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백성민), 마군자(장경)

책이 출간된 연도와 관계없이, 읽는 이는 읽는 시점에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백성민의 토끼는 90년대 후반 작품, 장경의 마군자는 2000년대 초반 작품이지만
2008년이 저물아가는 현 시점에서 읽는 나로서는 여러가지 감상을 느끼게 한다.


토끼 - 백성민

1. 아는 분은 아시지만 원래 나는 대하역사소설빠였다.
그 중에도 특히 임꺽정, 장길산에서 시작하는 농민전쟁소설류를 좋아했다.
최근 몇년간 농민전쟁 소설이 급 지루해져서 읽지 않다가, 이제 다시 만화 토끼를 읽으니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농민전쟁 소설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2. 그러고보면 농민전쟁 소설들도 참 다 똑같다.
주인공이라면 모름지기 절벽에서 두번 쯤 떨어져줘야 하는 무협 못지않게 똑같다.
아비는 천출. 어미는 무당. 태어날 때부터 장사. 우연히 도적의 무리와 어울리게 되고
적수는 양반 출신 장군. 여느 썩어빠진 양반과는 다르지만 신분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주인공이 이끄는 농민군과 적수가 이끄는 토벌군은 심란스런 대결을 펼치고,
결국 주인공은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토벌군에게 패배한다...

3. 날것 그대로의 역사소설을 쓰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의 관념으로 왜곡하지 않은, (그러니까 80년대식 민중사관을 섞지 않은)
과거의 삶의 정다운 모습 그 자체를 그대로 그리고 싶었다.
내가 아는 한은 그런 소설이 없었다.
그래서 쓴 것이 미루마치였다. (물론 초고는 지금의 출간본과 많이 달랐다. 훨씬 재미없었다 -_)

그런데 어느 70년대 만화를 보는 순간 깜딱 놀랐다. (주먹대장류였는지 이두호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그리고 싶어하던 그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져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 지나서야 깨달았지만, 내가 생각하던 <이념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옛날의 전통적인 모습>이란 것이 결국은 실제 과거가 아니라 70년대나 60년대에 그려진 만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1800년대를 생생하게 그려낼 방법?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과거의 전통이란 결국 1970년대의 대중문화에 불과했다.
그 1970년대의 대중문화란, 1940년대 작가들이 스스로의 어린시절을 상상 속에서 재현한 것이다.
즉 우리가 상상하는 조선시대란 1940~1950년대의 풍경일 가능성이 높다.

1940년생 작가는 1970년대생 작가보다 더 토속적인 이야기를 잘 쓸 수 밖에 없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번에 이 만화를 읽으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4. 백성민의 토끼 감상문인데 어째 토끼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나왔다. -_-


마군자 - 장경

1. 요즘은 한두 개의 작품이 아닌, 장르 자체의 흥망성쇠 같은 것이 오히려 흥미있다.
첫째로는 장르의 작품에 대한 애착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테고,
둘째로는 내가 특정 장르의 글을 쓰겠다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일테고,
그리고 셋째로는 나이를 똥꼬로만 먹지 않아서-_-; 세상을 보는 시야가 조금 넓어진 덕택이 아닐까 싶다.

2. 장경의 마군자를 읽으면서 마치 90년대 무협의 항복선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뀌는 독자들의 취향을 따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도
정작 바꿔야 할 것은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는 느낌.
90년대 신무협이라는 장르 몰락의 쓸쓸한 뒷모습이라고나 할까.

3.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별로 소용없는 말들인 것 같아서 줄인다.

by 찬별 | 2008/12/21 23:12 | 독서 (및 영화)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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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페리 at 2008/12/21 23:12
스킨이 바뀐이후에 글자가 급 작아졌네요 ;ㅁ;
랄까 아무래도 저만 그리봰느것 같지만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8/12/22 01:28
글씨 크기가 작아졌나요?
왼쪽에 저 광고들 이제 효과도 전혀 없는데-_ 다 지워버릴까;;
Commented by 페리 at 2008/12/22 01:42
아, 이거 컨트롤키 누르고 마우스 휠을 굴리니 글자크기가 변경되는군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8/12/24 00:28
네, 원래 그래요. 그 말씀이셨었군요.
Commented by catnip at 2008/12/22 17:46
스킨에서 따로 스타일 - 글자 크기, 색상 - 등을 지정하지않으면 익스에 설정된 모양으로 나오는거지요.
익스의 기본 배경색을 회색으로 해뒀더니 가끔 하얗게 보이도록 의도하였지만 회색으로 보이기도 한답니다.
기본이 따로 하얀색이니 따로 지정안해두면 사용자가 설정한 색으로 나오는 식이지요.
오늘 모 홈페이지 갔더니 프레임 나눈 대문이 위는 회색, 아래는 하얀색으로 보이더군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8/12/24 00:28
모 홈페이지가 어디일까낭;;;
Commented by 조나쓰 at 2008/12/24 13:49
토끼를 실시간으로 보던 당시, 주인공이 이끄는 농민군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 패퇴, 사그러드는 모양새가, 우리들이 흔히 남녀 성관계에서 토끼가 상징하는 바와 같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8/12/26 10:25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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