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23일
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5)
#5.
컨설턴트는 꿈이고 동경의 대상이다. 오늘 오후부터 먼 발치에서 그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아마도 회식 자리에서도 먼 발치에서 그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복지부 정책국장이라면 구청장과 동급이다. 정책국장을 수행할 가방모찌 사무관도 동장과 같은 5급일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9급 시험에 합격한 사회복지공무원 따위가 눈에 보일 리 없다. 그것은 아마도 컨설턴트도 마찬가지리라. 외국 학위를 가진, 억대연봉을 받는, 그런 컨설턴트의 눈에 9급 공무원이 보일 리 없다.
저녁 일곱시의 삼겹살집. 양쪽으로 길게 늘어앉아, 국장과 구청장이 번갈아가며 건배 제의를 할 것이다. 컨설턴트는 아마도 국장 곁에 앉아서, 구정 현안과 사회복지의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김나나는 재투성이 부엌에서 왕자님을 바라보는 신데렐라가 될 것이다. 아니, 컨설턴트가 그런 삼겹살 회식 자리 따위에 함께 앉을지도 미지수다. 아무튼 그는 김나나가 볼 수 없는 저 멀고 높은 곳에 있을 것이다.
"나나야, 히히히."
나사 풀린 웃음소리가 들려 김나나는 정신을 차렸다. 신데렐라와 컨설턴트라니. 백일몽. 아주 어이없는 십대소녀같은 백일몽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지 않았어도 누구의 웃음소리인지는 안다. 강만수다. 일미터 팔십 몇센티에 백킬로그램이 넘는 거구. 스물한살. 그리고 정신지체 4급. 얼굴에서부터 저능이 보인다. 뒤룩뒤룩한 살 사이에 찢어진 눈이 파묻혀있다. 눈동자는 상한 달걀의 노른자처럼 풀어져있다. 입가에는 당장이라도 침이 주루룩 흐를 듯한 탁한 미소가 걸려있다.
"나나야, 나 왔어. 헤헤헤헤"
어느 모텔집의 외동아들이랬던가. 부모가 잠시만 한눈을 팔면 찾아오는 곳이 바로 동사무소다. 십년 전 동사무소 직원 하나가 어린 강만수를 귀여워해줬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사무소로 찾아오는 습관이 들은 모양이다. 이제 강만수는 체중이 세 배가 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지금도 그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나나야, 우리 결혼하자, 헤헤헤"
강만수가 어느 날부터 김나나에게 호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일곱살의 지능과 스물한살의 육체를 가진 거구의 강만수가 김나나에게 품은 것은 단순한 호감일까, 다 자란 수컷의 성욕일까, 아니면 나름대로 그에게는 진실하고 절실한 사랑일까.
호감이든 사랑이든 김나나로서는 반갑지 않다. 성욕이라고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진다. 내가 조금 예쁘기는 해. 이 동사무소의 다른 여직원들 중에서 분명 내가 튀기는 해. 공주병이라서가 아니라, 제삼자의 객관적인 평가라고 해도 말이지. 하지만 그래봐야 이게 뭐람. 컨설턴트는 커녕 정신지체자의 연인이라니.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건네는 프로포즈라니.
현실은 이토록 남루하다. 백일몽을 꾸지 않을 수 없다. 김나나는 분노와 자탄과 모멸을 모두 마음속으로 감췄다. 그리고 쓰게 웃으며 강만수를 달랬다.
"만수 왔어? 사탕 주까? "
"응. 착한 만수 사탕주세요."
김나나가 서랍에서 알사탕 몇 개를 꺼내어 강만수에게 주었다. 강만수는 자연스럽게 사탕을 껍질 조차 뜯지 않고 낼름 입속에 집어넣었다. 김나나가 깜짝 놀랐다.
"얘! 까서 먹어야지! "
강만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비닐 먹으면 큰일나. 도로 뱉어."
"시러! "
강만수는 혀짧은 소리를 내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김나나는 허둥지둥 카운터 바깥으로 나가 강만수의 볼따귀를 꽉 쥐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약한 자의 대표주자다. 피조개 껍질도 열지 못하는 여자의 힘으로 다 큰 사내의 입을 벌리게 할 수는 없다.
"빨리 뱉어! "
"히히히!! 시러! "
강만수는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입을 딱 다물었다. 김나나가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김나나는 약이 오르고 화도 났다. 강만수가 사탕 껍질을 먹는 것은 걱정되지 않았다. 삼박사일 동안 복통으로 데굴데굴 구른다고 해도 김나나가 알 바가 아니다. 다만 그 사탕을 먹인 사람이 누구인지 책임추궁을 시작하는 것이 무서웠다.
"뱉어! "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김나나는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강만수의 팔을 힘껏 때렸다. 그 순간이었다. 한 대를 얻어맞은 강만수는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김나나를 와락 껴안았다.
"얘가 왜 이래! 꺄악! 꺄악! 놔!놓으라고! "
강만수의 거구에 김나나가 파묻혀버렸다. 김나나는 버둥거렸지만 강만수의 거구를 이기지 못했다. 강만수와 김나나는 비틀비틀 몇 발짝 걸어가다가 앞으로 쿵 넘어지고 말았다. 놀란 동사무소 직원들이 와르르 달려나와 강만수를 뜯어놓았다. 원래 모자란 사람들이 힘이 센 법이라는데, 강만수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여러 명의 남자가 달려들었지만 강만수를 제대로 때어놓지 못했다. 강만수가 떨어져나간 것은 거의 이삼분의 실갱이를 한 뒤였다.
김나나는 눈물콧물을 훌쩍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간신히 뜯어놓은 강만수는, '나나야 결혼하자' 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담... 훌렁 벗는 노파만 해도 충격인데, 이번에는 여태껏 사탕만 주면 얌전하던 강만수까지 저러니...
> 본 소설의 등장인물 이름은 실존인물과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
# by | 2009/01/23 23:44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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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중에 ↑일이 생기면 사식으로 꼭 관자료리 넣어드릴께요....
데굴데굴~~~
찬별님 쵝옵니다. ㅋㅋㅋ
그나저나 이렇게 칙릿소설에 눈떠갈까봐 두렵군요 ㅠㅜ
찬별님.. 아아.. 저 원래도 살짝 팬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도장 꽝!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