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맛 새우깡 - 2부 1편
칙칙한 사회의 제목을 아가씨맛 새우깡으로 변경.

아울러 2부부터는 19금으로 변경.

그러고보니 처음 찝찝한 사회를 쓰려고 할 때는 엽기죠는 등장인물이 아니었다.
그때는 <심해인이 가져온 문화적 쑈크 때문에 세상이 온통 뒤집어져서 남녀의 역할이 바뀜> 뭐 이런 이야기를 쓰려고 어렴풋이 감을 잡고 있었는데, 역시나 최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군아. -_


죠기종은 도대체 왜 자신이 쫓기는 입장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허무개그 식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쫓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쫓기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설마 술 마신 다음 날 늦게 출근했다고 해서?

그 날 죠기종은 옹부장이 던지 재떨이에 인중을 얻어맞고 잠시 기절했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고 다시 사무실로 되돌아왔는데, 공기가 이상했다. 그가 들어서자 사람들이 경원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잠시 후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대여섯명이 죠기종을 별도로 호출했다. 그 검은 옷의 사내들은 회장의 비서실에 있는 사람이었으나 죠기종이 거기까지 알 리는 없었고.

호출되어 나가던 중에 죠기종은 수십 가지의 상상을 했다. 그가 만든 시약중 하나가 국가 안보에 영향을 끼쳐서? 독재정권에서 인종차별정책, 그러니까 동남아계 조선인 전원 체포령을 내려서?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보니 점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죠기종은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았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는 짜증을 내면서 죠기종을 부축해서 끌고가려고 했다. 순간 죠기종은 이대로 가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며 검은 양복의 사내들을 뿌리치고 달려나갔다.

그렇게 달려나간지가 벌써 일주일째였다. 첫째날에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악착같이 그의 뒤를 쫓아 달려왔고, 둘쨰날에는 경찰까지 가세했다. 죠기종은 공포에 질려 감히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을 맴돌았다. 죠기종은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다. 위치추적에 걸려들까봐 핸드폰마저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이 지났다.

죠기종은 꼭 70년대 반공방첩 포스터속의 간첩과 실직자의 중간쯤 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계절을 알 수 없는 누더기같은 점퍼 한 벌을 입고, 감지 않은 더벅머리에, 눈은 불안과 공포에 젖어 있었다. 그는 그런 모습으로 도시를 음울하게 헤매고 다녔다. 급하게 나오느라 현금이 없었고, 위치 추적을 당할까봐 카드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도 도시를 개처럼 쏘다니다보면 하다못해 인심좋은 풀빵장수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죠기종은 고픈 배를 부여잡고 얼굴에 배고픈 표정을 잔뜩 새겨둔 채 거리를 걸었다. 가슴속이 텅 빈 것 같았다. 탈주범이나 탈영범에게는 전화할 애인이라도 있는데, 나는 뭔가. 문득 해인씨 생각이 났다. 그토록 보고 싶던 해인씨, 그 혓바닥 맛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가 대형 텔레비젼 매장 곁을 지나던 그는, 무심코 텔레비젼에 눈을 주었다. 심해에서 온 생물과의 실시간 대화를 중계방송으로 전해준다는 아나운서의 보도였다.

"뉑, 심해의 사람들과 우리는 싸울 것이 아니라 평화협정을 맺어나갈 것입니다. 그에 앞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 위하여 심해 사람들과의 백분토론을 실시하겠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조금 웅성거렸다.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로 심해인이 존재하기는 하는가보다, 하는 대화에서부터 심해인은 빨갱이니까 다 쏴 죽여버려야 된다는 노인네들까지.

죠기종은 잠시 멍하게 서서 텔레비젼을 지켜봤다. 실험실에만 쳐박힌지 한달이 넘었다. 그 동안은 텔레비젼을 일초도 본 적이 없었다. 공연히 향수가 자극되었다. 객관적인 진행과 '뉑' 이라는 말버릇으로 유명한 손덕희 아나운서가 방송을 진행했다. 패널들이 하나하나 인사하는데, 마영훈 국방부 대변인, 넥스티클 김명우 기자, 대학교수인 최용학 등이 있었다. 죠기종은 김명우의 인상이 어딘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가 언젠가 술집에서 마주친 적이 있음을 기억했다.

한참을 더 보다가 죠기종은 쓸쓸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였다. 패널이 던진 질문에 대해 심해인이 답변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답변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답변을 듣는 순간 죠기종은 묘하게 속이 뒤틀리는 것을 깨달았다.

