빳한 종이였고, 뒷면에는 붉은 꽃 한 송이와 '님에 술이 많이 취해있었기 때문에 나는 맑은 물로 볼가심만 한 번 한 후 "당신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았습니다. 꽤 여러 해 동안 저는 당신의 나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혹시라도 나를 따라 다니는 낯익은 얼굴이 "그저 숨어서 당신을 지켜보기만 하면서 한마디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다행? 다행이라니. 나는 딸꾹질을 두어번 했다. 나는 편지를 덮고 한숨을 내쉬었다. 깔끔한 오렌지색의 편지지 뒷면에 "당신이 한 여자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 이건 무슨 황당한 경우인가. 편지는 더도 덜도 아닌 딱 거기에서 끝나 도무지 누군지도 알 수 없이, 단지 스물 세 살이라고만 자기를 밝힌 나와 경민이 오늘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나눈 이야기까지 알고 있다면 하지만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은, 나에게 편지를 쓴 것이 누구일까 하 "당신이 한 여자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 잠시 맑아졌던 머리가 다시 흐리멍텅해지고 속이 거북해졌다. 나는 화 ♠ "넌 정말 좋은 친구야." 내가 어렵게 말을 꺼내었을 때 그때껏 제 이야기를 즐겁게 떠들어대던 "넌... 정말 좋은 친구야, 경민아." 내가 다시 말을 반복하자 경민은 눈을 내리깔며 술잔을 바라보았다. "네 말을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우리가 그렇게 급할 필요가 있을 경민이 술을 들어 꿀꺽 삼키다가 기침을 토하는 바람에 내 말은 끊겨 경민과 나 사이를 오가는 것은 어지러운 담배연기와, 그리고 그나마 "오빠. 나도 담배 하나 필께요." 경민은 내 담배갑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어색하게 입에 물고는 나는 가만히 경민에게서 담배를 빼앗았다. 경민은 아무 말없이 담배를 "왜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책임있게 대답할 말이 없기도 했다. 적어도 내 "오빠. 난... 그냥 좋은 친구인가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경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솔직히... 결혼이나, 평생을 함께 하자는 말은 내게 부담스러워." "그래서, 그냥 좋은 친구인가요?" "..." "제가 하룻밤 함께 잤다고 해서 평생을 책임지라고 엉겨붙는 구식 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거야?" "하지만 오빠. 저를 그냥 친구로만 대했었던가요? 나한테 먼저 정을 이야기가 그리로 넘어가면 내게 할 말이 없었다. 기실 그 날 술에 더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 말을 듣고 경민은 한참이나 울었다.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고개 "오빠. 나... 사실은... 구식 여자에요. 하룻밤 잤으니까... 평생... 한참이나 지난 후에 경민이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녀의 "그럼, 오늘이 마지막이겠군요." 경민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아냐, 경민아, 나는 그런 뜻이 아니야. 이건 진심이야. 넌 정말 좋은 경민은 피식 한 번 웃고는 자리에서 나섰다. 그녀의 걸음이 위태로와 ♠ "여보게, 자는가?" 편지를 책상에 던져두고 아슴하게 잠이 들려던 무렵에 가볍게 문 두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술을 그렇게 먹었어. 정군답쟎게. 여기 꿀물 좀 나는 불을 켜고 노인을 안으로 들였다.
술을 많이 마신 날의 꿈에는, 술자리가 그대로 이어졌다. 만취와 꿈의
경민의 죽음을 내게 알려준 것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꿀물 대접을 내 "자네 각시 있잖은가. 그 참한 처이. 죽어버렸어." 나는 마시던 꿀물 사발을 내려놓고는, 꿀물과 과음했던 술을 한꺼번에 "교통사고 답지 않은 교통사고였지. 육교에서 떨어지는 마침 그 찰나 노인은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를 했다. 어찌나 덤덤한지 "꿀물 들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구 산 사람은 살어야지." 나는 고개를 끄떡이고서 꿀물을 한 모금 들이켰으나, 뱃속에 불똥이 "어르신. 어르신이 부럽습니다." "뭐가? 늙은 것이?"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떡였다. 노인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 "어르신. 경민이를 한 번만 더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시체는 이미 다 부숴져 버렸다네." "경민이의 혼이라도 볼 수 없을까요?" "다시 보아서 무엇을 할려고 그려?" 그러고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녀를 만나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노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더니, 내 손목을 가볍게 움켜쥐었 "따라오게." "어디로 가실려구요?" "따라 와보면 알 것이여." 나는 영문을 알지 못하고 노인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 노인은 자취방 "이보아, 자네 그 새악시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는가?" "올 봄이었습니다. 