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삼겹살을 한국인이 다 먹고 있다는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 가끔 들을 수 있다. 신문사의 기사를 재인용하면, 2005년에 한국인 1인이 소비한 육류는 31.4Kg 인데, 이 가운데 돼지고기는 17.4㎏ 이고 쇠고기는 6.6㎏, 닭고기는 7.4㎏이었다고 한다. 전체의 50%가 넘는 돼지고기 소비에서, 절반 가량이 삼겹살로 추정된다. 이 삼겹살의 공급을 맞추지 못해 절반 가량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수입했다고 한다.
또 다른 통계에 의하면 2004 ~ 2006년 무렵 우리 국민의 삼겹살 소비량은 년간 15~20만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숫자는 한국인 한 사람이 년간 20인분 이상을 소비한다는 의미이다. 노인, 어린이, 채식주의자, 일부 고위층-_등을 제외하면 저 숫자는 30~40인분으로 올라간다. 한달에 두 번은 삼겹살 회식을 한다는 뜻이 된다.
어떤 통계에서는 한국이 세계 최대의 삼겹살 소비국이라고 하는데, 진실여부 확인은 못 해봤지만 총량 기준으로는 중국보다 적지 않겠어? 하지만 1인당 소비량이 최대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다. 서양권에서 삼겹살은 베이컨 용도로 소량을 먹는 정도라고 알고 있다. 동양권에서도 중국 정도일텐데, 우리처럼 들입다 삼겹살만 구워먹는 문화는 없다.
오늘날의 우리는 삼겹살에 소주를 <국민의 음식> 을 넘어서 <국민성의 일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일까? 삼겹살이 국어사전에 등재된 것은 1994년의 일로, 겨우 10년이 넘었을 뿐이다.
전통사회의 고기료리법
요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옛날 이야기부터 하자. 우리 조상들의 고기 요리법 가운데 <생고기 구이>는 거의 발달하지 않았다.
고기구이의 기원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맥적(貊炙) 이라는 음식이다. 진나라의 사서인 수신기(BC 4세기경에 집필되었다.)에, 우리가 부끄럽게도 오랑캐의 음식을 먹고 있으니 조만간 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내용과, 장과 마늘로 양념되어있어 장을 따로 찍어먹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씌어있다고 한다. 또한 이것을 근거로하여 고구려인이 맥적을 구워먹었으니 돼지고기 구이의 역사는 이천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고 한다. (단군할아버지나 치우천황께서는 맥적 맛을 못 보셨겠구만.)
조선중후반의 음식디미방등의 규중요리에 대한 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생고기를 구워먹는 문화는 없었거나 또는 아주 미미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삶거나 찌거나 국을 끓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동그랑땡이나 만두같이고기를 첨가한 요리도 있었다. 하지만 구워먹는 고기는 간장으로 양념한 너비아니와 섭산적 정도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구워먹는 요리도 궁중요리 또는 부잣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몰라도, 옛날의 양반들은 고기를 구워먹지 않았다고 한다. 고기를 구우면 냄새가 심하게 퍼지므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구워먹는 문화에 대해 조금 부연하자면, 우리나라의 부침이나 지짐류의 음식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부침 및 지짐에 사용하는 번철은 일반 가정의 조리도구가 아니라 대갓집 및 궁중요리의 조리도구였으며, 일반서민은 주로 잔칫날 부침개를 할 때면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서 썼다고 한다. 이러한 번철이나 솥뚜껑은 모두 부침개류의 음식을 조리하는 도구였으며, 너비아니등은 직화에 구운 것으로 되어있다.
생고기를 직화가 아닌 불판에 직접 구워먹는 습관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1943년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등장한 방자구이인 것 같다. 여 기에는 쇠고기를 얇게 저며 소금을 뿌려 먹는 것이 맛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을에서 원님 심부름하는 방자라는 넘이 고기 훔쳐다 후딱 구워먹기 때문에 방자구이라고 한다는데, 이 어원으로 방자가 있던 시대부터 방자구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43년이면 이미 서양을 통해 스테이크 문화가 부유층에게 유입되어있을 때이므로 생고기를 소금으로만 구워먹는 것이 서양 문화의 수입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식이 모자라서 조심스럽기는 하다. 현재까지는 심증은 굳어지는 정도이다. 책 몇 권을 주문했으니 사나흘 후에는 아마 찾아본 결과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이전 시대의 생고기 구이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은 알려주삼)
근현대의 식육 소비량의 증가
| 쇠고기 | 돼지고기 | 닭고기 | |
| 1960 | 0.5 | 2.3 | 0.7 |
| 1970 | 1.2 | 2.6 | 1.4 |
| 1980 | 2.6 | 8.3 | 2.5 |
| 1990 | 4.1 | 11.8 | 4 |
| 2000 | 8.5 | 16.5 | 8.9 |
(통계자료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하지만 일제시대 및 6.25 전쟁 후 가난한 가운데 고기는 귀한 음식이었다. 1960년의 1인당 년간 고기 소비량은 쇠고기 500g, 돼지고기 2.3 Kg, 닭고기 700g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강호동의 저녁식사 한 끼에 불과하다. 년간 소비량이 이 정도에 불과하니, 양을 불려먹으려면 별 수 없이 국을 끓여먹었겠지. 왜, 그 북녘 동포들이 애절한 목소리로, 오늘이 생일인데 이밥에 고깃국 좀 먹었으면 참 좋겠다, 라고 말하던 것 있잖는가. 소가 헤엄치고 돼지가 물장구치고 나간 족발맛 국... 같은 것 아니었겠어.
