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2월 01일
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7)
김나나는 이빨을 꼭 깨물고 하품을 삼켰다. 재미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 하찮은 9급 공무원 주제에 대놓고 하품을 하기도 불편한 자리다. 김나나는 중앙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중앙에서 왔다는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이다. 오십대 후반처럼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사십대 후반 정도일 것 같은 국장. 정장도 아니고 캐쥬얼도 아닌 헐렁한 옷을 입은 아줌마는 복지부 과장. 반짝이 넥타이에 반짝이 양복 차림은 복지부 사무관. 중앙에서 국장이 오다보니, 의전을 위해 강서구청장까지 자리에 왔다. 하지만 제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김나나의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뒷편에 앉아있는 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컨설턴트다. 박진희 언니는 컨설턴트에게서는 후광이 비친다고 했다. 그들은 스타일이 눈에 띄게 달랐다. 두 사람 모두 보수적이면서도 세련된 검정색 수트에 흰색 와이셔츠, 그리고 화려하지만 품위있는 넥타이 차림이다. 특히 젊은 쪽은 여러 모로 마음에 든다. 키도 커 보이고, 얼굴도 멀끔하다. 나이도 대략 비슷해보인다.
서로 아무 말도 없는 가운데, 멀뚱멀뚱하고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구청 사회복지과장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면서 등촌18동 복지팀장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서 이 어색한 침묵을 깨뜨려달라는 신호였다. 복지팀장이 무겁게 기침을 하더니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분들이 말씀이 없으시니, 제가 대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등촌18동 복지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복지팀장에게 몰려들었다.
"금번 중복수급 금지 때문에 저희 현장 공무원들은 굉장히 힘이 듭니다. 물론 저희는 임대아파트가 밀집되어있기 때문에 제도의 헛점을 이용해서 중복수급을 받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부정수급을 금지시키는 과정에서, 진짜로 받아야 되는 분들이 금지된 분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저희한테 오셔서 알콜 민원이나 폭력 민원을 행사하는 과정이 정말 힘듭니다."
복지팀장은 더듬지 않고 조리있게 말을 잘 했다. 김나나는 컨설턴트의 얼굴만 쳐다볼 뿐 세미나는 거의 듣지 않았지만, 팀장의 말은 제법 또렷하게 들었다. 그리고 동의했다. 당장 오늘만해도 그 홀라당 벗어던지던 할망구 때문에 여간 힘들었느냔 말이다.
"네. 현장 공무원들의 고충을 잘 알겠습니다. 사실 중복수급 문제는 벌써 여러 해 전부터 대두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국 같은 경우에는 복지 대상자 중에서 3% 정도는 부정수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통계 조차 잡히지 않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번에 어려운 첫 발걸음을 딛은 것이니, 현장의 여러분 들은 고생이 좀 되시더라도 부디..."
김나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도로 고개를 숙였다. 하나마나 한 소리, 들으나마나 한 소리. 서로 떠들어봤자 예의바르게 공치사만 할꺼면서 이런 자리는 왜 만들었담. 이것저것 다 귀찮으니 빨리 세미나 끝내고 회식이나 하러 가면 좋겠다. 회식도 딱히 즐거울 건 없지만, 그래도 오늘은 컨설턴트들이 있잖아.
그 때였다. 바깥에서 사나운 고함소리가 들렸다.
"동장님!동장님! 어디 계십니까! 제 말씀 좀 들어주십쇼! "
복도가 쩌렁쩌렁 울릴만큼 큰 소리였다. 동사무소 공무원들의 얼굴이 일순간에 찌푸려졌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금번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 가운데 한 명이겠지. 억울하게 제외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동사무소에 행패를 부리러 온 사람이라면 알 것 다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거기다가 십중 팔구는 술을 마셨을 것이다.
동장, 구청 주민과장, 동사무소 복지팀장... 여러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바깥에 누가 적당히 저 자를 돌려보내야 할텐데. 구청장과 복지부 국장까지 있는 자리에서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어떻게 하나.
"놔라, 동장님 뵙고서 내가 이 억울한 사정을... 놔라! 동장님한테 하소연 해야겠다! "
몇 번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사내 하나가 뛰어들어왔다. 눈이 조금 붉으스레하고 술에 살짝 취한 듯 하지만 나름대로 입성은 깨끗한 편이었다. 동사무소 남자 직원 두어 사람이 사내를 붙들려고 했고, 사내는 올가미에 걸린 야생마처럼 날뛰더니 결국 세미나 장소의 한 가운데로 달려들어왔다. 그러더니 얼굴을 알아보고서 동장에게로 달려왔다.
"동장님! 동장님! 저 동사무소 씨발년들이 저한테 이번 달부터 돈을 안 준다고 그럽니다. 씨발년들. 집에 우리 어머니가 앓아누워계시고, 우리 애새끼들이 밥을 굶고 있는데, 씨발년들이 돈을 안 준답니다. 돈을 안 준다구요."
사내가 떠들어대자, 눈치 없는 주민과장이 말했다.
"다다당신 조조용히 하소. 여기에 지금 누누누가 계신 줄 압니까."
"누가 있든지 말든지, 씨발년들이 돈을 안 준다하는데."
"구구구청장님하고 복지부 국장님이 계시니까 그그그만 가바라."
사내의 눈이 갑자기 사납게 번쩍였다.
"복지부라고. 그 씨발놈들이 이번에 내 돈 주지 말라고 그랬지. 이 씨발놈."
국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내는 먹이를 찾는 짐승처럼 사방을 둘러보다가, 가장 상석에 앉은 국장에게 눈이 멈췄다. 그는 신발을 벗어 국장에게 집어던졌다. 신발 뒷축이 국장의 이마 언저리를 제대로 찍어, 피가 튀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사내는 후닥닥 달려가 국장의 멱살을 쥐려고 했다. 젊은 사무관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사내는 사무관의 팔뚝을 깨물려고 덤벼들었다. 벌린 입에서 술 냄새가 푹 피어나왔다.
세미나장이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사내를 끌고 나갔다. 상담실에서 벨을 눌러 경찰도 불렀다. 복지 공무원은 가끔 이런 식으로 경찰을 부르기도 한다. 그렇기는 한데 하필 과장 국장이 다 계신 날에 이러느냔 말이다.
김나나는 참지 못하고 쩍 입을 벌려 하품을 했다. 국장 꼬시다. 하나마나 한 소리 떠들어대더니, 오늘 맛 한번 제대로 봤지?
# by | 2009/02/01 22:36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근데 요새 부부만담 왜 안올라오나요.
부부만담...은 아니고 신혼만담... 은
이제 신혼이 아니라서-_-; 좀 시들하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