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장숙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영훈을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그래서 박장숙은 마영훈을 두들겨팼다. 주먹으로도 패고, 발로도 패고, 물컵으로도 패고, 도끼자루로도 팼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정부가 국민을 속일 수 있는 수위가 어느 수준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상황마다 달랐다. 국민들은 때때로 굉장히 똑똑해서 정부 관계자들의 속셈을 훤히 다 아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에도 속아넘어갈 때가 있다. 지금은 속아넘어간 경우였다. 마영훈의 기자회견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방송되자마자 전국은 발칵 뒤집어졌다. 공포는 감염되고 증폭되기 마련이라, 언론 매체들은 서로가 서로를 베껴가면서 심해인에 대한 이야기를 확대발전시켰다. 여러 사람이 물고 물리는 일에 있어서는 사건이 꼭 의도한 사람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국방부장관 박장숙이나 대통령 장쾌한 등은 단지 여론의 관심을 잠시 딴 곳으로 돌리는 것 정도를 원했으나, 국민은 그 정도의 상황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결국 장쾌한 대통령은 심해인과의 대결을 위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다. 2. "조과장, 도대체 이번 신상품, 사과맛 새우깡이라고 했던가, 그거 왜 그 모양인가." 죠기종은 움찔했다. 그는 속으로 왜 항상 밥먹을때 꾸지람이람, 하고 읊조렸다. 설렁탕이 콧구멍으로 들어갈 지경이었다. - 아니, 심해인이 지상으로 쳐들어오기 일보직전이라는 이 시국에, 사과맛 새우깡 좀 안 팔리면 어떻습니까? 죠기종은 반농담으로 어깃장을 놓을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농담은 대화가 통하는 상대에게 해야 농담이 되는 법이다. "품질팀에서 연락 받았지? 세 봉지당 하나씩 불량 있다잖아. 엊그제는 그거 씹어먹다가 이빨 부러졌다는 사람한테 전화왔어. 도대체 생산 관리를 하는거야 안 하는거야? " 부장은 깍두기를 우적우적 씹어가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부장의 나이 올해 칠십다섯. 출산률 저하 때문에 정년이 연장된 첫 번째 세대였다. 그는 스물여덟살에 취업을 해서 마흔살에 부장으로 진급한 이후 삼십오년동안 부장을 했다. 만년부장이었다. "그렇다고 매출이나 높으면 말을 안 해. 팔아서 광고비나 제대로 뽑았니? 응?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사과맛 새우깡이니, 응? " 부장은 모욕에 가깝게 몰아붙였지만 죠기종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출산률 저하 때문에, 세상에는 취업자보다 일자리가 더 많았다. 정년까지 일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으며, 대졸 미취업자는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을 납부하지 않은 괘씸죄로) 벌금이 부과되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고 해서 모든 구직자에게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 정원이 수험생보다 더 많아진다고 재수생이 사라지지 않듯이 말이다. 더더구나 이등국민인 동남아 혼혈 한국인으로서는 좋은 일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죠기종은 베트남인 아버지와 라오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남들 다 받는 사교육 한 번 받지 못하며 자랐다. 대학을 다니기는 했지만 대학정원이 모자란 대학에서 사년을 억지로 보낸 것에 불과했고, 시시껄렁한 일을 하면서 청춘을 보내다가 이미 나이가 서른 다섯이 되었다. 그나마 지금은 국내 최대의 스낵 메이커인 동심 주식회사에 다니면서 새우깡과 관련된 사무일을 보지만, 이 회사에서 일단 쫓겨나면 몸을 고되게 굴리면서 돈은 적게 버는 일을 해야될 것이었다. 죠기종은 타고나기를 생활력이 강하지 않은 사람으로 타고났지만, 동시에 생활력 없는 남자를 증오했다. 형편이 그러다보니 죠기종은 윗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꾸벅거리며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참 부장의 말이 계속되고 있을 때 죠기종의 핸드폰이 울렸다. 죠기종은 과장되게 허둥거리면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핸드폰을 꺼내 화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저쪽편에서 어머니가 울먹거리고 있었다. "기종아... 기종아..." " 죠기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어머니." "사고가 났다. 너희 아버지가... 총에 맞았어... 위독하시다." "총이라니요." "너희 아버지가 엊그제 무슨 연구재료를 구한다고 바닷가에 갔다가... 심해인 소탕하던 군인들이 총을 쏴서..." "알았어요. 곧 갈께요." 죠기종이 밥숟갈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부장이 짐짓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 때, 죠기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장님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야겠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하십니다." 죠기종은 부장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젠가 아버지가 죽을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막상 아버지의 위독을 듣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항상 죠기종에게 가족이란 먹구름과 같은 존재였고, 아버지만 세상에 없다면 먹구름 걷힌 세상에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한 기분이 아니다. 먹구름이 걷힌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닐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먹구름이 걷히면 하늘이 내려앉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 죠기종의 아버지는 원래 베트남 호지민 대학 출신으로, 상상력이 기발하고 두뇌가 뛰어나서 엽기죠라고 불리었다. 때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졸업한 대학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 1위의 대학을 나온 사람의 두뇌는 세계 1위권인 반면, 세계 500위 대학을 나온 사람의 두뇌 수준은 세계 500위권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베트남의 호지민 대학은 베트남 칠천만 인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학교다. 