이 수치는 1970년에는 소 1.2Kg 돼지 2.6Kg, 닭 1.4Kg로 늘었고, 1980년에는 소 2.6Kg, 돼지 8.3Kg, 닭 2.5 Kg로 늘었다. 1980년에 돼지고기 소비량이 많이 늘었다. 통계 숫자로 봐서는, 1970년 이전까지는 돼지가 헤엄치고 나간 국(...), 닭이 알 낳고 나간 국(...) 등을 먹다가, 1980년 경이 되어서야 일반 서민들까지도 걍 기분 좋은 날에 돼지고기 로스구이라도 흐뭇하게 구워먹을 수 있었을 듯 하다.
삼겹살의 기원에 관한 몇가지 썰
다음은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썰 이다.
1. 삼겹살을 구워먹기 시작한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삼겹살을 먹게 된 유래로는 1960년대 소주 값이 떨어지자 마땅한 안주로 값싼 돼지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소주가격 하락설’과 노동자들이 건축자재인 슬레이트에 삼겹살을 구워먹다 퍼졌다는 ‘슬레이트설’이 전해진다. --> 60년대 소주가격 인하설은 기각한다. 상기 통계를 보면 60년과 70년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거의 동일하다. 슬레이트 + 번개탄 썰은 앞뒤가 바뀐게 아닐까 짐작한다. 즉, 삼겹살의 기원이 아니고 삼겹살 유행 후에 간편하게 먹는 방법일 듯 하다.
2. 외식업소로는 70년대말 「우래옥」이 볶아먹고 삶아먹던 돼지고기를 삼겹살로 내놓았던 것이 처음으로 알려진다. --> 위의 썰을 확인하려면 우래옥에 문의하면 되겠군.
3. 돼지는 원래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나 쌀겨, 보릿겨, 비지 등을 먹여 길렀다. 그런데 개성사람들은 섬유질이 적은 사료를 먹인 후 비계가 살 사이 에 겹겹이 얇게 들어 있는 삼겹살을 만들어 이를 시중에 보다 비싼 값으로 내다팔 수 있게 됐다고 한다. --> 이 썰은 글쎄다. 개성상인이 갑자기 왜 튀어나왔는지. 두 번째 썰은 너무 내용이 빈약해 기각한다.
4. 삼겹살은 음식 취급을 받지 못했다. 주로 탄광에서 분진을 많이 마시는 광부들이 조금이나마 심적 위안을 얻기 위해 섭취했다는 게 유력한 삼겹살 탄생 유래다. --> 익숙한 썰이다. 이 썰이 사실이라면 삼겹살의 원산지는 강원도다. 감자나 옹심이가 아니라 삼겹살이야말로 강원도 최고의 향토음식 아닌가베.
2, 4번이 그럭저럭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어느 쪽이 더 옳을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두 의견 모두 삼겹살의 연원을 높아봐야 1970년 정도로 잡을 수 있겠다. 하지만 1980년대에도 삼겹살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도 삼겹살을 먹었던 기억은 그다지 없다. 80년대에 코를 흘리던 나는, 가족끼리의 외식에서는 돼지고기등심 로스구이(소금구이)를, 교사였던 어머니 덕택에 학부형 접대라도 받으면 암소갈비 같은 것을 먹었다. (이 부분은 읽는 분들이 한 마디씩 해주세요.. 삼겹살이라는 간판을 처음 본 것이 언제였는지. 80년대 후반 같은 때는 회식하면 무슨 고기 먹었는지... 등등)
삼겹살의 대중화는 몇 번의 전기를 거친다. 90년대 초반에 솥뚜껑 삼겹살이 히트를 치고, 그보다 조금 후에는 1인분 가격이 짜장면보다 싼 대패삼겹살이 유행했다. (양이 적어서, 셋이서 20인분을 먹었다는둥 혼자서 14인분을 먹었다는 둥 하는 강호동같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90년대 후반에는 미숫가루 삼겹살, 2000년대에는 와인삼겹살이나 녹차삼겹살 등이 유행하고 있다.
