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식의 탄생 - 호떡
고등학교때 선생님들이 애들 떠들면 많이 쓰던 말 가운데 <호떡집에 불났나> 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어릴 때에도 <호떡집>은 그다지 보지 못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구워파는 호떡 포장마차는 있었지만, 지붕달린 집 아래에서 호떡을 굽는 풍경을 본 적은 별로 없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호떡과 얽힌 추억을 하나 더 말하자면. 사실 나는 호떡보다 <핫케이크>를 먼저 먹어봤다. -_;; 우리 어머니가 음식이나 조리도구 및 건강식품에 대해서는 얼리어댑터 경향이 있으셔서 -_; 오뚜기 핫케이크가루 같은 것이 나왔을 때 시도하셨던 것이다. 아무튼 국민학교 오학년때쯤 호떡을 처음 먹어보고는 그 길거리에서 파는게 핫케이크인 줄 알고, 애들한테 <핫케이크 사먹자> 같은 말을 했다. 그래서 애들은 이제까지 멀쩡히 호떡이라고 부르던 물건을 한동안 <핫케이크>라고 부르면서 사먹었다는... (호떡집 아줌마의 당황한 표정...)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jyyoung0413/28679576


인사동 호떡이라는데, 기름을 너무 많이 쓴 것 같다.

호떡의 기원은 중국

호떡의 기원은 역시 중국이다. 네이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기사들을 보자.

호떡은 밀가루 반죽에 설탕을 넣어 기름에 부치는 음식이다.
이것은 한국에 살던 중국 사람들이
자장면처럼 생계를 위해 만들어서 팔던 음식이다.

그런데 왜 호떡이라고 했을까?
호(胡)란 지난날, 중국에서 북방의 이민족을 이르던 말로
오랑캐를 뜻하는 말이다.
조선은 우리나라를 침입한 청나라를 낮추어 보고
병자호란(丙子胡亂)이나 정묘호란(丁卯胡亂)이라고 하기도 했다. 

호란 중국을 뜻하는 말로
중국에서 온 밀을 호밀(胡밀)이라고 했고,
중국의 군인을 호병(胡兵 : 박씨전, 임경업전 등)이라고 했다.
즉, 호떡이란
'중국인이 만든 떡' 또는 '중국의 떡'이란 의미이다.

몇 개의 자료를 찾아봤는데, 대체로 저 정도의 설명이다.

분명 우리 전통음식 가운데 호떡의 기원이 된다고 할만한 음식은 존재한다. 예를 들면, 규합총서에 등장하는 <토란병>은 찹쌀가루와 토란을 넣어 반죽해서 참기름에 지져내는 떡이다. 또 규합총서에 나오는 <상화> 는 밀가루 빵 안에 팥소와 꿀을 넣어서 만드는 것인데, 호떡보다 호빵에 가깝기는 하지만, 팥소와 꿀의 조합은 호떡속과 꽤나 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음식을 그렇게 귀하지 않게 먹었을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고대사회에서의 <떡>은 훨씬 존재감이 큰 음식이었다. 옛 조리서를 보면 목차에 <떡>은 반드시 들어가있다. 일제시대 까지도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로 떡을 사먹었다는 류의 표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호떡은 이러한 떡과 약간 경우가 다르다. 호떡은 단일품목으로서 전국에 퍼져나가 방방곡곡 유행하게 된 음식이다. 그런데 한국식 호떡은 중국식 호떡과 다르다. 중국의 여러 딤섬 가운데에는 호떡 비슷한 넘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중국식 만두 및 호떡의 대세는 아무것도 안 들어있거나 또는 돼지고기 만두소 같은게 들어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한국식으로 변형되어, 흑설탕을 넣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비슷한 경로를 거쳐서 들어온 짜장면은 실제로는 일제시대가 아닌 6.25가 지난 후에야 유행한 음식이다. 짜장면이 제대로 유행하기 전, 중국에서 건너온 음식의 대명사는 <호떡> 이었다. 물론 <탕수육>도 있고 <우동>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료리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반면, 호떡은 삼천리 방방곡곡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우동은 일본음식이지만 중국요리집에서 더 많이 팔았던 것 같다.)

방방곡곡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신문 기사 타이틀들을 몇 개 뽑아봤다.


