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맛 새우깡 2부-3

재미도 없는데 이쯤에서 그냥 접어버릴까 하다가
지금까지 쓴게 아깝기도 하고 아껴둔 것도 있고 하니까
걍 나가고싶은대로 막 달려버리자.



심해인은 갑자기 무전기 너머에서 비명과 폭음이 연달아 들리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원래 거짓말도 그렇지만, 감정 또한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여가며 증폭시키는 것이다. 마영훈은 거짓말이 그렇고, 심해인은 눈물이 그렇다. 잘 어울리는 숙질간이다. 심해인은 어느 겨울날 하품하다가 눈물을 흘린 끝에 삼일 밤낮을 대성통곡했던 적도 있었던 바. 남자 하나의 삶이 어디론가 스러졌는데 그 남자가 자신과 애인이 될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주제로 거의 뮤직비디오 스토리에 공감하듯이 심해인이 빠져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기종씨 없나요? 기종씨! 기종씨! 제발 대답해봐요. 제발-! "

*

심해인의 울음소리가 거칠어지자 구체 너머에 있던 마영훈의 똥줄이 타들어갔다. 섬광탄은 단지 시력만 앗아간 것이 아니다. 마영훈을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몽둥이로 전신을 신나게 두들겨맞기라도 한 듯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오직 열려있는 감각기관인 귀- 귀로는 계속해서 심해인이 죠기종을 찾으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기종씨-! 제발 대답해봐요. 제발-! 나때문에 불행해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해봐요. 내 사랑은 여기서 이렇게 당신을 향해 타오르는데. 그런데 당신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은 어쩌라구요."

심해인의 대사가 점점 신파 발라드 노래 가사가 되어갔다. 여러 사람이 끙끙거리는 신음을 내기는 하지만 제대로 무전기에 답변을 못 하는 가운데, 심해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모인 각계의 전문가들은 심해인의 존재 증명을 제대로 듣고 있었다.

물정모르고 어리버리한 생물학 교수가 물었다.

"아니... 심해인이 저렇게까지 지상의  인간과 교류를 할 수 있었습니까? 외람된 질문이지만...마영훈 대변인."

"...네 말씀하시죠..."

"지금 저 심해인이 계속해서 찾는 죠기종이라는 젊은이는... 심해인과 성적인 접촉도 맺었습니까? "

마영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마음같아서는, 아이 씨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박장숙의 도끼눈이 보이는 듯 했다. 마영훈이 아무리 각계에 공인된 거짓말 대마왕이라고 해도, 지금 상황은 거짓말하기에 충분히 낯간지러운 상황이었다.`

교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박장숙이 대신 했다.

"어이.. 교수님... 그냥 입 닥치시오."

*

죠기종은 탈진한 채로 쇼파에 널부러져 앉아있었는데, 마취가 풀릴만한 시간이 지났지만 과연 마취가 풀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폼으로봐서는 조금도 마취 약효가 개선된 것 같지가 않았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지 아닌지도 분명해보이지가 않았다.

말하자면 원래 죠기종이라는 인간이 흉폭한 것도 아니고 포악한 것도 아니었으니, 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방송국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 가스총을 들고 횡포를 부린 것은 평생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꺼번에 필생의 에너지를 빼고 난 후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탈진상태가 되어, 말을 걸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천신만고끝에 데려온 죠기종이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폐인상태로 대화가 되지 않자, 의사들이 줄지어 몰려와 진단했다. 진단 결과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죠기종은 의사에게 주사를 맞자 조금은 정신을 차리는 모습이었다. 그의 눈에 조금씩 초점이 잡히더니, 간신히 고개를 들었을 때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다 소용없소. 내게 심해인, 해인씨를 데려오시오."

죠기종이 난동을 부리던 장면을 절반쯤은 텔레비젼의 토론 프로그램으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첩보요원이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본 임원들은 모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임원 하나가 신구 회장에게 조용히 귀속말을 했다.

"저 심해인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찾아서 데려다 줄까요?"

그러나 신구 회장은 고개를 가볍게 저였다.

"기다려봅시다."

*

의외로 그들은 그다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죠기종의 상태가 어떻든간에, 밥은 먹어야 했다. 샤롯데 제과의 임원 십여명과, 의사와, 그리고 죠기종까지 한꺼번에 식당을 향해 이동했다.

그들이 자리잡은 식당에서 마침 점심 뉴스가 끝나고 광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샤롯데의 임원들은 그 광고가 낯이 익었다. 불과 이틀 전, 그들이 모여서 검토했던 경쟁사의 광고였다.