삼겹살 소비량의 급증은 97년 IMF 이후 돼지고기 수입 개방이 큰 기점이 된다. 실제 삼겹살 전문점의 폭발적 창업, 국민의 삼겹살 소비 증가등은 모두 이 무렵이라고 한다.
출처 : 찬별 http://coldstar.egloos.com/2933439
요약하면
양념하지 않은 생고기를 먹는 문화는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생고기를 구워먹는 문화는 개항 이후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식량의 부족 때문에 서민이 고기를 구워먹는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일 것으로 보인다. 삼겹살 탄생의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으나, 길게 잡으면 약 40년 전에 최초의 삼겹살이 나왔을 듯 하다. 본격적으로 삼겹살을 먹게 된 것은 80년대 후반이 넘어서였다.
한국음식, 그 맛있는탄생
-. 삼겹살 구이보다 부대찌개가 더 오래된 음식이다;;
-. 김밥과 불고기는 일본 음식의 영향을 받았다;;
-. 짜장면은 한국음식이다;;
-. 전주비빔밥보다 평양이나 진주비빔밥이 더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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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이주꿍 2007/01/15 22:45 # 답글
강원도 탄광촌에 살았던 저로써는 1980년대에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던 기억은 있습니다.주로 삼겹살이었던 걸로 기억이 되는군요 그다지 자주 고기를 먹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손님들 모시면 주로 고기를 구워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던 집안 환경을 생각하면 그나마 덜 부담스럽게 기분내서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던 고기가 삼겹살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후훗... 뭐, 아버지가 삼겹살 좋아하시는 이유도 있지만요. 삼겹살이 대중화 되기전부터 먹어왔던건 사실입니다. 거기다 시골이었으니까 음식 유행도 덜타는 곳이구요.
찬별 2007/01/15 22:48 # 답글
네 삼겹살을 집에서 드셨군요.. 정보 고맙습니다 ^^
우울한달 2007/01/16 00:01 # 답글
예전에는 엄마 심부름으로 우우웅-하는 빨간 불빛 정육점에서 고기를 조금씩 사오곤 했는데 요즘은 대형마트때문에 저희 동네에선 그런 정육점도 찾기가 힘드네요. 근데 맛있게 먹는 삼겹살이 역사가 그리 오래 안되었군요. 요즘에는 익혀서 나오는 삼겹살도 있다던데 세상 참 빨리 변하네요.
너구리 2007/01/16 03:45 # 답글
76년생입니다. 야외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어른들 사이에서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기억이 안나니 나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세살 정도로 보이는데, 70년대 후반에도 서울에서 삼겹살은 손쉬운 나들이 메뉴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措大 2007/01/16 04:28 # 답글
미숟가루 -> 미숫가루 겠지요.81년생이라서 뭔가 효과적인 증언을 할 수 없음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호랭이군 2007/01/16 04:54 # 답글
그러고보니 오늘도 삼겹살..어제도 삼겹살...그제도 삼겹살..먹었군요.삼겹살이 늘어만 갑니다.
찬별 2007/01/16 09:05 # 답글
너구리/ 그 사진속의 고기가 삼겹살인지 또렷하게 보이는 사진이신지? 아무튼 답변 감사합니다.호랭이군/ 평균 소비량보다 많이 드시겠군요. 사실 저는 석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정도죠.
찬별 2007/01/16 09:07 # 답글
措大/ 미숫가루는 고쳤습니다, 감사. 그런데 웬지 민증까는 분위기가 되는군요. -_
찬별 2007/01/16 13:38 # 답글
간단 설문.72년생. 중학교때 처음 먹어봤음.
