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역사소설 - 오서투랄리아 #9~#10

 

#9. 부리주번의 대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일까. 누가 무슨 목적으로 공격하는 것일까. 안남군일까? 백인노예의 폭동일까? 아보리지니들일까? 아니면 제 삼의 적들일까?

무관학교에서 자주 하던 농담 중에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희화한 것이 있다. 상업학교에서는 불확실성이야말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므로 투자자를 모집한다. 외교학교에서는 그것이 사실은 확실한 상황보다 더욱 안정적이라고 상대방을 설득한다. 의학교에서는 상황이 어떻든 일단 배를 째고 본다. 그리고 무관학교는 상황이 어떻든 무조건 공격하고 본다.

지금이 꼭 그런 상황이다. 군인의 행동은 복잡할 필요가 없다. 생각이 많아야 할 필요도 없다. 무조건 행동해야 한다. 과감한 행동이 군인의 미덕이다.

“전원- 장전! ”

사방에서 일시에 총탄을 장전하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소리가 났던 쪽을 초조하게 살폈다.

- 살려주섹오롱

- 꺄악

먼 곳으로부터의 부산한 사람 소리와 비명소리는 더욱 거칠어졌지만, 총소리는 한 번도 나지 않았다. 나는 초조하게 전방을 살폈다. 흙먼지가 거칠게 일어나서 적의 실체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적들은 일부러 흙먼지를 만들고 있다. 자연스럽게 발생한 흙먼지가 아니라 고의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런 전술은 아무래도 아보리지니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여지껏 총소리가 한 번도 나지 않은 것을 봐도 그렇다.

“전진- 앞으로! ”

나는 손짓을 했다. 시청 건물 여기저기에 은폐해있던 군사들이 다음 번 벽까지 몇 걸음을 잽싸게 달려갔다. 실전 경험이 많은 분대장들이 배치된 덕택에, 신병이 절반 이상 섞여있는 부대지만 움직임이 어설프지 않고 믿음직했다. 나는 분대장들이 달려간 길을 따라 달려갔다.

그 때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섬찟함을 느꼈다. 그것은 직감이었다. 눈을 감은 사람의 목에 차가운 칼날을 가까이 가져다 댔을 때 느낄만한, 그런 류의 직감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방금 떠나온 자리를 향해 달려오는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보였다. 무장한 안남인이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1, 2 분대는 총구 전방! 3, 4, 5분대는 총구 후방! 진형 넓게! ”

내가 소리를 질렀다. 군사들이 후닥닥 내 지시대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거의 동시에 후방에서 누군가가 안남어로 외치는 소리가 났다.

“공격! ”

천둥이 귓가에 내리꽂히듯 요란한 폭음이 울렸다. 정신이 쏙 빠질 듯한 요란한 소리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방향을 가늠했다. 정확히 뒷쪽이다. 우리의 관심을 온통 앞쪽으로만 돌려놓더니 언제 여기까지 접근하다니. 나는 장총을 꺼내어 후방을 겨누면서 응사했다. 다른 병사들이 후방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총탄이 사방에서 허공을 갈랐다. 벽에서 돌가루가 튀고,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총탄의 바다 속에서 전황을 살폈다. 적군과 아군은 모두 큰 움직임이 없다. 양편 군사들은 모두 엄폐지 속에 머리를 쳐박고 팔만 내밀어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흔히들 ‘겁쟁이 달팽이들의 결투’라고 부르는 상황이다.

우리의 대응이 십초만 늦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겁장이 달팽이가 아니라, 일망타진 당하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전방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제 간간히 무기를 든 사람도 보이기 시작한다. 투창과 방패로 무장한 듯한 사람의 그림자다. 아마도 아보리지니일 것이다.

일분대와 이분대는 전방을 향해 견제 사격을 했다. 그러나 워낙 시야 확보가 어려워, 혹시라도 시민을 다치게 할까봐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돌진할 수도 없는 것이, 자칫하면 후방의 안남인들의 총에 등을 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삼분대장인 오철환을 찾았다. 그는 엄폐물 뒤에 숨어있었다. 워낙 큰 덩치 때문에 엄폐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마치 자기 눈을 가리고서 숨었다고 생각하는 새끼곰 같았다.

