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칙릿소설 -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12

 


이종민은 두 병의 맥주를, 김나나는 두 잔의 칵테일을 더 마셨다.


처음에 이종민은 썰 풀기 시작한 길에 노블리스 오블리쥬에 대한 이야기를 이십 분 정도 떠들었다. 자신이 얼마나 유복하게 자라났으며 돈이 많은지, 그러나 사실 돈은 많아봐야 쓸모가 없으며, 가난한 사람에 대한 똘레랑스야말로 진정 배워야 하는 그 무엇, 북한 어린이들이 굶고 있는데 어떻게 삼만원짜리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냐는 류의 이야기였다.


김나나는 처음에는 들어주는 척이라도 했으나 잠시 후 지겨워졌다. 이종민은 화제 선정이 부적절한 것을 깨닫고, 그 때부터 휴고 보스 양복의 라인, 제냐나 기타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의 장점, 매장별 특징 같은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종민도 잘 몰랐지만, 첫 양복을 살 때 나름 신경을 썼던 탓에 그럭저럭 아는 척은 할 수 있었다. 역시나 김나나의 눈에서 총기가 돈다.


그들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의 대화는 훨씬 친밀해져 있었다. 이종민은 초반 삼십분으로 컨설턴트로서의 후까시를 충분히 주었다고 판단하고,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술을 더 마셨기 때문인지, 김나나도 별반 반항이 없었다.


이종민은 조금 과감하게 진도를 빼기로 했다. 김나나의 손에 소금을 얹고, 데낄라를 마신 뒤 손등에 얹은 소금을 핥아먹는 것이다. 멕시코의 3D 업종 종사자들이 주로 하는 행동이었지만, 그것도 물건너온 풍습이다. 만약 따귀라도 한 대 맞게 된다면, 정색을 하고서 “죄송합니다, 제가 아이비리그에서 유학 시절에 몸에 배였던 나쁜 버릇이 아직 남아있어서요.” 같은 말로 얼버무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김나나는 싫어하지 않았다. 손등을 통째로 쪽 빨아먹는 순간, 김나나는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김나나의 까르르 하는 웃음소리가 묘하게 이종민을 자극했다. 원래 한 번으로 끝내려고 했던 짓인데, 이종민은 몇 차례를 더 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또 핥으려면 술을 한 잔 더 먹어야겠지? 이종민은 데킬라를 더 시키고, 소금을 뿌리는 위치를 살짝 바꿨다. 손등에 이어서 두 번째는 팔등. 세번째는 입술. 네 번째는 목덜미.


술 네 잔에 그들의 진도가 벌써 목덜미까지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빤스 속에도 소금을 뿌리고 싶었지만... 그걸 참을 정도의 의식은 가까스로 남아있었다.


두 사람은 바깥으로 나왔다. 열시다. 착한 어린이들은 이미 한시간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은 못된 어린이,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남녀가 만나 목덜미까지 쪽쪽 빨았는데, 설마 집에 가자고 헤어지기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종민은 자연스럽게 김나나를 모텔 골목 쪽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김나나는 모텔 간판들을 보더니 고집센 당나귀처럼 걸음을 멈췄다.


모텔이라니. 설마 저길 가자고?


굶주리는 북녘 동포와 캄보디아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프렌치 레스토랑은 양보했다. 하지만 모텔은 못 간다. 그래도 오늘 내가 같이 술먹고 있는게 아이비리그 나왔다는 컨설턴트 아닌가. 솔직히 나이트클럽 가서 놀고 먹는 양아치만 잘 붙잡아도 가는 곳이 호텔이다. 해도해도 정도껏 해야지. 오만원짜리 모텔이라고? 싫다, 못 간다.


불행히도 이종민은 김나나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이십만원짜리 호텔 아니면 안 가겠다는 김나나의 생각을 제대로 읽었다면 뭔가 다른 대책을 내놨을 것이다. 하다못해, 귀족다운 우리는 품위있게 오늘 이 자리에서 헤어집시다, 그리고 다음번에 한 번 더 정중하게 모시겠습니다, 이따위 소리라도 하고서 얼른 내뺐을텐데.