일제시대 호떡의 대유행, 한국 호떡의 탄생

조선중앙일보  1935-01-10 03  02  무전 취식자 양명, 하나는 호떡 8개 먹고, 하나는 술값 2원 ...
조선중앙일보  1935-02-06 03  02  초하룻날 아침 호떡으로 싸움
조선중앙일보  1935-03-16 03  02  호떡 외상 안준다고 중국인을 축살, 이미 육원어치나 외상 먹고,...
조선중앙일보  1935-04-19 06  02  중국인 타살자에 4년역을 구형, 호떡 외상 안준다고
조선중앙일보  1935-05-19 03  02  중국인 남녀 10여 명 취조, 아편굴 사건
조선중앙일보  1935-11-05 09  02  호떡으로 자살 도모, 원인은 가정불화
조선중앙일보  1936-05-01 05  02  밥 못먹는 노동자들 1년 호떡값 4만2천원
조선중앙일보  1936-06-07 07  02  인천경찰에서 『호떡』집 取締
조선중앙일보  1936-08-30 01  07  본보 평양지국에 수해 동정금 답지/ 호떡을 사주오, 기부한 최소...

중외일보  1926-12-14 03  02  호떡도 안팔려 중국인이 음독, 생명은 구할 듯
중외일보  1926-12-22 11  02  기아에 못이겨 호떡 훔쳐 먹고, 유치장의 찬 꿈
중외일보  1927-06-01 07  02  호떡 굽는 것을 보고 밥 짓는 화기 발명, 적은 돈을 들여 짧은...
중외일보  1929-10-30 04  02  호떡집에 發火, 7호를 소실, 손해는 3천여원이라고, 전주고사정...
중외일보  1929-11-29 04  03  유혈중상토록 곤봉으로 난타, 종로서 호떡가게 벌인 흉악한 중국 ...
중외일보  1930-09-24 01  02  朝中人間 대충돌 쌍방중경상 다수, 호떡집에서 서로 말썽이 되어가...
중외일보  1930-09-25 03  04  고용인을 곤봉 구타 중상, 중국인 호떡장사의 폭행, 가해자 경찰...
 
시대일보  1924-10-01 09  01  호떡 먹다 졸사, 목수가 폐결핵으로
시대일보  1925-01-23 08  01  위조 은화 발견, 호떡 사 먹고 거스른 돈
시대일보  1925-04-24 10  02  변태 질투로 살우, 청진 있는 중국인 호떡장사가
시대일보  1926-01-13 07  02  호떡장사, 西署관내 백여명, 중국인 거주자 구백여명중에

동아일보  1925-03-17 09  02  櫃中에 女學生, 中國人가게에 호떡을 사러갓다가 행방불명이 된 여...
동아일보  1925-04-24 06  02  斬頭割肉한 中國人, 男色을 貪해 同僚를 殘殺, 조선소년을 호떡으...
동아일보  1925-06-06 09  02  惡魔의 中國人 白晝少女誘引, 호떡 한개로 오세 소녀를 유인
동아일보  1925-06-18 10  02  江景에 阿片窟, 중국인호떡집 투서로 범인을 검거
동아일보  1927-02-01 05  05  平壤에 또 强盜 흉긔를 가지고 호떡집 습격, 犯人은 亦是 五里霧...
동아일보  1927-03-30 02  05  中國人 호떡장사에게 愛女를 팔아먹어, 열한살짜리를 돈 사십원에,...
동아일보  1927-04-26 07  02  中國人이 剌人, 胡餠二錢에 論爭하다 호떡갑 삼전으로 사람을 찔러
동아일보  1927-07-15 04  05  悖惡한 中國人 호떡갑에 익형
동아일보  1928-01-08 04  02  西大門町 火災, 호떡집에서 발화
동아일보  1928-04-10 06  02  十圓金에 自身典當, 胡餠商 失敗코 賣身, 가난한 남편에 시집가서
동아일보  1928-12-04 01  02  南京夕話 (二) 破帽에 木綿軍服, 貨物自動車로 闊步, 긔자들을 
동아일보  1929-02-05 05  02  黃金町大火 損害二萬圓 호떡집에서 불이 닐어나, 隣接九戶가 灰燼

