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려행기 - 발리 #1 (도착 / 짐바란)

결혼시간 오후 세시. 가족행사를 마친 시간 여섯시. 공항 도착시간 여덟시. 공항 신도시 숙박후 기상시간 아침 일곱시반. 비행기 아침 열시.

부산발 서울행 무궁화 열차에서 내려 걷다가, 이 후줄근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것이 비참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 잘난 척 해봐야 나도 저들 중 한 명, 후줄근하게 지친 여행객이겠구나. 발리행 열시 비행기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내 자리에서 화장실까지 약 이십미터의 복도를 걸어가면, 양쪽으로 쫙 펼쳐진 신혼부부의 물결. 얼굴에 신혼부부라고 써놓은 남녀들. 철없는 고딩같은 액면부터, 재혼부부 내지는 금혼식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액면까지. 얼핏 보기도 대략 백여쌍은 됨직한 부부들. 나도 그 중의 하나. 아 인생무상하다.

그들이야 어쨌든, 대략 일곱시간의 비행 후 발리에 도착하다. 온통 한국어로 된 피켓을 든 현지 가이드들 사이를 뚫고, 택시를 타러 나갔다.

발리는 남반구다. 적도 아래에 있다. 적도에는 새빨간 선이 우뚝 서있으리라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여행중에 어느 현지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발리는 남반구니까 사계절이 북반구와 반대지?>

질문 오초 후 나는 내 질문이 잘못되어있음을 깨달았다.

<발리는 적도니까 계절이 없던가? 그렇지, 발리에는 계절이 몇 개나 있어? >

그 현지인은 두 개의 계절이 있다고 했다. 열대지방에 계절은 무슨 계절? 그 두 개가 뭐냐고 했더니, 아저씨의 대답은 이렇다.

<비오는 여름과 비 안오는 여름>

2월은 비오는 여름에 속한다. 어제까지 큰 비가 계속 왔었다고 한다. 열대성 스콜을 상상했는데, 그 곳의 날씨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온다고 한다. 어제, 그제, 그그저께까지 사흘간 제법 비가 많이 왔다가 오늘 개었으니, 우리는 럭키하다고 한다.

*



오후 네시쯤 내린 발리 공항. 남반구라는 느낌은 없다. 남반구는 그냥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처음 그었고, 이후 지구본 제작 업체들의 습관 하에 계속 그려지는 선일 뿐. 발리는 걍 열대다.

*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공항택시가 비싸다는 관광안내서의 해설은 이미 읽었지만, 동남아 려행객으로서 공항에서 내린 그 순간의 바가지는 운명이다. 운명에 거역하고 싶은 그대라면, 의무라고 생각하라. 딴중브누아에 예약한 숙소까지 10만 루피아를 불렀다. 우리돈으로 대략 10,000원에서 12,000원 사이가 되겠다. 그 돈을 주고 택시를 탔다.

기사는 친절하다. 여러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향후 일정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내일은 뭐할꺼냐. 투어 가이드가 없다면 자기가 데리고 투어해주겠다. 저녁에는 어디 가느냐. 등등. 와입후님과 토의끝에, 숙소에 짐만 놔두고서, 석양과 해산물이 유명한 짐바란 (Jimbaran) 으로 가기로 합의했다. 기사에게 물어보니, 10만 루피아를 더 불렀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공항에서 탄중브누아의 거리의 겨우 절반쯤이다. 너무 비싸니 5만 루피아로 하자고 했더니, 넘이 그러면 7만 루피아로 하잔다. 좋아여 그렇게 하죠, 라고 대답하면서, <신혼려행객은 봉이야 깔깔깔 그 중에도 우리는 대마왕봉이야 깔깔깔> 하면서 웃었다. 그래봐야 우리돈으로는 이만원 이하다.

딴중브누아에 짐을 풀었다. 약 이십분을 기다린 택시 운전사가 우리를 실어가며, 돌아올 때도 자기의 차를 타란다. 물론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우리를 기다렸다가 바가지를 씌워 우리를 태우는 것이 훨씬 대박이라는 사실은 나도 안다. 하지만 두 시간 동안 운전사를 기다리게 하기 미안해서 거절했다. (사실 미안할 일이 아니다만...) 놈은 제삼 권하고 우리는 제삼 거절했다. 차가 도착할 때 쯤에야 넘이 친절히 설명한다.

<이 동네의 레스토랑은 밥 다 먹고나면 당신을 호텔까지 공짜로 태워줄꺼다.>

넘은 떠들던 김에 끝까지 마저 떠든다.

<만약에 내일 와서 또 먹고 싶으면, 호텔에서 전화해라. 택시탈 필요 없다. 이 넘들이 차를 보내줄꺼다.>

그러니까, 자기가 칠만 루피아 받고 우리를 태워준 것은 사기였다고 실토하는 셈인데. 열대의 밝고 낙천적인 사람들의 웃음소리 때문인지, 신혼려행의 들뜸 때문인지, 좀체 속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발리 여행서마다 짐바란의 해산물 바베큐가 유명하게 나와있다만. 원하는 해산물을 고르면 숯불에 구워서 소스와 함께 나오는 시스템인데, 대단할 것 하나 없다. 오히려 생선도 펄펄 뛰던 걸 먹고, 새우도 펄펄 뛰는 걸 먹는, 우리나라 사람의 눈에는 전혀 신선해보이지 않는 해산물이다. 불에 굽는 단순한 조리법일 뿐이다.
 
풀코스로, 생선국과 찐밥, 약간의 야채를 곁들이는데, 가격은 싸지 않다. 두 사람의 식사에 대략 오륙만원이 나왔다.



식사 분위기는 대략 이렇다.



석양이 유명한 짐바란이라는데, 날씨가 흐려서 석양빨이 약했다. 온 바다가 붉게 타오르는 장관을 기대했는데, 보지 못했다.


by 찬별 | 2008/03/16 21:19 | 찬별의 려행기 | 트랙백 | 덧글(6)

트랙백 주소 : http://coldstar.egloos.com/tb/366319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uriel at 2008/03/16 21:40
신혼여행을 발리로 가셨네요. 저도 발리였는데 즐거웠습니다.
Commented by sarah at 2008/03/16 21:41
꿈같은광경이네요
Commented by 허안 at 2008/03/16 21:48
경제적 + 여러 사정으로 인해 강원도로 단촐하게 간 나로서는 부러울 뿐이군. 돈을 펑펑 쓰더라도 신혼여행은 화려하게 가야 한다는데 한표. 결혼식에 돈 펑펑 쓰고 한번쓰고 말 것에 돈 팍팍 쓰는 것도 반표는 찬성 ^^
Commented by 우유차 at 2008/03/16 22:05
99 년에 놀러갔더랬지요. 그때가 좋았는데. ㅡㅡ;
Commented by 찬별 at 2008/03/16 22:53
uriel/ 네. 괜찮은 여행지였어요.

sarah/ 아뇨, 사진빨입니다. 저렇게 멋진 광경이 아니었어요.

허안/ 강원도도 좋죠. 핸드폰만 안 터진다면...

우유차/ 굉장히 신혼여행지 스러울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그렇지도 않더군요.
Commented by 쿨짹 at 2008/03/17 12:16
우왕 정말 좋은데요. ^^ 결혼 축하드려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