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최근 조풍연의 서울 풍속사전을 읽었다. 조풍연은 1914년생 문학가로, 서울풍속사전은 그의 어린 시절을 항목별로 회상한 민속자료이다. 이 책을 읽다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건이 있다. 바로 모 학교에 여학생이 숨어들어 학업을 하다가, 어느 날 들통이 났다는 것이다. 학교장과 학부모들이 길길히 날뛰는 가운데 여학생은 꼭 학업을 해야겠노라고 악착같이 탄원했다. 그 결말은 잊었는데 나중에 다시 찾아서 올리겠다. 이 기사의 말미에는 영국의 사례가 나온다. 어느 학교에서 의학을 배우고 졸업해서 의사로 평생을 근무한 어떤 여인은 죽은 뒤에야 여자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조풍연 개인의 회상이므로 실화인지 또는 그가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또는 소설의 일부였던) 것일 수도 있다. --> 실화로군요

저 기사에서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생각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이야기와 소재가 또렷이 구분된다. 이야기의 관점에서 이 글은 장르소설이다. 로맨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주인공 캐릭터 네 명을 둘러싸고 올망졸망 벌어지는 사건들은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장르적이라고 느꼈다. 인물과 사건의 상당부분은 만화적이라고 느꼈다. 올망졸망 벌어지는 사건들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설득력있다. 캐릭터 또한 비현실적이지만 명쾌하고 생생하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한편 소재는 대단히 현실적이다. 나는 당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소재가 옳거나 틀렸다는 지적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첫째로 작가는 매우 열심히 공부했고, 두번째로 작가는 열심히 공부한 것을 자랑하지 않았다. 내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 선을 긋는다면, 기본 이상과 기본 이하의 경계가 되는 곳이 바로 그 곳이다. 최소한의 공부도 하지 않았거나, 또는 공부는 했으되 공부에 의욕이 과했거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물론 기본 이상이다.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장르 작품은 읽어본지가 꽤 오래 되었다.

다만, 정확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는 있다. 소재와 캐릭터들의 무게에 비해 스토리가 가볍다고 할까. 아니면 앞부분과 뒷부분의 문체가 미묘하게 달라져서 그런걸까. 그러니까, 장르소설과 순수소설 사이의 무게중심이 분명하게 고정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있다. 만점을 주기에 망설여지는 약간의 불균형이다. (사실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다.-_)

머 사실 지금 쓰고 있는 말들 다 필요없고...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다.
다음날 출근하는 나의 취침 시간은 평균 열두시에서 열두시반 사이.
아주 재밌는 책을 읽거나, 야동을 볼 때는 가끔 한 시. 술 마실 때는 한시반까지 갈 때도 있는데. (요즘은 술먹느라 늦게 자는 일은 없군)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권은 새벽 세 시까지 읽었다.

내가 여태껏 읽은 로맨스가 열 권 이하인데 (로맨스를 못 읽는 이유는 짜증나서, 그리고 불편해서이다.)
얼음칼님도 (평소 로맨스를 읽지 않지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소감을 남기셨으니
남자가 읽기에도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독서취향이 평소에 나와 비슷한 분들이라면 꼭 읽기를 권한다.


by 찬별 | 2007/08/27 22:02 | 책읽기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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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좌백 at 2007/08/27 22:07
영국여자 이야기는 실화야.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같은데, 귀족의 딸로 본국에서 뭔가 문제를 일으킨 후 인도에서 (남자)의사로 살다 죽었다더군.
Commented at 2007/08/27 22: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7/08/27 22:19
좌백/ 네 그렇군요.. 재주도 용하지, 어떻게 안 들켰을까...
비밀글/ 고쳤습니다 -_ 거 참 저는 보고 베껴도 틀리게 베끼는군요
Commented by 좌백 at 2007/08/27 22:42
잘 안 씻고 안 벗는 때였잖아.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7/08/27 23:16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제임스 배리" 박사라는 사람이죠. 영국군 퇴역 군의관으로 1865년 7월 25일에 런던에서 73세로 사망했는데, 주 근무지역은 서인도제도-남아프리카-인도였습니다. 유능한 군의관에 뛰어난 용모까지 갖추어 여자들에게 대인기를 누렸으며, 여자를 놓고 동료 장교와 결투까지 한 적이 있다는군요. 죽은 뒤에야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부검을 해 본 결과 배리 박사는 젊어서 출산을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배리 박사가 제임스 배리라는 이름으로 에딘버러 대학 의학부에 입학한 것은 16세 때 일이었는데, 학창시절 동료들 중 누구도 그가 실은 여자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본명이 무엇인지, 그녀가 낳은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 그런 건 지금도 아무도 모릅니다. 묘비에도 그냥 "제임스 배리 박사"라고만 씌어있다는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7/08/27 23:17
좌백님이 말씀하신 경우와는 세부적으로 오차가 좀 있는데...그냥 서로 다른 두 이야기일지도요.
Commented by 좌백 at 2007/08/27 23:35
아, 제가 기억력이 별로라서 세부사항에 약하죠... 말씀하신 그 이야기네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7/08/27 23:51
음.. 인도에 살았다면 더워서 많이 벗어야 했을 것 같은데... 영국신사들은 안 벗었던걸까;;;

아무튼 여자를 놓고 결투까지 했다는 걸 보면, 거짓말을 계속 하다가 스스로도 속아넘어간 거 아닌가 싶네요. -_-
Commented by 연분홍 at 2007/08/28 00:04
와아! 정말 완소하는 책 이름이 있어서 반가워서 들렀어요! 밸리에서 왔습니다. ^^ 이 책 후속으로 규장각 이야기도 나온다고 하니 저는 그것만 기다리고 있어요. ㅎㅎ
Commented by 카시아파 at 2007/08/28 05:38
뭔가 브랜든 티나 이야기 삘이 나는....상당히 엽기적이군요. -_- ;;;;;

Commented by 찬별 at 2007/08/28 19:29
연분홍/ 기대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저는 명취설향 2권이 기다려지는데...
카시아파/ 아 방금 검색해봤는데 영화로군요.
Commented by 강설 at 2007/08/28 23:14
이 소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소재로 딱인듯;;
Commented by 연분홍 at 2007/08/29 18:41
아아.. 명취설향.. 저는 포기한지 오래라는-.- 혹시 공녀는 보셨어요? 김지혜 작가 전작인데 로설의 고전이라 칭해도 무방할 작품이에요. ^^
Commented by 찬별 at 2007/08/29 23:32
강설/ 이미 뭔가 진행이 되고 있는 걸로 알고있어요

연분홍/ 아쉽게도 공녀는 못 읽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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