조선일보 1940.06.01     호떡장수들 비명. 맥분, 사당 구득난으로 업자들 인천서에 알선을 탄원 
조선일보 1940.05.30     절미 운동 강화로 호떡장수 격증
조선일보 1927.11.04     (3)경성거리에 洋거지 배회. 호떡 먹고 모은 20여만원
조선일보 1927.08.02     중국인 폭행 빈발 동포를 또 난투 중상. 상주에서 호떡장사 하는자가 경찰이 즉시 抱禁 취조
조선일보 1927.07.13     외상 호떡 한개로 전신에 치명상, 고픈 배를 어찌 할 수 없어 호떡 한개 거져 먹고서, 목구멍이 포도청
조선일보 1927.06.24     소녀 유인하야 獸慾을 채우려. 호떡장사 중국인
조선일보 1927.04.26     胡餠 2개로 亂刺 중상. 호떡먹고 갔다고 칼로 찔러서 중상
조선일보 1927.01.18     중국인 음독. 호떡 장사하여 모은돈 소비로
조선일보 1927.01.10     호떡 절도. 박천
조선일보 1926.08.24     굶고 다니다가 호떡을 사먹고서 덧없이 죽은 불쌍한 아이. 전북 정읍군
조선일보 1926.03.25     호떡장사가 유부녀 강간미수. 食刀로 제 이마를 찍어. 경북 금천 성내정
조선일보 1925.04.02     호떡집 부수고 경찰서 갔다
조선일보 1924.04.17     뿌리 깊은 중국상인. 경성에만 買價 8백60만원, 외국인 안쓰기로도 유명하고 제일 무서운 것은 호떡가가이고 들고 일어나는 노동자도 많은 세력 
조선일보 1924.04.06     인천에 화재 빈수. 호떡가마에서 출화
조선일보 1923.04.16     厭世가 果何故. 호떡 속에 양잿물을 섞어 먹고 죽고자 하는 것을 행인이 발견
조선일보 1934.08.15     [수해에 우는 동포에 폭주하는 동정의 눈물] "호떡" 굽는 중국인. 인류애의 금일봉. 본보 지국에 기탁
 
 

기사들이 그냥 아주 천태만상이다. 호떡 외상 안준다고 찔러죽인 이야기, 호떡 외상으로 먹고 도망간 이야기, 호떡으로 소녀를 유인한 이야기, 호떡집에 불난 이야기, 호떡집에 강도가 침투한 이야기... 저 호떡집이야말로 범죄의 온상이며
찌질한 서민의 찌질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문기사를 몇 개 카테고리로 분류해보면 이렇다.

1. 호떡집에 불난 이야기
2. 호떡집 중국인이 호떡으로 여자아이를 꼬셔서 ... 한 이야기
3. 호떡 외상값 때문에 유혈사태 난 이야기
4. 호떡집에 강도가 든 이야기
5. 가난한 사람이 간신히 호떡 먹는 이야기

대략 이 정도다. 일제시대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무려 백여개나 찾을 수 있는데 대체로 저 카테고리다.

상시적으로 기름에 튀기는 음식이라서 불을 만질일이 많아 저렇게 불이 나기도 했을 것이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호떡이 아주 좋은 먹을거리였으니 호떡 하나로 중국인에게 유혹당한 어린 계집아이가 저렇게 많았을 것이고,
인생 막가는 사람과 성질 욱하는 사람들이 손 닿기 쉬운 음식이 호떡이었으니 외상호떡으로 인한 유혈 시비가 많았을 것이고
호떡집이 많았으며 특히 중국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호떡이 잘 팔려 돈벌이가 꽤 되는데다가 사람 왕래가 많았기 때문에 저렇게 강도 사건이 많았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마지막. 호떡이 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즐겨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을 것이다.


호떡과 얽힌 기사들을 몇 개 더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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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鄭信熙에게

금년 3월 1일 학교에서 돌아와 남대문 쪽으로 갔었다는데 어떤가.
그렇다. 남대문 안의 우편소에 돈을 찾으러 갔었다.
그리고 중국호떡집에 들어가 호떡을 먹고 있는데 시위군중이 만세를 부르면서 왔었다는데 어떤가.
틀림없다.
그래서 호떡집을 뛰쳐나와 그 군중의 뒤를 쫓아서 조선은행 앞에서 그 군중에 가담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는데 어떤가.
틀림없다.
예심에서는 장래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런가.
그렇다. 장래는 가담하지 않겠다.

