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02일
3. 응유엔까이와 남해용왕을 만나다
#3. 응유엔까이와 남해용왕을 만나다
내가 그날부터 오서투랄리아에 도착하기까지 겪었던 일들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파란만장했다. 두 달 내내 손발을 오그리고 있었으니, 내 생명줄이 이 년 정도는 줄어들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폭풍을 만나서 배가 부숴질 뻔 했고, 우리는 사흘 밤낮동안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물만 퍼내야 했다. 국적 불명의 해적의 공격을 받아서 전투를 벌이기도 했고(그 과정에서 병졸 하나를 잃었다), 집채보다 큰 물고기가 덤벼드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일도 있다. (과장이 아니고 진짜로 집채보다 컸다.) 향항에서는 부하 부대원들이 현지의 삼합단의 건달들과 시비가 붙는 바람에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배를 타고 적도를 건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겪는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내 평생의 숙적이 된 응유엔까이, 그리고 김좌진 장군과의 만남이었다.
해적을 만나 동료를 잃은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서 우리는 또 다른 수상해보이는 배 한 척을 만났다. 달도 없는 밤이어서 서로를 식별할 수 없던 우리는 해상규약에 따른 전신 신호를 먼저 보냈다. 하지만 그 배에서는 신호를 무시했다. 보통 해적선들이 하는 짓이다.
복수심에 불타던 병사 하나가 먼저 그 배를 향해 총탄을 날렸고, 그러자 즉시 그쪽 배에서 응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 수십 발은 될만큼 총탄을 교환했다.
나는 뭔가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편 배는 해적선이 아니다. 수신호를 왜 무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둠 속에서 흘깃흘깃 보이는 깃발은 안남의 것이다. 저 배는 안남의 군선이 틀림없다.
하지만 초보군관인 나는 이런 상황에서 싸움을 어떻게 멈춰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우리가 먼저 사격을 중지했다가 적에게 벌집이 되면 어떻게 하지?
- 꽈아-앙
그 때였다. 엄청난 대포 소리가 터지고, 이어서 대낮처럼 환하게 조명이 밝혀졌다. 엄청난 폭음과 섬광 때문에 양쪽 모두가 사격을 멈췄다.
“그만들 멈추어라.”
대포 소리에 이어, 그보다 더 크고 우렁찬 목소리가 바다를 가득 채웠다.
나는 섬광 때문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은 눈을 비비며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차츰 흰 빛무리로부터 검은 그림자가 뭉쳐졌다. 엄청난 규모의 배였다. 우리 배 보다 열 배가 넘는 규모로, 마치 바다위에 세워진 성곽 같았다. 게다가 갑판에는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총부리가 걸려있었다.
그리고 배의 고물 한 가운데에는 무리의 대장이 있었다. 머리칼을 사자처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사내가 서서, 밤바다를 쩌렁쩌렁 울리는 큰 목소리를 토했다.
“이 곳은 나의 바다다. 감히 허락없이 내 집안을 어지럽히는 자들이 누구인가? ”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놀란 듯, 물결이 바르르 떨었다.
그는 대한제국의 말을 쓰고 있었다. 동래진으로부터 한 달이나 내려온 바다에서, 제국의 언어를 쓰는 사람이 바다의 소유권을 주장하다니. 그 때 나는 얼마전 들었던 풍문을 떠올렸다. 조정이나 선배들은 쉬쉬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상인이나 탐험가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제국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곁에 서있던 원종호 대좌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해용왕께 죄를 지었습니다. 상호간에 해적으로 오인하여 생긴 일이니 노여움을 푸시기 바랍니다.”
“네 이노옴-! 감히 내 바다에서 설치고 다니는 간 큰 해적이 있단 말이냐-! ”
원종호 대좌가 찔끔했다. 그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 또한 사자 같은 사내의 위엄에 눌리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 만으로 우리를 제압하고 있었다.
# by | 2009/04/02 03:12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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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it's very serious historical science fi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