이종민은 마지막에 데킬라를 네 잔이나 연달아 마셨기 때문에, 술에 많이 취했다. 게다가 목덜미까지 핥던 끝이라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여태껏 김나나의 얼굴을 보면서 아슬아슬하게 컨설턴트라며 뻥을 쳐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이 불가능했다. 나사가 제대로 풀린 상태였던 것이다.


“아 시발, 술 너무 많이 마셨는데, 잠깐 씻고 쉬다가 가자구요.”


“아우 싫어요. 호텔 가요.”


“호텔? ”


“지저분해서 이런 곳에 어떻게 들어가요.”


“걀걀걀걀걀. 우리 호텔 하룻밤으로 말하자면, 딸꾹, 한뎃잠을 자고 있는 독거노인의 한달 가스비라니까요. 우리는 복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서 적극적인 노블레스 오블...”


“아우-! 그만하고...”


김나나가 짜증을 냈다. 감언이설에 속아서 참을 수 있는게 있고 없는게 있는데, 무슨 말을 하든간에 저 모텔에는 안 들어갈 생각이었다. 다만 짜증을 큰 소리로 낸 것은 그녀 또한 취했기 때문이었다.


취한 두 남녀의 실갱이는 목소리가 차츰 높아졌다.


“아 대체 왜 이래. 갑시다-! 빨리 가서 시원하게 한 판... ”


“저 더러운 곳은 안 간다니까요.”


“뭐가 더러워, 하나도 안 더럽구만.”


그들의 바로 앞에 있는 쓰러져가는 여인숙 비슷한 건물에서 다리를 저는 중년 여자 하나가 고개를 쑥 내밀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집으로 오실라우? 우리 집 깨끗하고 좋아요. 내가 방삯도 깎아드릴께. 뜨건 물도 잘 나와.”


“아이구, 고맙습니다. 그럼 우리 거기로 갈까? ”


“싫어, 싫다니까 자꾸 왜 이래. 심지어 저 병신같은 아줌마는 방값도 아니고 방삯이래. 무슨 주막집이야? 내가 주막집 갈 여자야? ”


“아니 값도 깎아주신다는데...”


“나 소리 지를 거야.”


“소리-? 아니 대체 소리를 왜 질러, 좋으면서.”


이종민은 짜증이 났다. 그냥 짜증이 난 것이고 아니고, 점점 불같이 화가 치밀었다. 지금껏 마셨던 술에 불덩어리가 하나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야, 이 계집애야, 정말 너 이럴꺼야? ”


“니가 언제부터 나 알았다고 너야? 엉? ”


“이런 망할 뇬이! ”


“뭐, 이 씨팔넘아? ”


사회복지사와 컨설턴트로서 한때 된장남녀스러운 만남을 가지던 이 두 남녀의 싸움은 차츰 걷잡을 수 없이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문 안에서 요란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씨 ! 누가 우리 엄마보고 병신이랬어-! ”



- 다음회는 마지막회 -

by 찬별 | 2009/03/16 16:12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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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메르린 at 2009/03/16 19:23
안돼요! 마지막이라니! 추가 연재 안되나요? 그건 그렇고,

만약 따귀라도 한 대 맞게 된다면, 정색을 하고서 “죄송합니다, 제가 아이비리그에서 유학 시절에 몸에 배였던 나쁜 버릇이 아직 남아있어서요.” 같은 말로 얼버무

려 본 사람 있나요? 재밌을거 같은데..
Commented by 찬별 at 2009/03/16 20:13
추가 스토리 좀 이야기해주세요;;; -_-
김나나의 옛날 남자친구라도 나타나게 해서;;;; 좀 더 어떻게 해볼까- -


아이비리그 얼버무리기는... 그래본 분 있으면 댓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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