삼일운동때 만세 부르다가 잡혀간 사람의 공판 내역이다. 어쩐지 좀 안습이다. 왠지 만세운동하면 장엄하게 총탄을 향해 달려가는 풍경만 떠올리게 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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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연령, 직업 및 주거를 말하라.

성명은 王智有
연령은 一七세
직업은 중국 호떡집 連奎山의 고용인
주거는 仁川府牛角里四

그 다음 四일 오후 一一시경에 돌연 수백명의 조선인 군중 때문에 주인 連奎山은 피살되고 너희들 고용인 양인도 중상을 입었다는데 그 당시의 상황을 상술하라.

대체로 우리들은 전술한 바와 같이 三일에는 일단 王承輝의 집으로 피난했으나 그래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그 날 松林里 岩本목장으로 피난했다. 四일도 계속해서 종일 피난 중에 있었다. 그 다음 五일 오전 二시가 되어 이젠 무사하리라 생각하여 주인과 三인이 王承煇의 집으로 가서 취침하고 있었다. 전날부터 피곤하여 곧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 날 밤 오전 三시경에 돌연 수십명의 군중이 옥내로 침입하여 돌연 머리와 온 몸을 몽둥이와 같은 것으로 수회 구타했다. 그리고 옥외로 질질 끌고 나갔다. 옥외에도 많은 사람이 있어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혼절하여 인사불성인 상태로 약 一〇일쯤 있다가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 동안은 일체 의식불명의 상태로 있었다.

1931년경, 조선인 백여명이 인천에 있는 중국 호떡집을 습격한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다. 상당수의 호떡집이 중국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 숫자나 규모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컸던 모양이다. 중국인이 돈을 걷어간다는 류의 민족감정이 저 유혈사태를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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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동아일보에 총 6회 연재된 동화 <호떡장사 덕성이>.

가난한 호떡장사 덕성이의 병든 홀어머니가 어느 날 <얘야. 내가 떡국이 먹고 싶구나> 라고 말하자(...)
호떡장사 덕성이는 메대를 매고 아이들이 노는 곳에 호떡을 팔러 갔다가 애들한테 몰매만 맞고
돈이 없어 가래떡 한 줄을 훔쳤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너 다시는 그러지말고 정직하게 살아라> 라고 하자
덕성이가 크게 뉘우치고 일본 유학을 갔다가 불길속에서 어떤 노마님을 구했는데 그 노마님이 백만장자라서(...)
그 돈으로 독일 유학을 다녀와서 다시 병든 홀어머님 잘 모시고 마누라도 잘 얻어서 잘 살았다는...
감동 깊은 이야기인데,

여기서 호떡장사는 아주 가난하고 처량한 존재로 묘사된다.

호떡장사는 여러 계층이 있었던 모양이다. 종업원을 부리면서 호떡을 팔다가 인심을 잃어 조선인들에게 피습당하는 중국인 호떡장수가 있었는가하면, 생활도 곤란할 정도로 어려운 호떡장수도 있었던 모양이다.






참. 재밌는 기사 하나가 있다. 중국인 호떡에 의해 어린아이들의 푼돈 및 빈민의 주머니를 중국인이 다 걷어가기 때문에, 사리원의 정연관씨는 <계란병>을 개발해서 호떡을 대체하고자 한다는 기사다. 그런데 저 <계란병>의 정체가 뭔지 참 궁금하다. 요즘 사먹는 계란빵이 저 계란빵일까?


