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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식의 탄생 - 제육덮밥 + 한국음식 썰썰썰



제육덮밥은 제육볶음을 밥 위에 올려놓고 먹는 음식이다. 대체로 제육덮밥, 오징어덮밥, 불고기덮밥 등은 분식집 메뉴인데, 실제로 밥이 덮혀서 나오는 경우는 별로 못 보고, 대체로 제육볶음 곁에 쌀밥이 나오는 정도이다.

제육덮밥의 역사를 캐기 위해서는 제육볶음이라는 음식과, 덮밥이라는 형태, 두 가지의 유래를 동시에 알아봐야한다.




 
김밥천국에서 파는 음식들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음식이 아닐까한다.
누구에게나 무난하고 누가 만들든지 무난한 맛을 내는 음식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후라이판이 없었다

옛날의 조리 서적들을 보다보면, 어딘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고추가루나 고추장이 빠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들 가운데 어떤 분류는 통째로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튀김과 볶음이다. 대표적 조리서인 음식디미방 및 규중거시기 뿐만 아니라 기타의 요리책에도 튀김과 볶음 요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1920년대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돼지고기부추볶음이 있는데, 이 재료의 조합은 중국료리 삘이 온다. 튀김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기로 하고, 본 편에서는 볶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나로서는 문화적 쑈크였는데, 뭐냐하면, 일제강점기 시대 이전에는 <후라이판>이 존재하지 않았다. 후라이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후라이판에 만들어먹는 음식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계란후라이도 없었고 소세지 부침도 없었다.

그러면 명절음식인 각종 부침개(전유어)나 빈대떡도 존재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옛날에 후라이판 대용으로 사용되던 것은 <번철>이라는 조리도구였다.


왕년의 후라이판인 번철.
이미지 출처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신라시대에 국화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대에도 번철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글쎄다. 옛날에도 대머리가 있었기 때문에 발모제도 있었을꺼라고 주장하는 느낌이다. 조선시대의 음식문화, 였던가? 그 책에서는 번철이 철 생산이 많아진 17세기 쯤에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게 몇 세기에 나왔든간에, 번철로 음식을 만들려면 아궁이에서 가마솥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번철을 얹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였다. 그나마 대개는 번철이 아니라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서 썼다고 한다. (거기에 부치는 음식으로 장떡이라는게 있었는데, 나중에 언제 언급할 기회가 있을 듯) 두꺼운 무쇠가 충분히 달구어질만큼 불을 때야 하므로, 부침개 한 번 하자면 대공사다. 부침개가 그러니, 볶음도 다를 리가 없다. 그러니 볶음이라는 음식의 등장은 일제강점기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1960년 동아일보 기사에 <후라이판 사용법> 이라는 것이 있다. 1980년의 압력솥 사용법, 1990년의 <전자렌지 사용법>, 2000년의 <토스트 오븐 사용법>, 뭐 이런 것 비슷하다.

<1960년 동아일보 기사>

이것은 무슨 뜻인가? 낚지볶음, 오징어볶음, 볶음밥, 이런 음식들 모두 생각보다 역사가 짧다는 것을 시사해준다는 뜻이다.



옛날옛날, 제육볶음 비슷한 것들


제육볶음 비슷한 음식을 역사적으로 찾아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음식은 저육초(炒) 이다. 우리말로 풀면 제육볶음이 되는군 -_; 이 음식은 18세기 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봉산탈춤에 저육초라는 음식이 나오며,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의 중국 기행문에도 또한 저육초라는 음식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음식이 어떤 형태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북한에 남아있는 저육초 자료를 보면 이렇다.

저 저육초는 지금 우리가 먹는 제육볶음과 비슷한 것도 같기도 하고 같지 않은 것도 같고... 그런데 저 저육초가 18세기의 저육초와 비슷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고대 우리나라 음식 가운데 <炒> 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산림경제에는
鷄 라는 음식이 등장하는데, 이 넘의 조리법을 보면 다음과 같다.

