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13일
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11
11.
예전에 노르웨이의 오뎅바의 현자 프랑코 산딸바는 세상의 여자를 크게 싼 년과 비싼 년의 두 가지로 나누었던 바 있다. 그의 제자인 쿄르메스는 이러한 이론을 더욱 계승 발전하여, 예쁘고 잘 주는 년, 예쁜데 안 주는 년, 못 생기고 잘 주는 년, 못 생기고 안 주는 년의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상적인 인간형은 예쁘고 잘 주는 년으로서, 여성 공교육의 현장마다 급훈으로서 ‘예쁘고 잘 주는 년이 되자’를 걸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바 있다. 진짜로 그랬던 일 있다;;; 암튼 뭐;;;;
여하튼, 이러한 분류 하에서 김나나는 어디에 속할까? 김나나가 먼저 이종민에게 칵테일을 사달라고 했대서, 혹시라도 김나나를 싼 년으로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물론 김나나가 정숙하고 다소곳한 이조시대 처녀스럽지는 않다. 클럽에서 춤을 추다가 우연히 엮인 남자와 원나잇 스탠드를 해본 적도 있고, 소개팅한 뒤 세 번 만난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 적도 있다. 평균적인 여자들보다 조금 더 성관념이 관대한 편이다. 그렇다고해서 직장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서툰 유혹의 추파를 던질 만큼은 아니다.
김나나가 말한 칵테일 한 잔 사주세요는, 오늘밤 저를 가져도 좋아요, 라는 뜻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저를 그 강 건너 귀족의 세계에 초대해주세요, 정도의 뜻이 되겠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게까지 복잡한 동물이 아니다. 김나나가 무슨 뜻으로 말을 했든간에, 이종민의 귀에는 ‘2차는 칵테일 바에서 하고, 3차는 그 아랫층에 있는 모텔에서 좀 쉬었다 가요’ 정도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
삼겹살집을 먼저 빠져나간 것은 이종민이었다. 그는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며 자리를 떴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은 누구도 이종민이 나가는 것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가자, 식당 문 앞에 앉아서 찬바람을 쐬고 있던 박진희가 살짝 나사풀린 눈으로 이종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가세요? "
"아 네, 저 일이 좀 있어서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네- 네- 안녕히 가세요, 잘생긴 컨설턴트 총각."
이종민은 등 뒤에 꽂히는 여자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바쁘게 걸음을 재촉했다.
김나나는 이종민이 완전히 빠져나간 뒤,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 테이블의 재수없는 아저씨 공무원 하나가 옮겨앉으려던 찰나였다. 그 사람을 피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피하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술을 따라달라는 둥, 미녀 아가씨와 술잔을 맞대니 행복하다는 둥, 술만 마시면 딱 기분 나쁠 소리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용케 성추행 관련 법에 해당되지 않을 수준으로만 말한다.)
김나나는 신발을 신고 슬그머니 문 바깥으로 나갔다. 어찌된 영문인지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눈이 모두 김나나에게 몰렸다. 김나나는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당당하게 걸었다. 그녀는 신발을 신고, 마치 화장실이라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나왔다.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눈길이 뒤를 따라왔다.
급히 바깥을 걸어가는데, 문 앞에 낯익은 사람이 앉아있다. 술에 취해서인지 순간적으로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못 알아봤다. 다름아닌 박진희인데 말이다.
"나나 넌 어디가? 컨설턴트 총각 따라가? "
김나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에이 언니, 컨설턴트는 무슨. 나 갑자기 배가 아파서..."
김나나는 얼렁뚱땅 박진희를 따돌리고서 이종민이 기다리는 곳을 향했다. 박진희는 잽싸게 꼬리를 감추는 김나나의 뒷꼭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쯧쯧쯧, 이 년아, 똥꼬가 치마 먹었어.”
김나나는 황급히 뒤를 만졌다. 하늘하늘한 레이스 치마의 끄트머리가 정확히 똥꼬에 박혀 있고, 덕택에 치마 뒷끝이 말려올라가서 거의 엉덩이가 보일 지경이었다.
이랬으니 사람들이 다 쳐다봤구나. 아이 스타일구겨. 김나나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이 엉망이다. 김나나는 얼른 화장을 정돈하고 밖으로 걸어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하이힐 신고 올 걸.
*
이종민과 김나나는 삼겹살집 바깥 약 삼백미터 지점에서 성공적으로 조우했다. 그런 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약 삼십 미터를 걷고, 이어서 김나나가 이종민에게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었다.
그들은 느린 걸음으로 삼사분 정도를 걸었다. 곧 유흥가가 나왔다. 술집과 보쌈집, 닭갈비, 호프, 이런 것들이 죽 늘어선 골목이다. 여기에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나 호텔 칵테일 라운지 같은 것은 없었다. 기껏해야 넥타이 맨 직장인들이 들어갈법한 좀 깨끗해보이는 바가 몇 개 있을 뿐이었다.