죠기종의 낯빛이 가볍게 변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고 텔레비전쪽을 보았다. 심해인의 답변 소리는 텔레비젼을 시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파묻혀 있었으나, 가끔씩 몇 마디는 죠기종의 귀에까지 도달했고, 그 소리가 귀에 닿을 때 마다 죠기종은 귓바퀴부터 뇌의주름을 거쳐 심장속까지 근질근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목소리, 바로 심해인의 목소리였다.


*

"심해인의 일반적인 키는 얼마나 됩니까? "

- ㅅㅣㅁㅎㅐㅇㅣㄴㅇㅡㄴ ㄷㅐㄱㅐ ㅇㅣㄹㄹㅗㄹㅏㅈㅓㅇㄷㅗㄷㅚㅂㄴㅣㄷㅏ.

"네 심해인의 키는 일반적으로 일 로라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로라라는 단위는 심해인이 길이를 표현하는 단위인데, 국방연구원에서 사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일 로라는 약 45 센티미터 정도입니다."

마영훈이 말하자 박장숙이 뒤를 이었다.

"심해인은 작고 미약한 존재입니다. 키가 45센티미터라면 사람보다 반의 반도 안되는 크기인데..."

손덕희가 박장숙의 말을 끊었다.

"뉑,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구요. 심해인 께서는 육상의 일반적인 사람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

- ㅇㅜㄹㅣㅇㅡㅣㅈㅏㅁㅁㅏㅇㄱㅕㅇㅇㅡㄹㅗ ㅂㅗㅏㅆㅅㅡㅂㄴㅣㄷㅏ. ㅇㅜㄹㅣㅂㅗㄷㅏㅅㅣㄴㅈㅏㅇㅇㅣㄴㅔㅂㅐㄱㅏㄹㅑㅇㄱㅣㄹㄱㅗㅈㅣㄹㄹㅑㅇㅇㅡㄴㅂㅣㅅㅡㅅㅎㅏㄹㅈㅣㄷㅗㅁㅗㄹㅡㄱㅔㅆㅅㅡㅂㄴㅣㄷㅏ.

심해인의 말이 끝나자 마영훈이 통역을 하려 했다.

"이미 충분히 확인했는데 키는 지상인이 심해인보다 네 배 가량 크고 몸무게는 비슷..."

"뉑, 저도 알아들었습니다. 국어학박사 한상훈 박사님, 우선 여쭙겠습니다. 심해인의 언어는 우리와 다른 듯 하면서도 상당히 비슷한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만약에 심해인이 실제로 신라시대에 이어도에 살다가 단체로 수중으로 내려간 것이 확실하다면, 그들은 서기 700년 경의 언어를 보존하고 있을 것입니다. 언어는 일반적으로 천년에 10% 정도가 변한다고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의 세상과 우리의 언어 차이는 15% 정도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러시아어와 폴란드어의 차이 정도로, 세부적인 의사 교환은 어렵지만 대화 자체는 가능한 수준입니다."

"뉑, 그 말씀은 전라도와 경상도는 세부적인 의사 교환은 어렵지만 대화 자체는 가능하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아니, 제 말씀은 전라도와 경상도가 아니라..."

"뉑,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시간관계상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마영훈이 말을 맺기 전에 손덕희가 말을 끊으며 다시 물었다.

"생물학 박사 정원석 박사님께 여쭙겠습니다. 수중 삼천미터에 사람이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

"기본적으로 지구 위에서 사람이 살지 못하는 환경은 없습니다. 심해인의 진술에 따르면 키가 우리보다 1/4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실제 부피는 인간의 1/16에 해당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체중이 비슷하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높은 수압에 인간이 적응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해저 삼킬로미터에서 수압은 기압의 몇백배에 이르는데, 이러한 수압을..."

"뉑, 정원석 박사님도 평소에 스트레스의 압력을 많이 받으셔서 그렇게 작고 무거우신 것 같습니다."

정원석 박사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뭐라곤가 말을 하려고 했는데, 손덕희의 손짓에 따라 정원석의 마이크가 꺼졌다.

"뉑, 지금까지 알아보신 바와 같이 심해인은 평소에 압력을 많이 받아서 작고 무거운데, 지상의 인간과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관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논평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

손덕희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갑자기 녹화장 입구의 문이 벌컥 열렸다. 패널과 방청객들이 일제히 문이 열린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남루한 사내 하나가 나타나, 큰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왔다.

"해인씨-! "

사내는 방청석 사이를 무작정 달려서 심해인이 탑승하고 있다는 검은 구체까지 무작정 뛰어갔다. 스태프들이 놀라서 가로막았지만 그들을 모조리 뚫었다. 예기치 않은 사내의 난입에 손덕희나 기타 패널들은 놀라서 뒤로 물러났고, 그 사이에 사내, 죠기종은 검은 구체를 두드리며 외쳤다.

