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16일
본격 칙릿소설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 마지막회
13.
시커먼 여인숙에서 뛰어나온 사내의 그림자에, 여인숙이 완전히 가려버렸다. 튀어나온 사내는 키가 이미터는 될 정도로 크고, 목소리도 우렁우렁했다. 굴속에서 곰이 튀어나온 것 같기도 하고, 알라딘의 램프에서 거인이 튀어나온 것 같기도 했다.
김나나와 이종민은 순간적으로 말을 잊었다.
“우리 엄마보고 병신이라고 한 놈 누구냐니까--안! ”
사내가 다시 고함을 질렀다. 김나나와 이종민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딴전을 피웠다. 아마도 만만해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시비를 걸었다면 싸움이 붙었을 지도 모르겠는데, 구덩이에서 기어나온 곰과는 시비를 붙는 것보다 술을 깨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 아무튼 다리를 저는 중년 여인은 사내의 앞을 가로막아섰다.
“너야-? 너지-이이! ”
그런데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기는 한데, 자세히 들어보면 전혀 위협적이지가 않았다. 말투가 혀 짧은 소리인데다가, 말 속에 살기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시골 마을에 풀어 기르는 보신탕용 황구들이 짖는 소리는 우렁차지만 자갈 하나 던지는 시늉만 해도 십리 바깥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말이다.
김나나는 목소리가 낯익은 것을 깨닫고 한참 상대를 쳐다봤다.
“만수 아니니? ”
덩치 큰 사내가 움찔하더니 김나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나 강만수다아- 어쩔래! ”
“너 어디 가버렸나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
“강만수는 사라지지 않는다니까아-!! ”
“나 김나나야.”
“어? 어? 김나나? 김나나? 어 김나나다! 김나나다! ”
강만수는 김나나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벌집을 찾아낸 곰돌이처럼 팔짝팔짝 뛰었다. 다리를 저는 그의 노모가 강만수의 몸부림을 막아내지 못하고 뒤로 비실비실 물러났다. 김나나가 재빠르게 강만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저 남자 좀 때려서 쫓아내줘. 나 자꾸 괴롭혀.”
이종민이 깜짝 놀랐다. 김나나, 저 여자, 저딴 식으로 나오다니.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였단 말이야? 도대체 어떤 사이지? 오빠 동생? 옛날 애인? 친구? 아무튼 이종민은 김나나의 한 마디에 술이 완전히 깨고, 이어서 기침을 하면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너! 왜 우리 나나 자꾸 괴롭혀어어! ”
이종민은 두 손을 들어올리고 손바닥을 쫙 펴서 흔들어보였다. 영화에서나 보던 그 포즈였다.
“미스커뮤니케이션입니다. 괴롭힌 것이 아니고, 나나양이 술에 조금 취해서, 제가 데려다 주려고 하던 중에 조금 실랑이가 있었지만...”
“왜! 나나! 괴롭히냐고오오오오오! ”
강만수가 이종민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양복 여기저기서 우지직 우지직 소리가 나면서 옷감이 뜯어지고, 이종민은 허공으로 사오 센티미터 들려올라갔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법적으로 해결하면...”
이종민이 뭔가를 말하려고 손을 내저어가며 더듬거렸다. 그러자 강만수가 이종민의 멱살을 바싹 끌어당기고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를 질렀다.
“나나 괴롭히지 말라구! ”
“넹! ”
강만수는 이종민을 확 뒤로 밀쳤다. 이종민이 바닥에 제대로 서지 못하고 비틀비틀 하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강만수는 환하게 웃으며 김나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나야! 나나야아아! 나 잘했지? ”
강만수가 김나나에게 와락 안기자, 김나나는 하마터면 뒤로 쓰러질 뻔 했다. 강만수는 얼굴을 비벼대며 김나나에게 달려들었다. 체중 백킬로그램이 넘는 강만수를 술에 취할만큼 취한 김나나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김나나는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나나야, 나나야 나 좋아 룰루루룰루룰”
넘어지면서 엉덩이에 돌이 찍혔는데, 그 위로 강만수가 짓눌러대자 김나나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앙ㄱ-! ”
김나나가 크게 비명을 지르자 골목 바깥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
몰려오던 사람들은 거구의 강만수를 보고 움찔 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너 강만수 아니냐? ”
“어, 박진희다. 박진희다.”