깨끗이 장만한 닭 한 마리에 참기름 3냥을 넣고 볶아, 파채[蔥絲]ㆍ소금 반 냥을 넣어 7푼쯤 익힌 뒤 곱게 간 후추ㆍ천초(川椒)ㆍ회향(茴香)을 간장 한 수저에 타서 물을 큰 사발로 하나 붓고 솥에 넣어 익도록 끓인다. 좋은 술을 조금 치면 더욱 좋다.

저 조리법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조리 도구는 솥인 듯 하고, 기름에 잠시 볶기는 하지만 결국 마무리는 육수를 부어서 끝낸다. 요즘으로 치면 찌개와 볶음의 중간쯤되는 음식인 것 같으니, 위에서 소개한 북한판 저육초는 아무래도 근대식 조리법인 것 같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우육초, 계초, 우두초, 양초, 천엽초, 제육볶음등이 등장하는데, 이 가운데 제육볶음은 중국식 부추잡채 분위기이지만 나머지 볶음 요리는 대체로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서 만드는 찌개와 볶음의 중간쯤 되는 요리이다. 그리고 저 재료에는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찌개와 볶음의 중간이라고 하면 또 기억나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두루치기다. 주로 경상도권 사람들이라면 두루치기라는 제목의 음식은 많이 들어봤을텐데, 이 넘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검색해보면 대략 이렇다.

철냄비에 여러가지 재료를 넣어 익혀먹는 음식. 경상도 지방의 향토음식인데,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것이 다르다.

경 상남도에서는 전골과 비슷하게 여러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음식을 말한다. 만드는 법은 거두절미한 콩나물·무채·배추속대·박고지 등의 채소, 쇠고기·처녑·간 등의 육류, 표고·송이 등의 버섯을 준비하여 이 재료들을 채썰어 따로따로 볶아 모은 뒤에 양념장으로 간을 맞추고, 물을 부어 고기의 국물이 다른 재료에 밸 정도로 끓이다가 쑥갓을 넣고 달걀 푼 것을 끼얹어 익으면, 실고추·실백·볶은 은행을 고명으로 얹어 낸다.

경상북도에서는 주로 돼지고기와 김치를 이용한다. 만드는 법은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볶다가 김치를 썰어넣고 김치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끓여 거의 익으면 마늘과 파를 썰어넣고 설탕을 조금 넣어 만든다. 이것은 김치볶음과 비슷하다.

저 설명은 어딘지 반대로 된 것이 아닐까? 한때 성경처럼 여겼던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인데, 본 시리즈를 쓰면서 여러 출처를 뒤지다보면 그다지 정확하지 않은 기사를 자주 발견한다. (수십권의 거질을 만들면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작은 오류들에 대해 큰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그렇다 이거다.)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다닌 나는 <제육볶음>이라는 음식은 대학에 와서 처음 알게된 반면, 두루치기라는 음식은 술안주로-_ 가끔 먹었다. 그때 먹던 두루치기는 서울의 제육볶음과 아주 비슷했다. 반면 안동시에서 말하는 안동시 향토요리 두루치기국 조리법에는 고추장이나 고추가루가 들어가지 않는다.

1) 무는 채 썰어 소금에 절인다.
2) 콩나물은 거두절미후 데친다.
3) 쇠고기, 느타리버섯, 건박, 굵은 실파도 채 썬다
4) 참기름에 모든 재료를 버무린다.
5) 물을 끓인 후 위의 재료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6) 계란을 풀어 ⑤ 위에 끼얹고 석이는 곱게 채 썰어 실고추와 고명으로 얹는다.
  (출처 : 농촌진흥청)

그런데 이 두루치기라는 음식은 어원을 찾기 힘들다. 순 우리말이기 때문에 고대의 조리서 및 사서류에서 찾기 어렵고, 네이버식 카드라통신에 의하면 안동지역에서 처음 두루치기국이라는 음식이 나왔다고 하는데, 자료가 제한적이라서 어느 만큼의 신뢰를 주어야 할지 잘 모르곘다.