<저희 동심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신상품... 바로 아가씨맛 새우깡입니다. 이전의 새우깡이 새우의 짭조름함에 집중했다면, 아가씨맛 새우깡에는 건포도의 달콤함, 게맛살의 탱탱함, 꼬막의 쫀득쫀득한 맛... 개봉박두. 보름만 기다리삼>

그들이 지난번에 검토했던 광고와 대사는 거의 같았다. 다만 15초 버젼으로 짧게 제작되어 중간중간에 생략된 느낌이 약간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처음 순간 눈을 의심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 광고 모델은 최근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는 아나운서인데, 그 숱한 공세에도 한 번도 옷을 벗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쟁사 임원들조차 눈이 휘둥그래질만큼 아슬아슬한 옷차림을 입은 아나운서는, 엉덩이를 실룩샐룩 흔들면서, 건포도를 말할 때는 가슴을 내밀고 게맛살을 말할 때는 엉덩이를 흔들었으며 꼬막을 말할 때는 공연히 다리를 벌리고서 한 번 앉았다가 일어났다.


광고 모델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역대 방송광고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만큼의 야한 컨셉이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이틀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샤롯데 제과의 임원들은 광고가 끝나고 한참 지나서야 그들이 따귀라도 한 대 맞은 것과 비슷한 상황임을 깨달았다. (한참 지나기 전까지 그들은 그저 벌거벗은 아나운서의 모습을 보고 행복했을 따름이었다.)

임원 하나가 괄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이 놈들이 도대체 무슨 수를 쓴거야. 이렇게 빨리 뭔가를 바꾼다는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이야?"

그러자 다른 임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큰 목소리로 제각각 울분을 토해냈다. 마치 울분을 토하지 않으면 회장의 눈에 띄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죠기종이 밥상을 힘껏 내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죠기종은 미친 사람 같았다. 밥상을 힘껏 몇 번이나 내려치고, 텔레비젼을 향해 국그릇을 집어던졌다. 그러다가 말했다.

"아가씨맛 새우깡은 내가 만들었는데, 왜 저기서 광고를 하고 있는거냐구-."

임원 하나가 다가서서 말리려고 하자, 의사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저 분은 심신이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임원 한 명이 죠기종의 어깨를 더듬으러 다가갔다가 죠기종이 던진 국사발에 사타구니를 정면으로 얻어맞은  뒤로는 아무도 가까이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죠기종은 그 자리에서 십 분 가까이 난동을 부렸다. 십분이 지났을 때 그는 자리에 드러누웠고, 의사들이 조심스럽게 그를 침대로 옮기려고 했다. 그는 다시 벌떡 일어났고, 아주 또렷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저보다 나은 제품을 개발하기를 기대하시는 분들이라면, 저에게 연구실을 제공해주세요."

신구 회장은 죠기종을 쳐다보며 물었다.

"제품은 더 나을 뿐만 아니라, 더 빨리  나와야한다네."

죠기종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지만, 신구는 죠기종의 또렷하다못해 정신나간듯한 눈빛에서 그의 열정과 집념을 읽었다. 저런 눈빛을 가진 자가 해내지 못하는 일이라면, 그냥 깨끗히 포기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없다.

신구 회장은 회계 담당 임원에게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그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빨리 준비해주게." 하는 눈빛을 보냈다.

*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일주일이 흘렀다. 그 일주일은 폭풍전야라고 불러도 좋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두시라고 불러도 좋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웃고 즐기는 동안 그들의 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제대로 몰랐다. 그리고 아가씨맛 새우깡이 출시되었다. 바로 동심제과에서였다.

*

마영훈은 자신의 발로 국방부에서 걸어나왔다. 물론 더 남아있다가는 박장숙에게 맞아죽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맞아죽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다. 굳이 더 살아야겠다는 의욕은 이미 잃었다.

그의 삶은 거짓말로 점철되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에게 관심과 인기를 끌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았고, 그 거짓말이 다시 거짓말을 낳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거짓이 거짓을 낳는다 하더라도 종종 끊어주는 시점이 있기 마련인데, 마영훈의 거짓말은 끊김이 없었다.

계속 거짓말을 하다보니까 스스로도 본인이 거짓말을 하는지 참말을 하는지를 헷갈렸다. 옛날 일기장을 읽다보면 이게 거짓인지 사실인지 헷갈렸다. 이것이 습관이 되자, 자기가 말을 하고는 스스로 속아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아넘기는 것의 문제는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A: 나는 방귀를  뀌지 않았어.
B: 에이 니가 뀌었잖아.
A : 이런 씨파 진짜 내가 안 뀌었다니까.
B: 그래 알았다.

잠시 후..

