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려행기 #1
작년 여름에 갔던 일본려행기를 지금에야 쓰는데, 워낙 오래된 일이지만 사진을 찍어둔 것으로 그럭저럭 앞뒤가 기억난다. 하지만 짧은 여행이었고, 이야기할만한 거리가 풍성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조금 야부리 스타일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사진은 귀찮아서 안 올린다.

 



0.


몇 년 전부터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박 2일, 1박 3일 등의 해외 여행 상품이 인기이다. 사흘 동안 한 번만 자고 여행을다니면 여행을 돌아올 때 쯤은 눈 주변에 다크써클이 올빼미처럼 생길 것 같지만, 비용이 저렴하고 짧은 기간 동안 큰 준비 없이가볍게 떠날 수 있어서 인기가 있다.  

그렇지만 직장인이 이 코스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쉬운 결심으로 될 일은 아니다. 대개 이 여행은 금요일 밤 열두 시에 비행기를타고 떠나면 월요일 새벽 세 시쯤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 공항에서 집으로 도착해서 샤워를 한 뒤에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야한다는거다.

두 시간을 자고서 직장으로 출근하기란 무척 힘든 노릇이다. 결국 이런 코스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당신이 다니는 회사가 조금은특수해야 한다. 전 직원이 두 명인데 당신이 사장이거나, 또는 당신의 엄마가 사장이거나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회사가 특수하지 않다면, 사람이 특수해야 한다. 사흘의 여독을 두 시간의 수면으로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 강철 체력의소유자이거나, 눈을 뜨고 잘 수 있는 능력을 가졌거나, '나는 졸립지 않다, 졸립지 않다.' 라고 주문을 외우면 진짜로 졸립지않게 되는 자기최면의 대가라거나. 또는 그 모든 능력과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꼭 그 여행을 가서 놀아야겠다, 라고생각하는 사람이거나. (즉 잠시 미쳤거나)

물론 나는 그 가운데 맨 마지막에 해당한다. 누구나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가 잡탕밥을 먹고 나오게된다거나, 양말을 사러 갔다가 정장을 사오게 되는 경우 말이다. 그러니 회사일로 기차표를 예매하다가 밤도깨비 여행상품을 예매하게되는 경우도 물론 있는 것이다. 다행히 뜻이 맞는 (즉 비슷한 시기에 함께 미친) 동행을 구할 수 있었다.

보통은 여행지를 정한 뒤 동행을 구하는 것이 순서이겠지만, 우리는 일단 여행을 가기로 한 뒤 여행지를 정했다. 여행지를 정하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주일 후에 떠나는 밤도깨비 여행표가 남아있는 곳은 일본 오사카행 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여행지로서 매력적이지 않다고 늘 생각해왔다. 특히 도쿄를 다녀온 사람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말하는 것은, 도쿄는 서울과우스울만큼 닮았다는 것이었다. 여기는 서울로 치면 명동, 여기는 서울로 치면 대학로, 여기는 강남...

“서울 비슷한 걸 보기 위해 서울을 떠나야 된다는건데.”

일본이 여행지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을 꺼내자, N이 말했다.

“서울에서 빤쓰만 입고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할 수 있어? ”

그건 서울이 아니라 도쿄 또는 화성에 가더라도 하기 싫은 행동이다. 하지만 N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이해했다. 여행이란 것이그곳에 도착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이곳을 떠난다는 것 또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뭐 어차피 잠시 미쳐서 떠나는여행인데 어딘들 어떠하리. 그리하여 나는 처음으로 일본을 여행의 목적지로 삼았다.  