“이 자식아, 박진희다가 뭐야, 진희 누나다라고 해야지.”
“박진희 누나다. 어헝헝헝.”
몰려온 것은 다름아닌, 삼겹살 집에서 기나긴 일차를 마치고 맥주집으로 이동하던 중이던 회식 팀이었던 것이다. 박진희가 가서 강만수를 떼어놓고는, 바닥에 자빠져있는 것이 다름아닌 김나나인 것을 알아보고는 수선을 피웠다. 한편 누군가가 다른 구석에 쓰러진 이종민의 얼굴을 알아봤다.
“어이구, 이거 같이 오셨던 컨설턴트님 아니십니까.”
이종민이 뒷통수를 긁으면서 일어났다. 상황이 이렇게 우습게 전개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내가 지금 어쩌다가 이러고 있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앞뒤 사연이 다 밝혀지면 개망신을 당할텐데.
그 때 김나나가 눈물콧물을 짜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엉엉엉. 제가 술이 좀 취해서 일찍 나왔거든요. 그랬고 저기 컨설턴트님이 마침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서 바래다주겠다고... 그래서 가는 길에 갑자기 골목에서 쟤, 강만수가 뛰어나와서 저를 이쪽으로 끌고....”
이종민이 앞뒤를 알아차렸다. 김나나로서도 앞뒤 이야기를 다 까발려서 좋을 상황이 아닌 것이다. 술 마시자고 단 둘이 빠졌다는 둥, 모텔에는 죽어도 못 가겠다는 둥,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다.
이종민은 점잖게 입을 열었다.
“저기 있는 덩치 큰 친구가 갑자기 덤벼드는 바람에 조금 실랑이는 있었지만 별 큰 일은 없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하하.”
하지만 김나나는 너무 조용히 넘어가기가 아쉬운 듯이 악다구니를 썼다.
“별 큰 일이 없기는 뭐가 없어요. 저 바보같은 놈이 갑자기 덤벼드는 바람에 나 지금 허리 다치고 다리 삐고... 아우 내가 정말 못 살아! ”
이종민이 김나나를 말리면서 부축하는 시늉을 했다. 김나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도 이종민과 손이 닿을 때 무언의 의사소통을 했다. 공범자들이 나누는 음모라고나 할까.
강만수는 여러 사람의 눈길이 자신에게 집중되었음을 알고, 그리고 이유는 잘 모르지만 갑자기 김나나가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화를 내고 있음을 알고, 겁먹은 짐승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여러 사람들이 강만수를 향해 끌끌 혀를 찼다.
겁 먹은 강만수를 두고 모두들 조용히 퇴장하려는 찰나, 갑자기 여인숙의 문이 벌컥 열렸다. 아까 언제였는지 안으로 사라졌던, 강만수의 다리를 저는 어머니가 나온 것이었다.
중년 여인은 두 손으로 대야 가득 더러운 물을 담고 있었다. 생선 뼈다귀, 김치, 비닐봉지 등이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물이었다. 노모는 그 대야를 힘껏 이종민과 김나나를 향해 뿌렸다.
“꺄악-! ”
“뭐야 이거-! ”
이종민과 김나나가 비명을 질렀다. 중년여인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너희들, 당장 꺼져. 우리 강만수는 내가 지킨다.”
김나나가 소리를 질렀다.
“아줌마는 또 뭐야! ”
중년 여인이 대답했다.
“내 이름은 이명방이야! ”
정통 칙릿소설 사회복지사 김나나의 하루
- 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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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3/16 18:32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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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으로 끝내야 한다는 주문이 있기는 했는데;;
(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