A : 난 손가락이세 개야.
B: (그의 다섯 손가락을 보며) 이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다섯개잖아?
A : 뭐라고? 내가 거짓말쟁이라고?볼래, 내 손가락이 몇 개인지? (손가락을 펴본다. 다섯개가 틀림없다. 그제서야 자기 손가락이 다섯개라는 사실을 깨닫지만, 거짓말장이의 오명을 쓰고 싶지는않다.) 너는 존재론적으로 불완전한 인지적 자아를 가지고 있어.
B : 뭐라고? @@?
A : 물자체와 격물치지하면 존재의 참모습인 진아가 보여.
B : 좀 알아들을만한 이야기를 해봐
A : (손가락을 쫙 펴며) 자, 이게 몇 개로 보여?
B :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우물거리다가) 다섯개.
A : 그러니까 넌 아직 멀었다는거야.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선다)   
B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A의 손가락을 지켜본다.)

궤변과 거짓으로 여기까지 왔다. 대학 졸업도 제대로 못한 주제에 한 나라의 국방부 대변인까지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텔레비젼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으로 방영되는 텔레비젼에서 라이브로 그의 거짓이 송두리째 들통이 났다.

그렇게 억지와 거짓으로 점철된 고리를 이제는 끊어내고 싶었다. 마영훈은 지쳐있었고, 그런 거짓된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으로는 뚜렷이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사람의 습관이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마영훈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영훈은 습관을 바꾸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했었다. 이름을 바꾸기도 여러 번 했고,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꾼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대오각성해도, 아무리 큰 결심을 해도, 결국은 거짓말 투성이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갔다. 그 모든 변화는 잠시였을 뿐이다.

왜 그럴까? 미더덕과 해파리의 중간쯤으로 생긴 외모 때문에 생긴 컴플렉스일까? 어려서부터 읽은 수많은 이야기책 때문일까? 왜 어려서 촉망받던 인재였던 내가 다 커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결국 마영훈은 삶을 끊기로 했다. 더 이상 이 거짓투성이의 삶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마영훈은 한강대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강의 여러 다리 가운데 가장 높이가 높다는 다리였다. 이곳에서 뛰어내리면 5층 건물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 전해지기 때문에 정신을 잃게 되고 (운이 좋다면, 또는 운이 나쁘다면 떨어지면서 즉사할 수도 있다) 그 다음에는 천천히 익사한다고 한다.

한때는 생각이 깊다고 표현했던, 그러나 실상은 잡생각이 많은, 그의 습성 답게 그는 차라리 적당한 고층건물에서 떨어지면 될텐데 왜 힘들게 강가까지 찾아가서 뛰어내릴까를 고민했다. 이어서 그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답게, 곧 죽을 놈이 그런걸 알아서 뭐하느냐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서 한강다리를 향해 나아갔다.

한강다리에서 그는 신발을 가지런히 벗었다. 다리 난간에는 자세히 봐야만 보이는 자살 직전의 메시지들이 잔뜩 씌여져 있었다. 삶을 절규하는 글, 죽음을 절규하는 글, 애인을 그리워하는 글, 주식투자하다 날아간 돈을 그리워하는 글, ... 마영훈은 아무 글도 남기지 않았다. 뭔가를 남기려다가는 자살하겠다는 그의 다짐이 흐트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마치 담배꽁초를 휴지통에 던지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의 몸을 한강을 향해 내던졌다.

떨어지는 짧은 순간,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을 바라보았다. 저 푸른 물, 저것이 내가 이승에서 보는 마지막 물이겠구나. 이제 나는 저 세상으로 가는구나. 물에 부딪히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이어서...

- 철퍽

마영훈의 몸뚱이가 한강에 부딪히는 순간, 물이 크게 튀어올랐다. 마영훈의 몸뚱이보다 열배 쯤 되는 부피의 물이 튀어올랐는데, 마영훈 몸뚱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큰 물보라였지만 한강의 입장에서는 자갈 하나 빠진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마영훈의 몸뚱이는 물속 깊숙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약 1분 후 물 위로 떠올랐다. 마영훈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5층 건물에서 떨어진 충격? 그런 것 같기는 하다. 아마 5층 건물에서 목욕탕만한 찐감자 위로 뛰어내렸다면 딱 지금같은 느낌일 것이다.

마영훈은 정신없이 허우적거렸다. 그의 뇌는 죽음을 지향했으나 육체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물에 빠진 메뚜기처럼 허우적거리다가, 곧 자세를 잡고 헤엄을 쳤다. 강변을 향해 헤엄치는데 숨이 가빠왔다. 그는 체력이 고갈되었다. 하지만 억지로 참았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헤엄쳤다.

마침내 강변에 도착한 마영훈은, 죽을 힘을 다해 헤엄친 다음 체력이 다해서 강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었다. 죽을려고 하던 주제에 죽을 힘을 다해서 헤엄쳐나오다니. 헛웃음만 나왔다.

