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침몰 #2-5.1
1.
국회 지하실에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전투방위 인력이 전원 집결해있었다. 워낙에 훈련이 힘들어서 일반 방위와의 비교를 거부하는 특전방위였는데, 그들도 퇴근시간은 여섯시였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밤 열시가 되었는데도 퇴근은 커녕 완전군장 상태였다. 당연히 그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지만 누구인들 찍소리를 할 수 있으랴. 그들이 꼼짝도 못하는 그들의 소대장이 꼼짝도 못하는 중대장이 꼼짝도 못하는 대대장이 꼼짝도 못하는 연대장이 꼼짝도 못하는 사단장이 꼼짝도 못하는 국회의원이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중인데 말이다. 게다가 그는 지금 심하게 화가 나 있었다.

"야, 좀 빨리 돌려봐."

의원의 한 마디가 떨어지자, 탈탈거리는 소리가 한 템포 더 빨라졌다. 전투방위 인력들의 이마에 구슬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그들은 어깨가 빠질만큼 빠른 속도로 딸딸이 전화기를 돌려댔다. 모든 것이 정전된 상태에서 그나마 발전할 방법은 딸딸이 전화기 뿐이었다. 의원이 위를 향해 소리질렀다.

"철수 엄마, 이제 냉장고 켜졌어? "

그러자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응, 켜졌어. 근데 맥주가 차가워질려면 한 삼십분은 지나야되지 않겠어? "

"걱정마. 삼십분 정도는 될테니까."

그렇게 말한 의원은 사단장을 한 번 쏘아본 뒤 말했다. "삼십분 정도는 돌릴 수 있소? "

그러자 사단장이 부동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충! 성! "

의원은 썩 미덥지는 않다는 표정으로 사단장을 몇 번 쳐다보았다.

"똑바로 잘 하쇼."

의원이 그렇게 말하고 위로 올라가려는 찰나, 갑자기 천장에서 다시 여자의 소리가 들렸다."

"여보, 철수가 게임기 켰더니 냉장고 도로 꺼졌어."

의원이 발걸음을 딱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자세가 흐트러졌던 사단장이 다시 날쌔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면서 의원이 묻기도 전에 아랫쪽에다 소리를 질렀다.

"야이 개쉑들아. 더 빨리 못 돌려? 한번만 더 말 나오면 너희들 전부 군기교육대 보낸다. 알았어? "

대답 대신 지하의 털털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높아졌다. 의원은 사단장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말했다.

"이보시오, 사단장."

"소장! 최! 소! 훈! 말씀하십시오, 국회의원 각하! "

"한번만 더 우리 마누라한테서 말 나오면 그때는 의회에 이 안건 상정해서 군기교육대 보낼꺼야."

"시정하겠습니다! "

"똑바로 할꺼지?"

"예! 그렇습니다! "

"한번만 믿어보겠어."

"예! 알겠습니다! "

의원이 뚜벅뚜벅 계단을 걸어 올라가자, 그제야 최소훈은 몸에 힘을 풀고 담배를 물었다. 생각할수록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감히 의원 나부랭이가. 각하가 살아계시던 시절만해도, 의원 따위는 남산 아래에 가둬두고 뒤집어도 보고 꺾어도 보고 뚫어도 보면서 하루를 즐길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단장 씩이나 되어서 이렇게 설설 기어야 한다니.

최소훈은 신경질적으로 연대장을 불렀다. 연대장 네 사람이 후닥닥 뛰어와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박아! "

연대장 두 사람은 냉큼 머리를 박았지만, 사실 연대장과 사단장은 서로 머리박아 같은 걸 시킬만한 짬밥은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잠시 망설였다. 순간 사단장의 강력한 쪼인트 어택이 두 사람의 연대장에게 동시에 들어갔다. 두 사람의 쪼인트를 동시에 까는 것은 군대 짬밥이 이십오년 이상 되어야만 구사할 수 있는 강력한 필살기였다. 그 공격을 받자마자 연대장 두 사람은 잽싸게 머리를 박았다. 정강이뼈 골절상을 입는 순간 머리박아를 수행하는 것은 군대 짬밥이 이십년 이상 되어야만 구사할 수 있는 필살기였다.

"내가 씨발 이 짬밥에 지금 이러고 있어야겠어? 밑에 애들 똑바로 교육 못 시켜? 앙? "

"시정하겠습니다! "

세 사람의 연대장이 복창하는 가운데 연대장 하나가 토를 달았다.

"사단장님 그게 말입니다."

"그게 뭐? "

"애들이 지금 말입니다, 열두시간째 계속 딸딸이만 돌렸거든 말입니다."

"군대 말에 말입니다가 어딨나! "

사단장이 호통을 지른 뒤, 숨을 잠시 골랐다. 다른 연대장 세 사람이 말대꾸한 연대장을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을 저 한 놈 때문에 복잡하게 끌고 가게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사단장이 호통을 질렀다.

"당번병! 치약뚜껑 갖고 와! "

치약뚜껑에 머리를 박은 연대장 네 사람이 곧 고통으로 꿈틀거렸다.

"똑바로 할래? "

"네 그렇습니다."

"진짜 똑바로 할꺼야? "

"네 그렇습니다."

"정말로? "

"네 그렇습니다.'

"진짜로? "

"네 그렇습니다.'

"참말로? "

"네 그렇습니다.'

"믿을 수 없나?  "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더 박고 있어야겠네."

연대장들이 다시 꿈틀거렸다. 10초쯤 후 사단장이 다시 물었다.

"진짜 잘 할 수 있나? "

"네 그렇습니다.'

"믿을 수 없나? "

모두들 "아닙니다" 를 외치는 가운데, 연대장 하나가 다시 한 번 "네 그렇습니다!" 를 우렁차게 외쳤다.

얼차려를 10분 이상 하고난 뒤에야 연대장 네 사람은 땀 범벅이 되어 간신히 일어섰다.

사단장이 연대장을 돌려보내자, 연대장은 각자의 연대로 돌아간 뒤에 대대장을 불렀다. 그리고 외쳤다. "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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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별 | 2007/05/06 19:25 | 글쓰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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