서너달이 지났네요." "그 전에 그 새악시를 본 적이 없었는가?" "없었는데요." "꼭 그렇지는 않을걸세. 내가 손금허고 사주를 보니까 그래." "어르신네, 제가 경민이와 그 전에 만난적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자네 팔자에 그렇게 써있어." "글쎄요.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거 "이 늙은이 말만 믿고서 그저 따라와보게." 노인은 그렇게만 대답하고서 계속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노인이 걷 얼마나 걸었는지 정확히는 기억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삼십분? 혹은 그러다가 갑자기 밝은 빛이 눈을 아프게 찔렀다. 손으로 눈을 가리고 "여기부터는 나는 모르는 길이여. 자네가 앞장을 서서 돌아댕기면서, 노인의 말을 듣고 나는 눈을 가린 손을 살짝 내렸다. 환하지만 어딘지 우중충하고 멋 없는 회색의 교복 상의에다 싸구려 넥타이를 서툴게 묶 ♠ 나는 연애편지를 쓰고 있었다. 아니, 연애편지를 쓰는 나를 바라보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한 병에 들어있는 물과 기름같다고나 할까. 아니면 하지만 나는 굳이 별다른 신기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아마도 노인 탓 열 일곱 시절의 내가 좋아했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나는 지금 내가 이 사랑. 사랑이라는 말에는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과
그날 야간자습시간 내내 편지를 쓴 나는 그 편지를 봉투에 접어서 두 여고 앞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었고, 교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학 그러고보니 여학생의 무리중에 어딘지 낯이 익어보이는 얼굴이 하나 나는, 과거의 나, 는 가방에 손을 넣어 책틈에 끼워진 편지를 만지작 - 끼이이익 무언가에 놀란 듯 버스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멈추어 섰다. 나는 내 발걸음이 대강 수습되자마자 얼른 넘어진 여학생의 가방을 받 "미안해. 아이구 이걸 어쩌지. 미안해요." 조그맣기가 인형같은 소녀를 밀어젖혀 넘어뜨린 것은 여간 미안스러운 "1-2 이경민" 소녀의 옷자락에 매달린 조그만 명찰에는 그렇게 씌여있었다. 그녀의 - 경민, 경민아. 나는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괜찮아요." 경민이가, 작은 소녀가 지저귀듯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가 죽 - 경민아. 내 목소리 들리니? 경민아. "다치지 않았니?" - 경민아. 경민아. 나야, 나란 말이야. "그런데 얼굴이 어딘지 좀 낯이 익네. 혹시 어디서 나 본 적 있어?" "아뇨." 그 때 급작스레 멈추었던 버스가 이번에는 급작스럽게 출발했다. 사람 과거의 나, 는 경민의 얼굴을 두어번 더 쳐다보면서 고개를 몇 번 갸 ♠ 버스에서 내리자 정류장에서는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내 어 "이걸로 끝인가요?" "나두 다는 모르지. 허지만 끝이라구 단정짓지는 말게. 종종 아주 끝 "하지만..."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게. 사람 일이라는 건 그렇게 급한 것이 아 "여러 가지 냄새가 나는데요?" "그렇지? 하지만 머잖아서는 냄새들이 모두 사그러들어서, 그저 구수 "이 고약한 썩은 냄새들도요?" "허믄. 꽃향기만 있다면 오래 가지 못해. 허지만 썩은 내음이 섞여야 "이 길이 도대체 어떤 길이죠?" "이 길? 허허허..." "어떤 길이길래..." "바로 자네 머릿속에 난 길이지, 워디긴 워디여." "예...?" "허허허." 나는 노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노인도 더 설명해 주지 않 "가끔씩, 언젠가 한번 겪었던 일을 똑같이 한번 더 겪는다는 생각이 "예." "그 때가 자네한테는 아마 아주 중한 때일티니께 잘 간직하여. 미래나 그 말을 듣는 순간에야 나는, 어처구니없는 또 한 가지의 사실이 기억 ♠ 목이 무척 말라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방바닥에는 토사물이 담긴 그 마침 마당에서 빗질을 하고 있던 노인이 내게 알은 척을 했다. "이보게. 어제는 술을 많이 마셨드만. 무슨 일이 있었든가?" "아니요. 무슨 일은... 제가 어제 좀 많이 취했었지요?" "그러게. 내가 꿀물을 한그릇 타다가 뒀는데 그것은 먹었나?" "예. 달게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제 제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 "이야기는 뭔 이야기여. 술에 녹아떨어진 사람 붙잡구서." "꿈을 꾸는 바람에... 꿈에 어르신이 나왔거든요." "꿈도 젊을때나 꾸는거지. 이삼십년은 꿈을 안 꾼 것 같으이." "그렇군요." "달게 자는 것이 더 좋기는 허지만, 한번씩은 꿈이 워뜬 거더라... 하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서, 이부자리를 털고 방향제를 뿌리며 방을 치웠 그러나 그 편지가 꿈이었든지 아니었든지, 아무려면 어떠랴. 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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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느슨하게 섞인 가벼운 술자리 정도로 생각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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