74년 부산출생. 어릴때는 불고기/돼지갈비/소금구이만 먹어봄. 삼겹살은 대학 입학 후에 처음 먹어봤음
74년 속초출생. 85년경 처음 삼겹살을 먹은 듯도 함 (불확실). 어린 시절의 외식은 소갈비 및 돼지갈비. 식당 삼겹살은 대학 입학 후에 처음 먹어봤음
찬별 2007/01/16 16:33 # 답글
70년쯤생. 초딩때 세들어 사는 아저씨의 취미가 혼자 삼겹살 구워 소금뿌려서 먹는 것이었다고 함. -_; 초딩때 고추장양념고기를 먹었는데, 오돌뼈씹던 기억이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 삼겹살로 추정됨. 식당에서 생삼겹을 먹은 건 그보다 이후인 것 같은데 기억 안 남. 개고기나 토끼고기 가게에서 사다먹은 기억은 남 -_
주름치바 2007/01/17 10:23 # 삭제 답글
66년생이구요, 80년대 중반에 언니가(언니는 63년) 여의도에 있는 직장에 다녔는데 회식할 때 삼겹살을 많이 먹었답니다. 언니랑 자취했었는데 회식때 배워서 언제나 언니 월급날엔 삼겹살을 먹었지요. 지금이랑 같습니다. 마늘이랑 파채랑 같이 먹었습니다. 나는 80년대 후반에 취직해서는 쉽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가격이 1인분에 (200그램인지 300그램인지 잘 생각 안나지만...) 2000원 이었습니다. 고로 80년대 후반에는 이미 직장인들에게대중화된 상태였고 아마 그 훨씬 이전에 대중화된게 아닌가 싶어요. 지방은 좀 다르겠지만.
주름치마 2007/01/17 10:29 # 삭제 답글
참고로 80년 초반에 서울로 올라왔는데 그전에는 지방에서 삼겹살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로 삶아 누른 돼지고기를 새우젓에 찍어먹는 것이었죠. 고향은 전주.
찬별 2007/01/17 10:35 # 답글
아 그렇군요. 저도 어제, 조금 더 빠르다는 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부산의 삼삼집이 80년대 초반에 개업한 고기구이집인데 삼삼이 <삼겹살>의 삼이었다더군요. 주메뉴는 삼겹살보다 돼지갈비/소갈비류였다지만.
찬별 2007/01/17 10:37 # 답글
제보 감사합니다 ^^
page 2007/01/18 23:43 # 답글
이걸 보다보니 책방에서 지나가다 본 <만들어진 전통> 이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책소개를 보니 우리가 스코틀랜드의 전통이라고 믿고 있는 킬트가 겨우 18-19세기에 만들어진것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를 대표한다고 하는 삼겹살의 경우도 실은 그리 역사가 오래된 것 같지 않군요. 다른 나라의 대표 음식들도 그러한 건지 궁금해지네요.
루드라 2007/01/19 02:58 # 답글
70년대에 읽었던 김영하의 만화 가운데 삼겹살이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만화 내용은 흥부놀부를 김영하식으로 각색한 것이었는데 부모님께 재산을 상속받은 고봉이가 착한동생 고천이를 내쫓아 버리고 혼자서 호의호식하면서 하인에게 맛있는 걸 사오게 하는데 하인이 사온 음식이 삼겹살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뭐 기억에 의지한 거니까 삼겹살이 아닐 수도 있긴 있습니다만 제 기억에는 삼겹살인 듯 합니다.
찬별 2007/01/19 09:19 # 답글
저는 80년대 초반에 읽었던 무슨 만화에서, 드디어 내집을 장만했으니 오늘은 배터지게 먹어보자며 구두쇠 아버지가 천원을 주고 돼지고기 반근과 소주 한 병을 사오라고 심부름시키던 기억이 납니다. 그건 삼겹살이 아니고 돼지고기였던걸로 기억이 나는데요. 아무튼 몇 가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1970년대 중반을 삼겹살의 도입기로, 1980년대 초중반을 삼겹살의 대중화가 진행된 시기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찬별 2007/01/19 09:23 # 답글
page/ 유럽에서 서민들이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하게 된 것이 불과 200년 정도 전이라고 하지요. 서양도 산업혁명 이후에 우리나라의 개항 이후만큼 변혁이 있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펠로우 2007/02/25 20:38 # 답글
좋은 자료네요. 저도 삼겹살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생각하곤 있었는데...
찬별 2007/03/27 19:41 # 답글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243&article_id=0000000131§ion_id=101§ion_id2=310&menu_id=101
功名誰復論 2007/06/25 21:28 # 답글
찬별님이 보셨다는 만화는 아마 무림동 권법소년일 겁니다.
찬별 2007/06/25 22:24 # 답글
그거 그린 사람이 김삼이던가? 성인만화 자주 그리는 아저씨였어요. 소년중앙에 연재되던걸로 기억하구요.
功名誰復論 2007/06/26 23:29 # 답글
김삼이 아니라 한희작이었습니다. 그 만화 초반에 주인공이 동네 개하고 만났는데 달려드는 개 입에다 나뭇조각을 박아넣는 장면이 인상적이죠.
찬별 2007/06/30 22:34 # 답글
아. 맞아요 한희작이라는 이름이 기억 안 나던 중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