"해인씨- 해인씨- 괜찮아요? 다치지 않았어요? "

순간 검은 구체가 마치 움찔하는 듯 하더니, 작은 탄식같은 소리가 울렸다.

- ㅇㅏ... ㄷㅏㅇㅅㅣㄴㅇㅣㄱㅜㄴㅇㅛ

죠기종은 너무도 감격적이고 마음이 애틋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오바이트를 했다. 꾸엑 하고 격심하게 토악질을 했지만, 이틀간 먹은 것이 없어서 쓴 물만 나왔다.

방송사 경비원들이 가스총을 들고 접근하자, 죠기종은 품에서 플라스크 하나를 꺼내며 소리쳤다.

"너희들 모두 꼼짝하지마. 이 안에는 독가스가 들어있다. 내가 독가스를 놓으면 이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 "

"뉑, 말씀이 비논리적인데요, 독가스를 놓는 게 아니라 플라스크 마개를 놓으시는..."

"닥쳐! "

죠기종이 외치자 손덕희가 움찔해서 물러났다.

죠기종이 인질극을 벌이는 은행강도처럼 사납게 외쳤다.

"지금 이 안에 심해인 있지? 심해인을 누가 잡았어? "

죠기종의 말에 패널들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한 사람에게 손가락질이 모아져갔다. 그것이 바로 마영훈이었다. 마영훈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뭘 어떻게 한 건 아니고...

"닥쳐! 내가 묻는 말에 똑똑히 대답해! 해인씨를 어디서 붙잡은거야? "

"동해 바다 심해 삼천미터에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 미친 놈아! "

마영훈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심해인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난 뒤에 박장숙으로부터, 또는 다른 동료로부터 숱하게 면박을 당했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면박을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죠기종은 플라스크를 한 손에 든 채 주위를 경계하면서 조심조심 쇠구슬 뒤로 향했다.

"해인씨는 내가 데려간다. 불만 있는 놈은... "

*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 아리랑고개 아리령아파트 109동 208호의 작은 방에서 무전을 통해 박절기로 끊어내는 것 같은 음성을 내보내고 있던 심해인양 또한 무전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 즉시 그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을 찾아헤매온 어느 남자의 순정에 가득찬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1970년대 로맨스 소설을 너무 읽다가 사고방식 자체가 비련의 여주인공스럽게 바뀌어버린 심해인양은, 자신때문에 불행해진 한 사내 죠기종 때문에 가슴이 너무나 시렸다. 동시에 이런 장소에서 그런 운명을 만나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이 너무도 저주스러웠다.

무전기 너머에서 자신을 찾으며 울부짖는 저 사내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면. 그를 자신의 부드러운 가슴에 안고 지난 이십여년간 고이 지켜온 것을 줄 수 있다면. (물론 그녀가 이십년 넘게 몸에 지니고 있던 것이라고는 어금니 정도 밖에는 없다만...) 사랑받지 못하고 세상을 증오하며 사는 저 거친 사내를 위해 된장국 한 그릇 끓여주면서 다정하게 여보. 라고 부를 수 있다면.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저곳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사내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줄 수 있다면.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의 곁에 있는 남자는 모두 불행해진다. 가슴이 아픈 것은 자기 하나로 족하다. 혼자서 악녀가 되고,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에게 악하게 굴고, 그 남자를 보낸 후에 홀로 아픔을 달래면 된다.

복잡한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가세요! 제발 나 같이 볼품없는 여자는 버리고 가세요! "

*
 
녹화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얼어붙었다. 어림반푼어치도 없이 저 구체에서 나온 소리였다.

손덕희가 직업병적으로 마이크를 구체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전체 문맥에 적절하다고 생각하십..."

박장숙이 마이크를 집어던졌다. 손덕희가 뒤통수를 맞아서 푹 쓰러졌다. 뒤통수가 제대로 깨져서 붉은 피와 허연 골수까지 튀어나왔지만, 누구도 쓰러진 손덕희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영훈이 급히 카메라 감독에게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정규방송 관계로 본 토론회는 여기서 마치고..."

이어서 마영훈의 이마 한 복판에 마이크가 명중했다. 마영훈이 비명을 토하며 쓰러졌다.

*
by 찬별 | 2006/11/16 23:37 | 글쓰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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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woodstock at 2006/11/17 09:30
아 골때려.....2편부터는 19금 내용 나오는고얌? 기대할께요 호호호
Commented by 쩌미 at 2006/11/17 19:00
아..옛날에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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