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8일
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2)
#2.
"그러니까 할머니, 할머니는 올해 정부 보조금이 안 나와요."
"아이갸. 별 해괴헌 소리를 다 듣겠네. 그작년에도 받고 작년에도 받았는데 왜 올해는 안 줘? "
노파는 마치 고양이가 강아지를 낳았다는 소리를 들은 표정을 지었다. 김나나는 불안해졌다. 오늘부터 다가올 나날들이 순조롭지 않을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회복지팀장이 강조하기를, 첫번째 민원인과 기싸움에 져서는 안된다고 했다. 앞으로 몇달간 끝없이 싸워야 하는데, 이 곳 등촌 18동에서 잘못된 선례를 한 건만 만들면 이후로 일하기가 너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김나나는 자신이 없었지만, 그녀는 십자가에 목을 매는 예수쟁이는 아니었지만, 월급봉투에 목을 매는 월급쟁이였다. 팀장의 말은 그녀에게 산상수훈과 다름없었다. 김나나는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김나나는 서류를 내밀면서 조곤조곤 말했다.
"할머니, 지난번에 아들 감옥 갔다고 그러셨죠."
"내가 언제 그랬어."
"여기 서류 보세요. 할머니가 도장 찍은 서류에, 자식이 감옥 갔다고 되있잖아요."
"내가 언제 안 그랬대? 아들 감옥 갔어."
"근데 이 컴퓨터 서류 보세요. 감옥에서 재작년에 출옥 했다고 나오잖아요."
"출옥은 뭔 출옥. 자식 같지도 않은 자식. 있으나마나한 놈. 호로새키."
"할머니 통장으로 매달 이백만원씩 돈 들어오고 있잖아요. 보낸 사람 고석호. 고석호가 할머니 아들 맞죠? "
"난 자식 없어. 아들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고 나라가 내 자식이여."
"고석호가 아들 맞잖아요."
"난 아들 같은 거 없다니까. 고석호가 누구여. 고석호는 고사하고 고상팔이 고개똥이도 없다. 죄다 죽일놈 망할놈 뿐이라니까."
김나나는 할 말을 잃었다. 싸움이 안된다는 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까. 도대체 저 노파는 지금 아들이 있다고 말하는건가, 없다고 말하는건가. 정부 지원금 몇 푼 타려고 노망 든 척 헛소리하는 마귀할멈 같은 노파. 대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김나나는 밀리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 사이 노파가 소리를 질렀다.
"야이 미친 년아. 니가 뭔데 나보고 아들이 있네 없네 하냐, 응? 니 돈이냐? 니 돈을 나한테 주는거냐구? 응? 이 썩을 년아. 내가 거지냐? 응?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년아. 내가 너만한 손녀가 있어."
욕설이 오래된 쌀통에서 화랑곡나방 튀어나오듯 화려하게 욕설과 침이 튀었다. 김나나는 순간 아찔하게 현기증이 일었다.
민원인은 무조건 왕이다. 민원인에게는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 고객은 왕이라고 하지만, 고객보다 위에 있는 것이 민원인이다. 무조건 옳다고, 무조건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무조건 감사하다고 해야 한다. 결론을 어떻게 내리든간에, 최소한 입으로는 설설 기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일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도 인간이라 때때로 이성을 잃기도 한다. 김나나의 경우는 오늘이 그 날이었다.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던 중에 욕설을 듣자 순간적으로 관자놀이에 열이 뻗쳐올랐다. 김나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할머니,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
"이 미친 년이 어따 대고 눈을 부라려, 이 년아. 확 눈깔을 쑤셔버릴라. "
"할머니, 왜 자꾸 거짓말 하세요? 아들한테 꼬박꼬박 이백만원씩 받으시잖아요. 그러면서 기초생활수급비 타가시면, 진짜 받을 사람이 못 받고..."
"이 개 같은 년아. 사타구니를 찢어다 베란다에 널어놓을 년아, 내가 거지라서 푼 돈 타먹을려고 거짓말한다는거지? "
두 사람의 언성이 함께 높아지자, 동사무소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온 사람, 부동산 등기를 하러 온 사람, ... 동사무소의 사회복지팀장인 최 팀장이 당황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노파는 거의 이상을 잃어버린 듯 울부짖었다.
"이 미친 년, 내가 그냥 목을 매달아야지, 손녀딸보다 어린 것한테 도둑년 취급 받네. 다 늙어서 도둑년 취급 받네. 아이고 동네 사람들, 내 팔자 좀 보소."
노파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신발로 바닥을 쳐가면서 꺼이꺼이 울었다. 혼자 우는데 열명이 한꺼번에 우는 것보다 더 시끄러웠다. 김나나가 뭐라곤가 함께 악을 쓰기는 했지만, 이런 것을 두고 조약돌로 바위치기라고 하는가? 노파의 요란한 울부짖음 때문에 김나나의 목소리는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최 팀장이 뛰어나가 할멈을 다독이며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할멈은 비실비실 일어나는가 싶더니 몸부림을 치면서 최팀장의 손을 때어냈다. 이어서 말했다.
"내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야.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증거 대보까? 증거 대보라고? 볼텨? "
갑자기 노파가 저고리를 훌렁 벗었다. 늙은 돼지의 불알같이 시커멓게 축 늘어진 할멈의 젖이 덜렁 튀어나왔다. 곁에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노파는 몸빼 바지와 팬티를 한 번에 벗었다. 노파는 속옷을 카운터 건너 김나나를 향해 집어던졌다. 때묻은 팬티가 선풍기 바람 때문에 허공에 휘날렸다.
"자! 두 눈깔을 똑똑히 뜨고서 쳐다봐. 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여."
동사무소 한 가운데에서 수십 명이 보는 가운데, 늙은 여자가 홀랑 옷을 벗었다.
고목나무에 핀 독버섯처럼 시커먼 노파의 사타구니가 드러났다.
시각적 충격이 먼저 사람들을 휘어잡았다. 이어서 정서적 충격이 밀려왔다. 가장 느린, 그러나 가장 지독한 것은 후각적 충격이었다. 할멈의 몸에서 담배냄새, 노인네 냄새, 똥냄새와 오줌 지린내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뿜어져 나왔다. 등촌 18동에서 이십년간 복지공무원으로 근무했다는 최팀장 조차도 어쩔 줄을 몰랐다. 게다가 지독한 냄새 때문에 코를 싸쥐지 않을 수 없었다.
민원인 중 여자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남자 하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노파가 옷 벗는 순간을 보지 못했던 사회복지공무원인 박진희가 깜짝 놀랐다. 박진희는 입고 있던 벽돌색 잠바를 벗어들고 허둥지둥 달려가서 노파를 감싸면서 노파를 주저앉혔다. 미치광이처럼 소리 지르던 노파도 거구의 박진희가 싸안고 주저앉히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김나나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았다.
1회 보기 : http://coldstar.egloos.com/4022342
# by | 2008/12/28 14:32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