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별의 료리강좌 #45 - 부추전
1.
가끔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한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부모 자식의 관계 같은 것이 있다. 때때로 이 관계는 복잡하게 설명된다. 가령 프로이트 같이 말 길게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갖은 고뇌와 학문을 다 가져다 붙이면서 이 관계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말이 길고 복잡한 것은 인간의 머리가 복잡하기 때문이지, 부모 자식의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에 이모가 사신다. 삼십이 넘어서 이민가셨는데, 영어는 알아듣기는 잘 하시지만 말하기는 아직도 서툴다. 자식으로는 사촌형과 사촌누나가 있는데, 영어는 유창하지만 한국어는 간신히 알아듣는다. 이 집 식구들의 대화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 아침식사 :
    사촌누나 : "Mom, Do you want more 밥? "
    이모 : "나는 됐고 저기 너네 cousin이나 더 줘라."

    #2. 주차할 때
    이모부 : key 놔둬도 되겠지? somebody가 take 하지는 않겠지?
    사촌형 : You'd better bring 열쇠. Don't let it be there.

한 집에 사는 사람끼리 저렇게 해서 무슨 대화가 될까 생각했는데, 찬찬히 보면 집에서 식구들이 나누는 대화라는게 복잡하지가 않다. 밥 먹었냐, 날씨가 춥다, 옷 잘 입고 나가라, 오늘 늦어요, 간장 좀 줘, 사과 먹으러 와라, 등등.

2.
가끔 어머니만 혼자 올라오실 때가 있다. 아버지나 형이 있으면 하다못해 찌게 하나에 생선 한 마리라도 구운 제대로 된 밥상을 차리시지만, 나와 어머니만 있을 때면 식사가 간촐해질 때가 많다. 이럴 때면 딸이 되어 친구같은 어머니와 수다를 떠는 기분이다. 나는 가스렌지 앞에 서서 청하 같은 걸 홀짝이면서 부추전을 굽고, 어머니는 큰 며느리와 고모와 외삼촌과 둘째며느리 플랜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적당히 맞장구치거나, 부추전 반죽이 적당한지를 확인받거나, 전이 잘 뒤집어지거나 뒤집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로 대꾸한다.


3.
인간을 정녕 제대로 흥분시키는 것은 단순반복이다. 카지노의 레버 당기기 및 피스톤 운동  같은 단조로운 반복이 인간을 환장하게 만든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사람은 복잡한 동물이 아니다. 핑계가 복잡할 뿐이다.


4.
료리도 그렇다. 진정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음식은 아라비아곰발바닥바베큐소스, 우랄알타이고양이혓바닥튀김, 이런 음식들이 아니다. 흰 쌀밥, 삶은 감자, 두부구이, 뭐 그런 단순한 음식들이다. 그 단순한 음식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는 것이 바로 부추전이다.

재료 : 부추, 밀가루, 소금, 마늘, 기름
조리법 :

   1. 부추를 썬다. 밀가루와 소금을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열심히 섞는다.



  저 사진처럼 되면 표준적인 부추전이 될 듯 하다. 집에서 먹을 때는 해먹고 싶은대로. 많이 먹고 싶으면 밀가루를 줄이고 풀 위주로 먹자. 그릇을 기울일 때 잠깐 보이는 정도면 충분하다. 부추 위주로 만드는 것이 좋다. 막바로 부치는 것보다는 반죽을 만들고 일이분 정도 지나서 반죽물이 새파랗게 될 때 부치는 것이 더 부드럽다. 


   4. 전을 부칠 때에는 중간불이 좋다. 기름을 적당히 두르고 센 불로 후라이팬을 데운 뒤, 반죽을 언고서 불을 줄인다. 후라이판에 부추가 한 겹만 발린다는 기분으로 얇게 좍좍 펴주어야 한다. 부추 사이사이로 밀가루가 모자라 구멍 같은게 난다고 생각해도 좋다.