호떡의 이러한 대유행에는 소위 말하는 <절미운동>이 한 맥락에 있다. 일제시대의 식량 공출 등에 의해 쌀이 수탈되어나가는데, 쌀 대신 먹어야 할 것은 필요하고, 그래서 결국 많이 먹게된 것이 호떡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대에는 밀가루도 귀한 음식이 아니었을테니. 그렇다면 저 호떡의 재료는 뭐냐?  1940년 조선일보의 조선일보 1940.06.01     호떡장수들 비명. 맥분, 사당 구득난으로 업자들 인천서에 알선을 탄원 라는 기사로 미루어, <보리가루>가 주재료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의 호떡과는 조금 다른 맛이었겠지. 하지만 설탕이 주재료의 하나이기는 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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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별 | 2007/02/24 11:33 | 한국음식의 탄생 | 트랙백 | 덧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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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안모군 at 2007/02/24 12:06
일제 당시에는 여러모로 민족간 갈등이 첨예하긴 했던 모양입니다. 특히, 비슷한 계층에서 상권이나 생활권을 놓고 대립하던 중국인과 한국인 간에 갈등이 생기는 사례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만보산 사건이 그냥 일회성 사건은 아니긴 한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한도사 at 2007/02/24 15:23
중국 당나라인가 송나라때인가, 장안성 밖에서 서역에서 온 사람들이 구워팔던 밀병을 호병이라 했다고 하던데, 중국인들도 이걸 오랑캐의 떡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래 중국인의 떡은 아니라는거지요. 호떡의 생김새로 볼때, 아랍의 피타빵이나 북인도의 짜파티에 뿌리를 두었을수도 있습니다. 기원을 한번 조사해 보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24 15:50
안모군/ 그렇죠.. 게다가 한일관계처럼 둘 사이에 위계질서가 잡힌 관계도 아니었으니...

한도사/ 호떡과 피따빵이 똑같이 납작하기는 하지만, 하나는 미리 납작하게 밀어서 화덕에 굽는 음식이고, 또 하나는 동그란 반죽 덩어리를 기름 위에서 납작하게 내리 누르는 음식이라, 둘 사이는 연관성이 없을 것 같네요. 당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어느 선에서 엮이기는 하겠지만...

오히려 초기 호떡도 그렇게 납작하게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Commented by 措大 at 2007/02/24 15:59
일제시대에 널리 퍼진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과는 무관한거 같고 (지금도 일본에는 호떡이 없지요?) 오히려 만주쪽에서 나온 먹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제시대 한국인 교감선생님의 둘째딸로 태어난 모 작가의 자전적 아동소설에도 보면, 아버지가 만주로 부임하게 되자 오빠가 "호떡은 실컷 먹겠다"고 좋아했다는 대목도 있고
다른 회고담 가운데는, 상해로 이주한 한국인 가정의 소년이 "호떡은 실컷 먹겠다"고 좋아했는데 상해에는 호떡이 없더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도 있지요 -_-

호떡 자체가 쌀이랑은 관계없고, 다른 곡물가루로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화북지방의 음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쨌든 호떡하면 옥수수가루가 생각나는데 말이죠 --; 특히 절미운동을 할 즈음에는 만주로부터의 화곡 수입량이 상당했고, 그 대부분이 조, 수수, 옥수수였지요.

소를 설탕이나 단팥으로 치환해간 것은 위생대책의 일환이었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 상상이상으로 부패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당시의 식품보존역량을 보노라면 소가 단것으로 단순해진 이유를 알듯도 합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24 17:08
네. 중국쪽이죠. 원래 호떡은 <딤섬>의 일종이 한국화된 것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재료가 옥수수가루/조/수수였군요. 만주로부터 조, 수수, 옥수수가 많이 수입되었군요. 밀가루도 없고 쌀도 없어서 뭘 먹었을까 고민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 고민이 좀 우습다는...

소가 단순해진 것에는 재료값도 한 몫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떡에 조청찍어먹는> 우리 식문화와 맞기 때문인 것도 같군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24 17:09
아 그리고 보존역량 설에는 <긴가민가하지만 반대>쪽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의 음식보존역량이나 우리나라의 음식보존역량이나 비슷비슷하지 않았을까요?
Commented by 머미 at 2007/02/24 18:05
그런데 호떡에도 소위 '옛날호떡'이라고 불리는 공갈빵 스타일의, 속에 공기가 많이 든 스타일이 있고 살이 쫄깃쫄깃한 기름에 지져낸 스타일이 있는데 어느 것이 정통입니까?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24 19:24
어느쪽이 맞을지 모르겠어요. 일단 옛날 호떡의 모양을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요.

다만 지금 중국의 딤섬 가운데 공갈빵 스타일은 존재하지만, 한국식 호떡 스타일은 별로 없는 걸 봐서는, 초기에는 공갈빵 형태였다가 차차 한국식 호떡이 되지 않았을까요? 좀 더 찾아볼만한 이야기겠네요
Commented by 초록불 at 2007/02/24 21:35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옛날 기억을 되살려보면...