 

근현대의 제육볶음

내가 찾기로는 제육볶음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것은 조선일보 1939년도판이다. 다만 이미지 자료라서 제목만 확인했고 그 정확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는데 <호박 제육볶음> 정도의 제목이므로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볶음요리들에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고 국물이 많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만, 1960년의 동아일보에는 고기볶음이 있다고 해서 500원 주고 자료를 봤는데 아무리 뒤져도 눈에 안 띈다 T_T

본 씨리즈를 연재하면서 가장 자료 찾기가 난감한 것이 본 제육볶음이다. 대부분 <한국 전통음식>을 주장하는 음식은 문헌 기록이 남든지, 하다못해 <대박집> 또는 프렌차이즈점에서 역사를 요약이라도 해놓기 때문에 단초가 있는데, 제육볶음이라는 음식에는 아무런 단초가 없다. 고대 한문 문헌에도 근거가 없고, 일제시대의 잡지에도 자료가 없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걍 짐작하기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일단 나는 이 음식의 연원을 중화요리로 보겠다. 야채와 고기 그리고 되직한 장을 넣고 볶는 방식은 중국요리에 가깝기 때문에 일단 찍은 것이다. 중화요리의 도입은 조선시대에도 있었지만 공화춘 등의 청료리집 유행이 그 경로라고 봐야 될 것 같다. 다르게 본다면, 기존의 두루치기에서 물을 줄이는 형태로 바뀌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바뀌었다고 하면 그게 어느 시점이냐가 문제인데, 그 시점이 아무리 높게 잡아도 일제시대, 좀 더 보수적으로 잡으면 6.25로부터도 상당히 지난 이후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까지 카드라를 해야 하는 이유는, 제육볶음류의 요리가 특정 식당, 특정 요리집을 중심으로 발전한 요리가 아니라, 민간에서 손쉽게 만들어먹는 음식으로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고 본다. 제육볶음을 만들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가? 돼지고기가 필요한 거야 당연하지만, 뭐 돼지머릿고기나 또는 닭고기로도 유사한 음식을 만들수 있으니 고기야 그렇다고 치면, 그 다음은 후라이판과 식용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연대를 다시 한 번 잡아보자면, 서민이 후라이판과 식용유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시점, 그러니 60년대 이후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부분의 역사는 혹시나 나중에 자료가 찾아지는 것이 있다면 (별로 없을 것 같긴 하다만) 더 보충하겠다.



덮밥의 역사는... 찾기 귀찮아서... 일본 돈부리가 건너온게 아닐까? 걍 이번편은 제육볶음으로 만족합시다. -_


다시 수정. 다음과 같은 자료를 발견 :

<1931 동아일보 - 저육지짐이>

시리즈 보기

한국음식의 탄생 : 짜장면
한국음식의 탄생 : 포크커틀릿, 돈카츠, 돈까스
한국음식의 탄생 : 삼겹살
한국음식의 탄생 : 김밥
한국음식의 탄생 : 떡볶이
한국음식의 탄생 : 육개장
한국음식의 탄생 : 불고기
한국음식의 탄생 : 감자탕
한국음식의 탄생 : 도시락
한국음식의 탄생 : 전주비빔밥
한국음식의 탄생 : 오뎅
한국음식의 탄생 : 냉면 (상)
한국음식의 탄생 : 냉면 (하)

핑백

  • ☆드림노트2☆ : 제육덮밥. 2008-02-18 00:16:47 #

    ... 항목 자체가 없었다. 야후! 국어사전을 보니 그냥 저육이라고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저육이라는 발음이 변화하여 제육이 된 것 같다. 혹시나 해서 좀 더 검색을 해보니 이미 찬별님이 관련글을 쓰신 적 있었다. 그런데 좀 애매한 것은, 이런 발음의 변화가 오로지 '제육덮밥' 이라는 한 가지 요리에서만 보이고 다른 경우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왤까? ... more

덧글

  • 총천연색 2007/02/18 22:39 # 답글

    제육덮밥, 돼지고기의 비계때문에 꺼려하는 식품. ㅡㅜ
  • 措大 2007/02/18 23:19 # 답글

    제육볶음, 혹은 제육덮밥의 "제육"은 "저육"에서 전화된 말로, "저육"이 올바른 표현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근거는 이런 저런 출전을 거론하는 것 같던에, 중세국어에도 "데육"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전화는 꽤 오래 전에 이뤄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찬별 2007/02/18 23:41 # 답글