 

부추 덩어리를 예닐곱장 먹었다. 내일 아침 화장실은 초록색으로 파랗게 파랗게 반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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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별 | 2007/02/15 20:42 | 찬별의 료리강좌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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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hoo at 2007/02/15 20:49
부추전은 따뜻할 때 그냥 먹어도, 초간장 살짝 찍어먹어도
식혀서 썰어먹어도 다 맛있는 것 같아요. 아 먹고싶다 >_<
Commented by 언에일리언 at 2007/02/15 22:34
부추전...맛있죠. 특히 흐린날 나무그늘 밑 잔디밭에서 구워먹는게...
Commented by 시퍼렁어 at 2007/02/15 22:58
간장 먹고 싶어지는 사진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2/15 23:17
정구지전에는 고추를 썰어넣어야 한다고...
Commented by 페로페로 at 2007/02/15 23:47
해물 넣어 먹는 사람도 있는데 취향이겠지만... 전 NG~ 부추전은 부추전으로~
Commented by 런∼ at 2007/02/16 00:06
부산쪽에서는 정구지전이라고 하고..
이걸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거같아요..
어딘가 여행하다가 이렇게 부추를 많이 넣고 부친 부추전을 먹는데..
초고추장을 내오더라구요..아주 맛이 잘 어울려서 그런지
먹은지 한참되었는데도 기억이 선명해요.
Commented by 언에일리언 at 2007/02/16 01:19
부산은 아니지만 집이 경남인데, 울 동네에선 정구지전이라 부르지 않고 정구지 찌찜이라 부릅니다~주로 풋고추를 썰어넣지요. 빨간고추를 넣을때도 있긴 한데 대부분 풋고추를 넣더군요.
Commented by 지루박 at 2007/02/16 02:48
정구지 찌짐에 담치(홍합) 넣어 먹으면 맛있습니다.
Commented by Pluto at 2007/02/16 08:54
안녕하세요!! 항상 재밌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정구지 찌찜" 이라는 말을 들이니 전에 부산 친구가 "눈에 정구지 찌찜이 붙여가 ~~"로 시작하며 '심각하게' 여자 얘기를 하는데 뜻을 몰라 당황했었습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16 09:07
부산 있을 때 정구지 찌지미라는 말은 가끔 했었군요. 초고추장 찍어먹어본 일도 있었던 것 같고...

부추전에 뭔가를 넣자는 의견이 많은 것 같은데, 부추전에 뭔가 딴 재료를 넣기 시작하면 이미 부추전이 아닙니다. 마치 순금에 뭔가를 넣으면 더 이상 순금이 아니거나, 처녀에 뭔가를 넣으면 더 이상 처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16 13:27
Pluto/ 안녕하세요 ^^
그런데 눈에 정구지 찌짐이 붙어가~ 는 저도 잘 의미파악이 안 되는군요 -_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16 13:28
담치라는 말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Commented by 사발대사 at 2007/02/16 16:49
눈에 정구지 찌짐이 붙어가~ 는 아마도 표준말로 눈에 콩깍지가 씌여서~ 인 듯 합니다.^^
Commented by 措大 at 2007/02/16 17:45
새우리라고도 하지요...;
담치는 이제 다들 "홍합"이라고 불러서 사라지는 이름이 아닌가 싶어요.


이 포스트를 읽고나니, 굴전이 먹고 싶어요. 흑흑
Commented at 2007/02/16 19:3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16 21:05
어 새우리라는 말은 첨 들어봐요, 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부추를 보고서 굴이 먹고 싶다니... -_-;

어 그리고 다음날 아침. 초록빛이 아니었습니다. 이하생략.
Commented by 총천연색 at 2007/02/17 06:24
부..부추전 먹고 싶다!
집에서 저런거 부쳐 먹은 기억이 까물까물.
ㅜ~ㅜ 근데 부추전이 저렇게 퍼렇게까지 될 수 있는거군요.
부추 듬뿍 넣은 부추전. 고프네요. 아아~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17 09:17
말을 더듬고 그러세요...
Commented by 사노 at 2007/02/17 12:25
저희 어머니께서도 파전보다 부추전을 주로 하십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18 19:24
네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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