헛웃음이 나오는 중에도 배가 고팠다. 수영은 칼로리가 많이 소모되는 운동이다. 그걸 심하게 했으니 배가 고픈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런 씨팔... 살아날 줄 알았으면 돈 좀 가져올걸...'

죽으려고 다짐하고 왔기 때문에, 주머니에는 오는 차비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뭘 사먹을 돈은 고사하고 집에 갈 차비도 없었다. 그래도 살았으니 뭘 먹긴 먹어야지. 죽자고 마음먹었던 놈이 강도질인들 도둑질인들 못하랴.

마영훈은 독하게 마음 먹고 인근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잠시 주인 눈치를 보다가, 과자 한 봉지를 잡아 쥐고는 잽싸게 달려나갔다. 슈퍼마켓 주인은 과자 한 봉지를 들고 달려나가는 마영훈의 뒤를 따라나왔지만, 과자 한 봉지 때문에 가게를 비울 수 없어서 고래고래 고함만 질렀다.

"야이 죽일 놈아. 잡히기만 해봐라. 내가 고통없이 죽여주마."

또다시 죽을 힘을 다해서 달려가던 마영훈은, 고통없이 죽여준다는 말에 혹해서 확 잡혀버릴까 하다가, 아무래도 죽지 않을 만큼 맞기만 할 것 같아서 그냥 계속 달아났다. 그리고 물기가 덜 마른 옷을 입은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과자 봉지를 뜯었다. 그리고 과자 한 줌을 손에 잡히는대로 입속에 털어넣었다.

순간. 이빨에서부터 강렬한 전류가 흘렀다. 이빨에서 뇌를 향해 치닫았다가, 그 강렬한 힘이 등뼈를 뚫고 내려가서는 꼬리뼈를 향해 쳐내려갔다. 그러더니 사지백해를 향해 퍼져나갔다. 마영훈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에서 불타는 듯한 광채가 퍼져나갔다.

*

엄마를 졸라서 새로나온 과자 한 봉지를 손에 넣은 어린아이는. 엄마가 과자 봉지를 뜯어주자 냉큼 손을 집어넣고 한 움큼을 입에 털어넣었다. 아삭-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물컹하고, 물컹-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쫄깃하고, 쫄깃-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끈적한, 그런 묘한 느낌이 이빨과 잇몸을 둘러쌌다. 그 느낌은 잇몸을 타고 신경중추를 일렬로 훑어 아이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자기가 느낀 감각을 올바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팔팔하게 유치원에서 뛰어놀던 아이지만, 갑자기 그는 자기가 아직도 자기 몸이 느끼는 것에 대해서조차 명료하게 표현할 줄 모르는 철부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는 울먹울먹 하다가,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오줌을 싸서 엉덩이가 축축하다는 것을 표현할 줄 몰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말이다.

무성의한 표정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엄마는 그제야 과자 봉투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아이에게 파는 과자일텐데 왜 반나체의 여자가 옷을 벗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포즈의 포장지이지?

엄마는 아이의 울음을 달래는 한편, 과자 내용물을 하나 꺼내어 만져보았다. 보통의 과자와 다를 것이 없었다. 기름기 묻은 밀가루에 소금이며 양념이 묻어있었다. 엄마는 과자 하나를 씹었다.

"아흑! "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과 비슷하지만 꼭 비명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소리를 냈다. 엄마는 아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의 경험을 가졌지만, 방금 씹은 음식에 대해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아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굳이 표현하라면 오르가즘을 느끼던 중에 좌뇌를 불알로 얻어맞은 느낌 정도라고나 할까.

오르가즘의 쾌감과 뇌를 불알로 얻어맞는 불쾌함을 저울질 했을 때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엄마는 쾌감쪽을 택했다. 그녀는 한 조각을 더 집어먹었고, 신음을 한 번 더 토했다. 이번에는 서너 조각을 한꺼번에 집어먹었고, 자기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아 신음을 토했다.

사람들은 애엄마가 길바닥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신음을 토하는 보기 드문 광경을 흘낏흘낏 쳐다보았다. 아이까지 울음을 그치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오르가즘에다 뇌를 불알로 얻어맞는 중이라서 주위의 경황을 따질 수 없었다. 그녀는 과자 봉지가 빌 때 까지 정신없이 과자를 먹었다.

*

by 찬별 | 2006/12/07 22:49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coldstar.egloos.com/tb/286165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woodstock at 2006/12/07 23:03
아가씨맛 새우깡을 여자가 먹어도 느끼는거야? 마케팅을 위해 좀 중성적인 이름을 지어야겠네
Commented by 찬별 at 2006/12/08 17:24
-_-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