    어? 그 <데육> 저도 이 글 어딘가에 쓴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안 썼군요. 아무튼 말씀대로 제육이라는 말은 꽤 오래된 것 같아요.
  • 초록불 2007/02/19 01:02 # 답글

    알고보면 유구한 5천년의 역사라는 게 다 개뻥인 거지.
  • 세리자와 2007/02/19 08:17 # 답글

    볶음요리는 솥이나 냄비에서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볶는 중국요리들도 일종의 냄비인 확으로 만들지 팬을 쓰지는 않지요.
  • 찬별 2007/02/19 09:20 # 답글

    초록불/ 그게 본 연작의 주제입니다

    세리자와/ 네 솥은 아니고 냄비를 이용하는 경우는 있었던 것 같아요. 본문에 잠시 언급한 <계초> <우육초> 같은 음식들은 냄비를 이용하는데, 하지만 물을 많이 붓기 때문에 결국 볶음 음식이 되지는 않는다는거죠. 그런데 WOK 를 중국어 본래 발음으로 <확>이라고 읽나요?
  • 루드라 2007/02/20 00:40 # 답글

    계란 후라이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옛날 고종을 섬겼던 상궁의 기사에서 고종의 식탁에 계란부침이 올라갔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가장 간단한 계란 요리인지라 당연히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냥 솥뚜껑위에 올려놓고 부치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가마솥을 아궁이에서 들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부침개 요리 같은 걸 할 때는 마당에 따로 화덕 같은걸 준비해서 솥뚜껑을 올려놓고 사용했다더군요.

    중국어 <WOK>는 <우옥>이라고 읽습니다. 여기서 <우>는 우리가 흔히 발음하는 <우>보다 조금 더 입술을 내밀고 강하게 발음하는 반자음(혹은 반모음)입니다.
  • 찬별 2007/02/20 21:22 # 답글

    그러고보니 계란후라이 이야기는 저도 들은 것 같아요. 그 상궁들이 궁궐에서 퇴직하고 나와서 한정식을 창시했다는 기사와 함께 본 것 같은데... 어느 자료에서 봤드라..
  • 카시아파 2007/02/23 18:21 # 답글

    중국어 wok...이라면 남방 방언 같네요. 보통화(현재 중국 대륙에서 쓰는 만다린 표준어)에는 ㄱ ㄷ ㅂ 받침이 없는데...

    보통화에서 조리기구는 鍋(guo, 발음은 꾸어)가 들어가는 이름들이 많은데, 약간 우묵한 팬은 전부 鍋로 칩니다. 부침용 팬(煎鍋), 볶음용 얕은 냄비(煎炒鍋), 샤브샤브 솥(火鍋) 등등에도 전부 鍋가 들어가거든요. 밥솥은 飯鍋라고 쓰고 누룽지도 鍋巴라고 쓰니까요.

    확이라면 "鑊"을 말하는 듯한데 보통화에서는 후어(huo)로 읽고 큰 가마솥입니다. 이건 보통화에서는 잘 안 씁니다. 중국어 대사전에는 방언으로 나오네요. ;;;;;

    wok이 영어 사전에서 검색되는 걸 보니 상해어 아니면 홍콩어겠군요. 이건 또 연원이 어찌 된 단어에서 파생된 건지....(이러니 카스틸로가 카스테라된 사연 찾는 게 어렵다는 거죠. 다 비슷비슷...외국인 청력으로 들어놓고 본국 가서 변형 첨가 왜곡...)
  • 찬별 2007/02/24 10:05 # 답글

    음 <보통화>가 소위 말하는 <관어>인거죠? 그런데 후라이판도 <꾸어>라고 부르나보군요. WOK 이라는 말은 중국 이민을 통해 건너가서 정착된 말이 아닐까 싶어요. WOK, Chow chow, 이런 말들...
  • 2009/08/21 22:1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찬별 2009/08/22 11:25 #

    네 출처만 밝혀주시고 사용하세요... 도서관에 가시면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이라고, 좀 더 정련한 책이 있으니, 그걸 빌려 보시는게 나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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