이종민은 잠시 망설였다. 사실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이 뭔지는 알고 있다. 일단 모범택시를 타고, 근처의 적절한 삼성이나 사성급 호텔로 간다. 그래서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서, 한 잔에 만오천원 정도 하는 칵테일을 두 잔 정도씩 마시고, 술을 마셔서 피곤하니 아랫층의 방으로 체크인해서 함께 쉬었다 간다-
이종민은 머릿속에서 바쁘게 계산기를 돌렸다. 모범택시 이만원, 칵테일 팔구만원, 호텔 숙박 십삼만원, 도합 이십여만원이 든다. 여기에다 칵테일 대신에 와인에 치즈라도 시키게 되면 삼십만원을 넘길 수도 있다.
김나나가 대충 일억으로 알고 있는 이종민의 실제 월급은 세후 이백이십만원. 여기서 교통비, 점심값, 통신비 등 기본 생활비 월 오십만원. 부모님 용돈 삼십만원. 적금 칠십만원. 지난번 펀드 건드렸다가 깨진 돈. 이종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여자 빤쓰 한 번 벗겨보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오늘 하룻밤에 삼십만원을 쓸 수는 없다.
이종민은 김나나를 이끌고 수입 맥주를 파는 까페로 들어섰다. 김나나의 얼굴이 살짝 굳었으나, 이종민은 그 표정을 무시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맥주 한 병에 오륙천원, 칵테일은 한 잔에 육칠천원. 김나나의 허영을 충족시키기에는 어림도 없다.
이종민은 수입맥주 한 병을 들이키면서, 바에 들어오면서 머릿속으로 대충 정리한 핑계거리를 김나나에게 말했다.
“사실 나나씨 같은 분이 오시기 적절하지 않은 장소인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제가 복지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일한지가 반년 째. 솔직히 저도 조금씩 느끼게 되는 바가 있더군요.”
김나나는 이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나 하는 생각에, 더 떠들어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저는 다행히도 디슨트한 환경에서 태어났고, 경쟁력 있는 교육을 받아서, 지금 이렇게 컨설팅이라는 리스펙테이션이 있는 인더스트리에 성공적으로 안착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전혀 없는 대사였지만, 이종민은 최대한 된장냄새를 푹푹 풍기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 오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이곳 등촌18동 말고도 전국의 예닐곱 곳의 복지 사무소를 다녀봤습니다. 그리고서 늦게 깨달았어요. 세상에는 어렵고 힘든 사람이 많고, 저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내가 먹는 한 끼의 프렌치 풀코스면 저 한부모 가구의 한달 식비도 되겠구나 하구요. 내가 입은 이 휴고 보스 정장 한벌이면 독거노인 열 명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겠구나 하구요. 그때 이후로는 먹는 것, 입는 것에 조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똘레랑스라는 말 들어보셨는지요. ”
김나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쥬라고 하죠. 선택받은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똘레랑스를 발휘해야 합니다. 자신의 즐거움을 조금 희생한다면 다른 사람은 생존할 수 있게 된다면, 약간의 즐거움은 기꺼이 희생해야죠.”
김나나의 얼굴에 살짝 불만이 서렸다. 저런 이야기를 들을려고 칵테일을 사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종민도 그런 사실을 알기에, 둘러댈 말을 조금 더 준비해뒀다.
“물론 소주를 마셔야 할 때가 있고, 품격을 지켜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장소를 온 것을 죄송하게 생각해요. 이 자리가 솔직히 나나씨처럼 아름다운 분께 어울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솔직히 오늘 나나씨의 가슴에 좀 더 가까이 가고 싶고, 그래서 결례인 줄 알면서도 이런 장소로 왔습니다.”
이종민은 기나긴 이야기를 마쳤다. 그러면서 솔직히 자신도 놀랬다. 헌팅은 대학시절 이후 처음인데, 낯짝이 두꺼운 편이 아니라서 헌팅이 뛰어나지는 못했다. 그런데 삼년 정도 컨설팅이라는 업계에서 뻥을 치고 다니다보니까, 이렇게까지 말빨이 늘어난 것이다. 싸구려 술집으로 끌고 온 이유를 이렇게 실감나게 말하다니, 이만하면 난 천재야.
김나나는 감동의 쓰나미에 휩쓸린 것 같지는 않지만, 굳었던 얼굴은 어느 사이에 얼추 풀어져 있었다. 아무튼 말은 먹힌 것 같다. 아싸 성공이다.
*
# by | 2009/03/13 16:43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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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 짱이예요 -_-b
이종민 저 인간 뭔가요. 제가 김나나였으면 주먹으로 한 대 치고 나왔을 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