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1일
낙서 : 880 만원 세대
어느 날 딸이 와서 내게 말했다.
<아빠, 나 임신했어요.>
순간 나는 뒷통수에 망치를 맞은 듯 머리가 찡 울려왔다.
아이는 2013년생. 올해로 15살이 되었다. 부모님과 세대차이를 많이 겪었기 때문에 아이와는 세대차이를 없애리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말을 충실히 들어주고, 원하는 것을 해결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마음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월은 마치 외계처럼 바뀌었다.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주변이 항상 비슷하기에, 나는 세월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 아이였다.
결국 나는 아이를 외부의 미용기술 학교로 보냈다. 물론 나는 내가 보냈다라고 말하면 딸은 콧방귀를 뀐다. 학비는 전액 국비, 생활비는 시급 1만원 수준의 본인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다. 자치단체는 아이들의 학비, 아르바이트 급여, 생활비 등을 보조한다. 그 액수는 학생 1인당 평균 880만원이다. 물론 장애 아동이나 부유층 아동을 제외한 액수이기 때문에, 실제로 개인 혜택은 이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이 세대는 880만원 세대라고 불리운다.
이렇게 사회적 지위를 얻은 아이들은 가정적으로도 급속히 권력을 가졌다. 쉽게 말하면, 아이들은 더러운 꼴 보면서 집에 붙어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들이야 열명이든 스무명이든 한 방에서 재밌게 생활할 수 있고, 간단한 알바를 해도 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생활이 가능하다. 가출해서 편의점 알바만 해도 기본 생활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다.
미용학교 입학 이후로 반 년에 한번 만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반년마다 딸은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재작년에 학교에 보낼 때 까지도 조그만 어린아이였는데, 반년전에 봤을 때는 이미 가슴이 봉곳하게 솟아있었다. 아이의 기숙사 방으로 가봤더니 방바닥에 꼬불꼬불한 털이 널려있었기에, 아이가 이제 꼬불꼬불한 털도 나는 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씨발 그 털이 내 아이의 털이 아닐 수도 있었단 말인가? 나는 갑자기 머리에 열이 확 올랐다.
<어... 어쩔려고? >
딸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런데 입덧 하게 되면 몸이 안 좋아진다면서요. 이번 주말부터 현장 실습 2개월인데, 그 기간동안은 열심히 해야 되서요. 그냥 낙태했어요.>
나는 뒷통수에 망치를 한 대 더 맞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자치단체에서 낙태 보조금을 받아서 했을 것이다. 나쁜 아빠가 되지 않으려면, 딸과 친구같은 아빠가 되려면, 이런 시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아빠로서의 권한, 가족간의 대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꼰대취급 받겠지. 생명과 사랑의 존엄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노인네 같겠지. 낙태를 자주 하면 미래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할까? 그래, 그 편이 그래도 가장 현실적이겠다. 나는 무겁게 입을 열려고 하였다.
하지만 딸은 내 표정을 보고, 잔소리를 예상했는지 얼굴을 찌푸리면서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 by | 2007/11/21 12:56 | 글쓰기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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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좀 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교육이 필요할 거 같네요. 흐허.
찬별님 재미있네요. 그런데 마징가 제트는 더 안쓰시나요?
(부모의 동거에 대한 반대를 경제적 동기로만 해석하는 것은 좀 잘못된 것 같지만, 그런 윤리를 해체시킬 수 있는 힘이 경제적인 지위 성장이라는 부분은 맞을 것 같다능...)
초록불/ 그걸 사실 잘 모르겠어요;;
라엘/ ㅎㅎ
표류소녀/ 잘 이해가 안 돼요 -_
총천연색 / 네
rumic71/ 그거 좋은 아이디어인걸요
언에일리언/ 심심할때마다 한번씩 쓰기는 해요... 좀 바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