2.
여행 준비는 제 정신일때도 잘 안 하는데, 하물며 제정신이 아닐 때에야! 게다가 하루 이틀의 여행을 위해서 보름씩 한달씩을준비하는 것은 아이러니 아닐까. 게다가 이번에는 다른 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다. 그 친구는 당연히 가고 싶은 곳을 미리정해두고 있을 테니, 내가 별도로 조사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여정을 짜올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으로 판명이 났다. 친구 또한 정확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기는 비슷한 시기에 이런 여행을떠나면서 다른 사람은 나보다 조금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실수이기는 했다. 공항에서 만났을 때 친구 N은 미지의세계에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순수하고 호기심 많고 무식한 표정으로 (병아리의 머리 또한 닭대가리에 불과함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N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월요일 새벽 세시에도 이와 비슷한 웃음을 지을 수 있기를.그리고 월요일 오후 네시에도 이와 비슷한 웃음을 지을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서 창문에 붙어 바깥 구경을 하는 것은 신혼여행 때 제주도를 가면서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1차산업 종사자의 전형적인행동양식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것은 나쁜 것도 아니고 지양해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휴가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나다니는 사람의 행동으로서 조금 촌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촌스러움> 같은 것이 망설임의이유가 될 까닭이 없다. 우리는 신혼여행으로 처음 제주도를 가는 1차산업 종사자의 심정으로 하늘 아래의 풍경을 신나게 찍었다.사진에 찍힌 곳은 큐슈섬 근처의 어디쯤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오사까 공항에 내렸더니, 일본어, 영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총 4개국어로 만들어진 안내판이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다. 중국어와 영어는 그렇다고 치는데, 한국어까지 표기판이 있는 것이 의외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공항에서 관서 스루토 패스(2일치 지하철 정기권)을 구입하자 오사카 관광안내 가이드를 주는데, 이 또한마찬가지로 4개 국어였다. 안내표를 나눠주는 아줌마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리와 똑같이 생겼고,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우리와비슷했다.

지하철 안의 풍경도 대동소이했다. 차창 바깥으로는 외국어가 씌여진 간판이 있었지만, 알아볼만한 한문이었기 때문에 이국적인 느낌이들지 않았다. 게다가 절반 가량은 영문으로 씌여진 간판이었는데, 간판이 국영문 혼용이기는 서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와 같은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이 쏟아져내렸기 때문에, 들리는 말도 절반은 한국어였다. 떠나긴 떠난 것이 맞는지 헷갈렸다.

“이게 도대체 한국이냐 일본이냐.”

N은 조금은 당황하고 실망한 표정이었다. 앞으로도 이와 비슷하다면 N은 빤쓰만 입고 사차선 도로를 달리기라도 할 것 같은기세였다. 만약에 그가 그렇게 하면 나는 그를 모른척 할 것인지 아니면 그를 따라서 함께 달릴 것인지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아주 일본스러운 풍경 하나를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그린 듯 조용히 앉아서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단정했다. 발끝을 가지런히 모으고, 두 손은무릎위에 가볍게 놔둔 채였다. 만약 그 아주머니가 졸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아주머니가 졸고 있는 줄도 모를 뻔 했다.물론 그 아주머니가 아주 엄격하고 지루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예를 들어 졸다가 걸리면 할복을 시킨다든지 하는 학교에서 터득한생존전략이 이 나이까지 유지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정이 어쨌든간에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달려서 시가지에 들어섰다. <난바> 지역이었다. 그런데 표기된 글자들을 보니 조금 혼란스러웠다.한글 안내서에는 <난바> 라고 적혀있는데, 한문으로는 難波이고 영문으로는 <NAMBA> 라고 써져있다. 저한문을 중국어나 일본어로 뭐라고 읽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NAMBA>는 한글로 읽으면 <남바>이다.

“왜 남바야? 난바가 아니고?”

“왜 난바가 아니고 난바냐고? ”

“한글로는 난바라고 썼잖아. 그런데 왜 영어로 남바라고 쓰는거야? ”

“난바를 난바라고 썼는데 뭐가 문제야.”

고양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나 혼자 읊조려보았다. NAMBA, 난바. 그러고보니 그다지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기는 전화로 영문을 불러줄 때면 은근히 구별하기 힘든 것이 M과 N이다. 김민자의 영문 표기가 긴닌자로될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신라를 <SINRA> 라고 쓰지 않고 <SILLA> 라고쓰는데, 그와 비슷하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만약 개인 예약으로 왔다면, 숙소를 고르기 위해 적지 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동경과 서울이 물가가 비슷하니 어쩌니 하는 신문기사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지만, 그 기사 밑에는 <나 여기 일본인데 기자 즐 쳐드셈> 같은 댓글이 뒤를 따르는것이 현실이다. 확실히 일본의 물가는 비싸다. 아직까지 물가에 맞아죽었다는 사람을 본 적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살인적>이라고 묘사되는 것이 일본의 물가이다.

패키지 여행의 장점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1박 3일 도깨비여행이지만 가장 지출이 크게 되는 숙소와 교통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그게 싸든 비싸든 간에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와 N이 묵기로 한 숙소는 오사카의 난바플라자라는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두 사람이 묵기에 조금 답답하실꺼에요, 하는 여행사 직원의 주의를 이미 들었던 다음이기는 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본 우리는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뚜막에 먼저 오르기 위해 날뛰는 미친 강아지처럼 경쟁해야 할 오늘 밤이 선했다. 한국의 모텔도물침대가 구비되면 오륙만원씩 받기도 하지만, 물침대도 없는 주제에 혼자서 간신히 잘 수 있는 크기의 방이 그렇게 비싸다는 것은의외였다.

