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8)

 

#8 


이종민은 지금까지 전국 칠팔곳의 주민생활과를 돌아다니고 사회복지사들과 면담을 수행했다. 늘 전혀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다보니,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는 즐거움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기자들과도 비슷한데, 다만 기자는 얕고 넓게 보는 편이라면, 자신은 좁고 깊게 보는 편이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한심한 반면, 그 일을 하기 위해 던져지는 새로운 필드는 관심이 많이 갔다.


서울 이외에도 수원, 부천 같은 중소도시들과, 논산, 공주 같은 지방 중소도시, 그리고 부여, 평창, 임실 같은 시골마을까지 그는 매번 다른 곳을 돌아다녔다. 그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사회복지사들에게는 후광이 비친다는 것이었다.


이종민은 대학교 사회복지학과란 막연히 칠할의 수능성적 저조자와 삼할의 봉사에 뜻을 가진 소신지원자로 구성된다고 생각해왔다.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그것과 조금 달랐다. 그들은 막연한 상상속의 나이팅게일과 너무 달랐다. 박봉을 받고, 험한 일을 했다. 월급 백만원을 받으며 알콜 중독자들과 싸움을 벌이고, 노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때로는 정신질환자들의 칼부림과도 직면해야 했다.


그런 일을 하면서 한 달에 백만원씩을 받는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눈매에 선한 기운이 깃들어있고, 입에는 (살짝 피곤해보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웃고있거나 찡그리고 있다는 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사람들에게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군인이나 목사 등은 평상복을 입고 있더라도 알아볼 수가 있는데, 사회복지사도 그런 직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예외가 보였다. 바로 여기, 등촌18동의 어느 한 사회복지사였다. 여느 사람들은 조금 더 피곤해보이지만 후광은 다를 바가 없었다. 오직 한 사람. 군계일학 급으로 미모가 빼어난 여자였는데, 그 여자는 어쩐지 자리를 잘 못 찾아온 것 같았다. 돈을 꽤나 들여서 한 듯한 헤어스타일과 복장. 선명하지만 촌스러워보이지 않는 화장. 어디선지 세련됨이 풍풍 풍겨져 나왔고, 눈꼬리에는... 글쎄. 묘한 섹시함이 매달려 있었다. 그건 고결한 아름다움과는 조금 달랐다. 그냥 섹시함이었다.


- 저 여자는 누구지?


이종민은 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종종 김나나를 훔쳐보았다. 김나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가끔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김나나는 깜짝깜짝 놀라는 듯한 모습으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니까, 동장을 찾고 덤벼드는 사내가 나타나기 직전, 이종민은 대략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국장이 봉변을 당하는 바람에 세미나 분위기는 아주 애매해졌다. 국장은 애써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하지만 신발 뒷굽에 얻어맞은 이마가 퍼렇게 부어오르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서, 그의 얼굴은 마치 썩은 태극기 같았다.


분위기를 더욱 애매하게 만든 것은 눈치없는 주민과장이었다. 그는 국장이 앉자마자 자기가 당했던 일을 떠들었다.


"구구국국장님께서 오늘 조금 봉변을 당하셨지만 사실은 저저저저희는 늘 겨겪는 일입니다. 이거 보이시져? 이 흉터가 왜 생겼는지 아십니까? 지난번에 멀쩡하게 생긴 놈이 목발 짚고 들어오더니 장애인 판정이 잘못 됐다면서 목발을 휘둘러서 그거를 팔로 막다가 찢어졌잖습니까."


주민과장의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동장이었다.


"아까 저 분도 있었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불만이 있을 때는 모두들 동장을 찾습니다. 그런데 저희 등촌 18동 동장실에는 응접 탁자가 너비가 1.5미터입니다. 왜 그렇냐하면, 예전에 정신질환자가 한 명 찾아와서 칼을 휘두르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볼에 칼이 스치고 지나갔는데, 죽을 뻔 한 거지요. 그 이후로는 탁자를 교체했어요. 칼 휘둘러도 맞지 말라고."


이번에는 동장의 바톤을 받아서 등촌18동 주민팀장이 말했다.


"여기 있는 우리 직원들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회복지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칠팔할이 젊은 여자들입니다. 근데 우리 젊은 아가씨들이 현장에서 겪는 일은 힘든 게 너무 많습니다. 특히 행정에서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라고 하지만, 알콜 중독인 기초수급자 댁에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할 뻔 한 적도 있습니다. 정말 저희는 상황이 너무 열악합니다."


그러자 그 때 혼자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할 뻔 했던 대상자인 박진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었다.


"그 아저씨, 솔직히 딴 건 다 참고 넘어가겠는데, 냄새가 났어요. 우욱"


박진희는 웃지도 않고, 토하는 시늉을 했다.


"아 글쎄 그 미친놈이 제가 들어가니까 갑자기 빤쓰를 훌렁 벗고 덤비는데 때가 꼬질꼬질..."


박진희가 열변을 토하려고 했다. 순간 김나나는 구청장의 잔뜩 굳은 얼굴을 보았다. 박진희는 구청장이 노려보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김나나가 아연실색을 하면서 박진희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박진희가 털썩 주저앉았다. 국장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고, 세미나 장 분위기는 회복할 수 없을만큼 헝크러져 버렸다.


구청장이 헛기침을 한 후 말했다.


"갑작스런 일이 생기는 바람에 국장님 대접이 말씀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세미나를 더 진행하는 것보다는, 식사라도 하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by 찬별 | 2009/02/09 23:23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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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校獸님ㄳ at 2009/02/10 16:00
어서 빨리 많이 연재 하셔서 책으로 보고 싶은 소망이 있네요 ㅜㅜ
Commented by 찬별 at 2009/02/11 09:35
책으로 나올 일은 아마 (웬만해서는) 없을 듯 ^^;
Commented at 2009/02/11 13:4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9/02/11 16:18
감사합니다 ^^;

눈초리 같은 경우는 알고는 있는데 습관 + 어감상 선호 때문에 그냥 눈꼬리라고 쓰고 있어요. 헝크러지다는 늘 어느게 맞는지 헷갈리고 있는데다, 마침 어제 번역 중 <엉크러지다> 가 있어서 이게 맞는건가 고민하던 중이었다능
Commented by 낭만곰뎅 at 2009/03/13 11:35
예비사회복지사로서^^
읽으면서 배우고 잘보다 갑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09/03/13 12:09
너무 진지하게 배우시면 지는겁니다 ^^;
Commented by 낭만곰뎅 at 2009/03/13 13:01
에헷^ㅁ^;
그래도 읽을때마다 도움이 되는부분도 있는걸로 >_<
꺄르 ~
그런데 블로그 이뻐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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