국민학교 4학년-5학년 시절의 호떡 만드는 법이 지금과 조금 달랐어.
지금은 철판 위에서 설탕가루를 넣은 밀가루 반죽을 눌러서 기름에 지지는 방식이지만
그 시절에는 일단 그렇게 눌러서 모양을 만든 다음 화로 속에 넣어서 익혔어.

어린 시절의 기억이니, 일반적으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로 지금보다는
기름기가 적은 호빵이 만들어졌던 것 같아. 하지만 공갈빵 형태는 아니었고...
(공갈빵 호떡을 좀더 어렸을 때 먹어보았던 것도 같은데, 지금이나 그때나 맛없음...)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25 11:33
어 처음듣는 이야기에요. 마치 서양식 오븐 요리 비슷하겠네요?

Commented by 한도사 at 2007/02/25 20:08
초기의 호떡은 기름에서 내리눌러 부치는게 아니고, 피타처럼 기름이 전혀없이 화덕에서 구웠습니다. 서울 명동에서는 그런 호떡을 볼 수 있었지요. 음식이야기 쓸때,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본질을 봐야 합니다.
Commented by 한도사 at 2007/02/25 20:08
초기의 호떡은 기름에서 내리눌러 부치는게 아니고, 피타처럼 기름이 전혀없이 화덕에서 구웠습니다. 서울 명동에서는 그런 호떡을 볼 수 있었지요. 음식이야기 쓸때,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본질을 봐야 합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25 22:46
초기 호떡은 화덕에서 굽는게 맞는 모양이군요. 그 화덕은 어떻게 생긴 화덕이었나요?

그리고 피타와 호떡... 의 연관성을 보려면 너무 멀리 되돌아가야 될 것 같군요. 일단은 조선시대 이전으로는 거슬러올라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더 올라갈 자신도 없구요 -_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25 23:47
아무튼 그러면 저도 궁금하던 머미님의 질문이 해결되었군요. 왕년에 휘날리던 호떡은 기름없이 화덕에 굽던 호떡. 그것이 어느 시점에 기름에 굽는 것으로 변했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기름없는 호떡에 대한 자료를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Commented by 한도사 at 2007/02/27 01:16
이 질문에는 제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지요. 제가 어렸을때 명동 대만대사관 근처의 중국 호떡집에서는 둥근 화덕에서 기름기 전혀없이 호떡을 구워주었습니다. 호떡을 만지면 표면에 발라놓은 밀가루가 하얗게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초/중때는 흔히보는 넓은 철판에서 호떡을 눌러서 지지면서 굽는 방식이 유행했고(리어카에서 화덕을 쓸수 없었으니까), 결정적으로는 내가 고딩때 서울장안에 일명 '디스코 호떡'이라는게 생겨나면서, 길바닥에서 기름에 빠뜨려 튀겨내듯이 호떡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이후쯤부터 명동에 화교상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최후의 호떡집도 없어졌고, 그후로는 서울바닥에서 기름에 범벅된 호떡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82년도에 고1, 84년도에 고3이었습니다.
Commented by 총천연색 at 2007/02/27 08:14
우리는 바뀐 호떡을 먹고 있군요.
ㅇ_ㅇ)a 연원이 쭈욱 올라가야 한다는건 앎.
좀 더 오래 된 음식일거라고 생각해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7/02/27 10:43
한도사/ 이제야 좀 제대로 된 정보가 나왔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 화덕이라는게 붕어빵틀 비슷한건가요? 아니면 아궁이 or 군고구마통 비슷한건가요?

저 어릴 때에는 기름에 튀겨서 케찹 발라먹는 디스코 오뎅이 유행했었는데, 기름에 튀기는 거에다 디스코라는 접두사를 붙였었군요.
Commented by 한도사 at 2007/02/27 13:36
아궁이 비슷한 거 였습니다. 인도 탄두리 화덕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듯.
Commented by 찬별 at 2007/03/01 14:13
넹... 결국 포장마차에서 즉석으로 구워파는 호떡이 나온지 얼마 안 되었다는 걸로 해석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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