아무튼 밤일은 밤에 걱정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첫 번째 관광 목표를 오사카성으로 잡았고, 그보다 전에 일본 음식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간 일본 음식점은 길거리의 분식집이었다. 아니, 분식집이라는 말이 어디에 씌여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막연히 분식집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들어갔더니 정말로 분식집이었다.




분식집은 매우 단순하고 효율적인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입구에는 식권 자동판매기가 있고, ㅁ자 구조로 된 주방에서 일하는노부부에게 식권을 내밀면 음식을 내주는 구조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자동판매기에는 그림이 없고 글자만 씌여져 있는것이었다. 우리는 동전을 꺼내들었다.

“하느님은 때때로 우리한테 이런 식으로 운을 시험하게 하시는구나.”

N은 하늘을 향해 탄식 비슷한 것을 하며, 그 가게에서 가장 가격이 비싼 메뉴(700엔 가량이었던 듯. 분식점이라서 싸다)를골랐다. 평소에는 신이 내 몫의 행운은 남겨주지 않았다는 농담을 하면서 로또 한 번 사본 일이 없다는 N이다. 큰길 한복판에서빤쓰만 입고 달리는 대신에 이런 식의 일탈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를 따라서 나도 내 운명을 시험해 보았다.

 


내 운명은 메밀소바였다. 우리나라 메밀소바와 다를 것이 별로 없...는가 했더니 묘한 것이 달랐다. 바로 와사비 대신 노란 겨자를 쓰는 것이었다. 아, 메밀국수의 본고장에선 와사비에 한류가 불어 겨자를 쓰는구나.

여담으로, 와사비를 고추냉이라고 우리말화 하는 것이 꼭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러면 케첩이나 마요네즈는 어쩌란말인가. 누군가가 이 형평성에 대해 알아들을만큼 설명을 해주기 전까지는 나는 줄기차게 와사비라고 말할 생각이다.



그리고 N의 운명은 오야코동이었다. 닭고기와 계란을 가다랭이 국물에 익혀 밥 위에 얹어먹는 덮밥이다.

오야코동의 정식 명칭은 오야코 돈부리. 한문으로는 친자동, 우리말로 하면 부모자식 덮밥이다. 부모는 닭, 자식은 계란. 부모와 자식을 따로 먹을 것 없이 한번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영양가 만점의 식품이다.

사실 어느 나라 음식이든간에 기본적인 엽기성은 갖추고 있다. 식재료의 차이는 문화와 역사, 아니 사실은 그 이전에 생존의차이이다. 그래서 개고기나 푸아그라, 전갈, 굼벵이, 원숭이골, 사슴피, 뭐 이런 음식들에 대해서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다.게다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그보다 더 제대로 된 엽기식품들이 사방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예를 들어, 브리짓 빠뜨롱 여사에게참기름에 버무린 산낙지 또는 후라이판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꼼장어를 얼큰하게 한 접시 먹여주면, 다시는 개고기가 엽기식품이니 뭐니하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 뭐 엽기식품이란게 어딨어. 뱃속에 들어가면 똑같은 것을.

그런데 그 음식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이르면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나로서는 가장 엽기적인 것은 삼겹살집의 간판에 웃으면서엄지손가락을 내민 돼지가 그려져 있고, 통닭집에는 리본을 맨 암탉이 포크로 닭다리를 맛있게 찍어먹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내게 <친자동>은 상당히 엽기적인 음식이다.

N은 이런 내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통돼지 바비큐를 뜯으며 오늘 해치운 한 껀을 흐뭇해하는 텍사스 도끼살인마 같은 표정으로오아코동을 꾸역꾸역 먹어 치우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나는 초식동물처럼 우아하게 메밀국수를 빨아먹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사카성을 향했다.