그곳을 갈 수 있는 사람의 두뇌는 미국에서 최고의 대학에 가는 사람의 두뇌보다 모자라지 않다. 그러니까 엽기죠는 똑똑하다. 하지만 그는 베트남에서 행복할 수 없었다. 그는 가족의 가치관이 남아있는 베트남에서 장남으로서 의무를 지키는 것을 버거워했다. 그에게는 무책임하고 외로운 자유의 땅이 필요했다. 엽기죠는 베트남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결국 한국으로 입국하게 되었다. 조용하게 살지만 동시에 창의력을 불태우는 한국에서의 삶이었다. 그는 직장에서 하루 여덟시간을 일하고 적은 월급을 받고 손바닥만한 그의 사글세방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는 과학이나 의학서적을 읽고 인간과 물질에 대한 과학 실험을 했다. 술도 마시지 않고, 사람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조용하고 호젓하게, 그러나 즐겁게 그의 호기심을 불태웠다. 그런 베트남 남자를 사랑하게 된 라오스 여자가 있었다. 물론 베트남과 라오스는 같은 나라가 아닐 뿐 아니라, 언어와 풍습도 달랐다. 하지만 원래 왕따는 왕따끼리 친하고, 이등국민은 이등국민끼리 잘 노는 법이다. 미국땅에서 용케 한국남과 중국녀가 영어로 사랑을 속삭이듯, 죠기종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국어로 사랑을 키웠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엽기죠는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사랑에 빠졌다기보다는, 호젓함이 때때로 외로움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것을 채워줄 뭔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엽기죠는 결혼을 한 이후에 한 번도 가정을 돌본 일이 없었다. 결혼 얼마 후에는 그나마 직장마저 그만두고 집에만 틀어박혔다. 죠기종과 두 동생은 어머니의 손으로만 자랐다. 국민소득이 세계 십위권에 진입한 한국이라지만, 아무리 많이 배웠든간에 동남아시아계 한국인 여자가 얻을 수 있는 직업은 그다지 폭이 넓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며 간신히 죠기종의 형제를 먹여살렸다. 그렇게 자란 죠기종이었으니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때때로 엽기죠라는 자신의 별명을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죠기종은 그 별명이 너무 싫었다. * "어떻게 된 일이에요!!" 병원을 뛰쳐들어가자마자 죠기종이 어머니에게 외쳤다. 어머니가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죠기종이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엽기죠를 보았다. 가쁜 숨을 내쉬던 엽기죠가 힘겹게 눈을 떴다. 내장을 다쳤으며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도 죽음의 신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죠기종이 아버지의 눈을 슬며시 피했다. 꿀릴 것도, 미안할 것도 없는데, 왜 아버지의 눈을 피할까. 엽기죠가 더듬더듬 손을 움직여, 죠기종의 손을 잡았다. 죠기종은 그 손을 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죽어가는 환자가 어설프게 쥔 것임에도 불구하고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정이나 슬픔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손으로 전류가 타고 흘러오는 것 같았다. 어두운 힘이, 검은 구름이, 회색 피가, 손을 타고 죠기종에게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엽기죠의 연구실, 그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죽어가는 아버지가 그의 영혼을 밀어넣고 있는 것 같았다. 죠기종이 힘껏 입을 벌렸으나 목소리가 되어 나오는 말은 없었다. 엽기죠가 죽어가는 사람 답지 않게 킥킥 웃더니 말했다. "기종아, 넌 나를 가장 닮은 아들이다." 죠기종은 힘껏 고개를 저으려고 했다. 죠기종으로서는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하지만 고개는 돌아가지 않았다. 마치 어둠의 힘에 고개를 꽉 잡힌 기분이었다. 마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중과부적인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죠기종은 그 말을 거부할 자신이 없었다.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었다. 죠기종은 자신의 핏속에는 주체할 수 없는 창조성의 피가 날뛰고 있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꾸미고 개발해가는 것은 죠기종이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래로 단 한 번도 한 일이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하고 있었고, 그는 그의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엽기죠의 말 한 마디에 죠기종은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을 깨달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음을 느꼈다. 무병을 거부하던 무당이 마침내 신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다른 아버지처럼 남겨줄 재산은 없다. 하지만 내 연구를 물려주마... 내 마지막 연구... 세상을 뒤엎을 수 있는 내 마지막 연구... 미완성된 연구는... 전혀 다른 감각이나 감정의 연결이었다... 예를 들면... 가려움을 느낄 때 기뻐진다거나... 달콤함을 느끼면 왼쪽 다리에 쥐가 내린다거나... 사랑을 느낄 때 먹었던 것을 토한다거나... 그 연구 결과는 연구실에 있단다..." 엽기죠의 말에 조금씩 힘이 빠졌다. 엽기죠의 얼굴로 죽음의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하지만 엽기죠는 한 마디 한 마디 힘줘가면서 그의 연구를 아들에게 전했다. 아버지의 임종의 순간에 그것은 서로의 공감대가 되었다. 두 사람이 마주 보았고,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기종아, 이제 니가 엽기죠다." 죠기종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가볍게 끄떡였다.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제는 죠기종이 엽기죠 2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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