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10

 

10. 


그러니까 오늘 낮의 이상한 세미나 시간 부터, 두 사람은 모두 이런 순간을 꿈꾸었다. 이종민은 9급 공무원 답지 않은 눈에 띄게 수려하고 잘 가꾸어진 외모를 한 김나나를 한참 쳐다보았고, 김나나는 깍아놓은 밤처럼 단정한 얼굴에 고급 양복을 입고 있는 젊은 이종민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따위 재미없는 세미나 대신에, 저 남자(여자)와 둘이 앉아서 차나 한 잔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백일몽이 조금 이상한 순간에 이상한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이삼십명의 공무원들이 삼겹살이 지글지글 구워가며 소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삼십분 만에 네 병의 소주를 들이키고, 술이 알딸딸해진 두 사람만 남은 것이다.


애초에 럭셔리한 자리에서, 푸아그라나 (원산지에서 만이천원이지만) 십오만원짜리 와인을 홀짝이면서 만났다면 이들의 대화는 조금 다른 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폼만은 약간의 럭셔리와 관련이 있는 두 남녀니까 말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귀족이라도 삼겹살집에서 삼십분만에 취할 만큼의 소주를 마신 다음에는 누구든 지극한 서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런데 성함이 혹시 김나나님이시죠? "


"예, 맞아요."


"성함을 들으니까 제가 갑자기 재밌는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이야기 해드릴까요? "


"뭔데요? "


“솔직히 식탁에서 하기에는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인데.”


“괜찮아요, 해주세요.”


"그럼 할게요. 어떤 여자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변기에 똥이 수북히 쌓여있는거에요. “


“아우 디러.”


김나나가 짐짓 손을 내저었다. 김나나는 유치한 이야기일 것이 뻔해서 진심으로 한 행동이었으나, 이종민은 그것을 공주 흉내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키득거리며 뒷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똥을 싸려다가 말고 그냥 나와버렸대요. 그런데 마침 그 다음에 다른 남자가 바로 뒤를 따라 들어간거에요. 남자는 똥이 수북한 걸 보고 얼른 나와서, 막 나가려던 여자를 노려봤대요. 그랬더니 여자가 화난 눈으로 같이 노려봤대요."


"?"


"남자가 똥 쌌으면 물 내리고 나가라고 화를 냈어요. 그랬더니 여자가 말하드래요. 김나나 보라고."


김나나가 멀뚱멀뚱하게 쳐다봤다. 이종민은 김나나의 대폭소를 기다리다가, 문득 자신이 술에 취했음을 깨달았다. 시펄, 이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와 비길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이따위를 농담이라고 하다니. 그것도 아가씨 이름을 가지고 이따위 농담을 하다니. 난 병신이야. 난 죽어야 해. 그냥 접시물에 코박고 죽어야 해. 이 병신, 병신, 병신;;;


사실 김나나는 이종민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좀 유치한 이야기 같아서 신경써서 듣지도 않았고, 마침 주변 자리에서 요란하게 건배를 외치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만약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컨설턴트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졌을 것이고, 어쩌면 술취한 김에 따귀라도 한 대 올려붙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나나는 이종민의 이야기가 대충 끝이 난 눈치이길래 예의상 한 번 웃는 척을 해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궁금한 말을 했다.


"어떻게 컨설턴트가 되셨어요? "


이종민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이런 질문은 익숙하다. 다만 이 여자가 지금 이런 질문을 하는 저의는 뭘까. 너 같은 병신이 어떻게 컨설턴트가 됐냐는 뜻일까를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가장 무난한 대답을 했다.


"장래의 커리어를 위해서 오래 고민하고 준비한 결과입니다."


이종민은 가식어린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김나나가 예의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돈도 많이 버시죠? "


이종민은 그제야 김나나의 눈빛에 어린 선망을 읽었다. 또래의 직장인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컨설턴트라는 명함에 대한 선망, 컨설팅이라는 직종에 대한 부러움. 사실 같은 해에 증권사나 은행에 입사한 친구보다 훨씬 낮은 연봉을 받는 입장에서 저런 선망의 눈빛이 기분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상으로 접근하는 상대방과 적당히 친근감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환상에 적당히 부응해줄 필요가 있었다.

"

"뭐 그렇게 많이는 못 벌구요, 그냥 다른 컨설턴트만큼 법니다"


이종민은 적당히 알아들으라고 한 말이었고, 김나나는 그 말을 적당히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컨설턴트, 엊그제 식당에서 신부의 친구들에게 육십만원 어치의 프랑스식 풀코스를 대접한 뒤 백마를 타고 사라진 그 컨설턴트만큼 말이다. (사실은 그 삼순이의 남편감도 월급 이백만원의 직장인 주제에 호기를 부린 것일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말이다.)


김나나는 한숨을 크게 쉬고 말했다.


"컨설턴트시면 이렇게 소주에 삼겹살 먹는 거는 별로 안 좋으실거 같아요."


이종민은 적당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 때 김나나가 말했다.


"괜찮으시면 저 칵테일 한 잔 사주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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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별 | 2009/03/13 13:34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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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록불 at 2009/03/13 13:47
아니... 이런... -_-;;
Commented by 찬별 at 2009/03/13 17:39
-_-
Commented by 메르린 at 2009/03/14 03:11
아.. 저 김나나 개그는 혹시 자작이신가요? 아..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9/03/14 21:22
설마 자작일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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