일본은 대중교통 가운데에서도 지하철이 참 발달했다고 말해진다. 하지만 일본의 지하철은 우리나라보다 노선이 조금 더 많고복잡하다. 역 구내가 넓을 뿐 아니라 아주 헷갈린다. 같은 탑승구에서 고속열차와 저속열차가 구분되기도 하고, 정차를 하는 역과하지 않는 역도 분류가 명확하지 않았다. 게다가 값도 비싸다. 일본에서 지하철로 처음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라면, 그 말을 만든사람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한 이틀 다니자 그 지하철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말을만든 사람도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사카성에 도착할 수 있는 전철역은 다니마치욘초메역과 오사카 비즈니스 파크역, 이렇게 두 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N과 나는서로 다른 역을 말하는 서로 다른 안내서를 보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물증을 들이대며 언쟁을 벌여야 했다. 인사동을가기 위해 종로1가와 종로3가 중 어느 전철역에 내려야 하는지를 다툰 셈인데, 부모와 자식을 한꺼번에 잡아먹을만큼 흉악한 N에게내가 이길 수는 없었다.

전철역에서 오사카성까지는 거리가 제법 되는 편이었고, 그 사이에는 한적한 마을공원이 있었다. 공원에서 오사카성의 천수각까지 가는 길이 안내된 게시판이 곳곳에 있었는데, 이 게시판 또한 영어, 중국어, 한글이 병기되어 있었다.



길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있었다. 주인이 없는 고양이인 것 같은데 사람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봤더니,‘늙고 병들어서 관광객을 구경하는 것은 커녕 쥐를 쫓는 것조차 재미가 없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를 외면했다. 나와N은 고양이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무의미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오사카성을향해 걸어갔다.




얼마동안 터벅터벅 걷자 오사카성이 나왔다. 아주 깊이 해자를 파고 해자 너머에 돌을 쌓아 건물을 지었는데, 딱딱 들어맞는 솜씨가일품이었다. 어느 부분까지가 과거부터 있던 건물인지, 그리고 어느 만큼이나 현대에 재건축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



때때로 여행지의 문화유적 앞에서 가끔 전문가인 척 오버하다가 바보될 때가 생긴다. 오래된 건축물의 정밀한 측량과 현란한 장식,아름다운 무늬에 대해 감탄을 반복하다가 알고보니 화장실이었다거나 하는 경우 말이다. 그러나 이 때의 문제는 화장실을 고대건축물로 착각한 수준낮은 안목이 아니라, 애초에 뜻한 바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그대의 추진력이다. 착각도 이왕 하려면 앞뒤가리지 않고 폭풍처럼 몰아붙이는 편이 더 좋다. 여행지에서의 착각이라는게 어차피 남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오사카성에서 가장 놀랐던 것이라면 이 성의 해자를 구성하는 여러 성벽 가운데 하나였다. 성벽을 구성하는 돌가운데 가끔씩 황당할 정도로 큰 것들이 하나 있는데, 사진에 나온 돌의 경우 길이가 13m, 무게가 200톤에 달하는 엄청난물건이다. 성을 구성하는 단일한 돌로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돌 가운데 하나이다. 정말로 확실하다. 아니면 말구.





오사카의 천수각.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이 곳에서 뭔가를 했다는 것 같은데, 사실 뭘 했는지 관심도 없고, 실내 박물관에서 이런저런 전시물들을 보기는 했지만 뭘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관심도 없다면서 뭐하러 여기 오자고 그랬어? ”
“남들 다 오니까.”
“에휴 더워.”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사냐. 남들 다 하는 일은 해야지.”

N의 말에 설득력은 그다지 없었지만 나는 설득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학에 관심있는 사람만 역사유물을 본다면 어린이대공원에는유체역학 학자와 물리학자로만 버글거려야 한다. 그런 것에 굳이 관심이 없더라도 남들 다 하는 걸 하는 건 대체로 믿져야본전이다. 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탑 안에 만들어진 전시관을 대충 관람했다.
 


전쟁터에서 맞서 싸우는 양쪽 병사를 정밀하게 만든 모형들인데, 저 많은 병사 하나하나의 움직임과 표정과 색깔이 조금씩 다달랐다. 일본인들이 디테일에 강하다는 말은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를 담고 있는 천년 고도의 유적에서 내흥미를 가장 많이 끈 것이 바로 장난감 인형이라는 사실로부터 내 자신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공원 바깥은 더웠다. 일본의 여름은 기온 자체는 우리나라보다 많이 높지 않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습하다는 느낌으로 더웠다.

by 찬별 | 2007/04/14 21:25 | 찬별의 려행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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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5/23 16:29
안녕하세요 찬별님 여행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난바역 진짜 무진장 복잡하죠?
Commented by 찬별 at 2007/05/23 19:01
네 저도 가끔 가서 여행기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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