나는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기관포를! ”

오철환은 내 말을 알아듣고 엄폐물 뒤에서 꾸물꾸물 등에 진 기관포를 내려놓았다. 일미터 구십센티의 거한 오철환, 그는 육십 킬로그램의 기관포를 소총처럼 짊어지고 다닌다.

철갑을 뚫는 새끼손가락 크기의 총탄을 일분에 삼사십발씩 쏘아댈 수 있는 제국의 최신 무기다. 철갑 전차는 물론이고, 심지어 건물 외벽을 무너뜨리기도 하는 괴물같은 무기다.


#10. 오철환과 길상의 활약

오철환은 금세 기관포의 조립을 마쳤다. 남들이 들었다면 박격포처럼 보일만큼 거대하지만, 오철환이 들자 보통의 소총처럼 보인다. 그는 기관포의 총구를 엄폐 담장 바깥으로 내밀고, 방아쇠를 당겼다.

- 카카카카카칵

시끄럽게 울어대는 강아지들 틈에서 늑대가 짖었다고 할까. 이제까지의 총격전의 굉음을 모두 몰아내는 듯한 어마어마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총탄이 닿는 곳마다 불꽃과 흙먼지가 튀어올랐다. 총탄 세례를 받은 나무 한 그루가 기우뚱하더니 쓰러져버렸다. 나무 판자로 만든 담장 하나가 삽시간에 박살이 났다.

기관포의 엄호 덕택에 전황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돌이 튀고 담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안남군들은 달팽이 사격 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죽은 듯이 엎드렸다. 조금만 더 거칠게 몰아붙이면, 적은 아마도 견디지 못하고 물러갈 것이다.

아니, 그건 내 착각이었나? 안남군들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빈 술병같은 물건을 집어던졌다. 바로 몰로토보갹태일이라고 부르는 무기로, 병에 채워넣은 인화성 액체로부터 쉽게 꺼지지 않는 불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저 놈의 불은 한번 붙으면 쉽게 꺼지지도 않는다.

젠장. 저런 공격을 받다보면 자칫하면 민간인이 다친다. 그 와중에 시청 안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적들이 시청 안으로 들어갔는가?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삼분대, 엄호하라. 몰로토보갹태일(歿露討寶醵殆泆)

을 던지는 놈을 겨냥하라. 사분대, 불을 끈다. 오분대, 백병전을 준비하라. 지휘는 내가 한다.”

백병전까지 언급되자 병사들의 긴장이 눈에 보인다. 백병전이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이다. 네가 죽거나 또는 내가 죽어야 한다. 최소한 몇 명의 부하들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내 목숨까지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누구의 싸움인지도 모르는데 내 목숨까지 거는 것이 현명한가? 모르겠다. 언제 현명해서 군인이 되었는가. 그런 걸 따질려면 무관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몰로토보갹태일 몇 개가 연달아 더 떨어졌다. 갹태일을 던지려던 자 하나가 엄호사격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자 다음 번 갹태일의 겨냥이 눈에 띄게 부정확해졌다. 고개를 파묻고 병만 던지고 있을 것이다.

“오분대! 진격이다! ”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앞장서서 달려나갔다. 무관학교 시절에 실전을 여러 차례나 겪기는 했다. 하지만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앞장서서 뛰어나가는 것은 제정신으로 할 일이 못된다. 나는 최대한 빨리 다음 번 엄폐물 뒤로 숨었다. 부대원들이 하나하나 뒤를 따랐다.

오분대장인 길상은 암살자 출신이다. 그는 바람처럼 몸이 가볍고 눈이 날카롭다. 옷자락을 휘날리며 달려오더니 어느 사이 나를 앞서갔다. 한 손에는 권총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든 그는 적에게 흰 옷의 저승사자처럼 보일 것이다. 무관학교 시절, 차갑고 말이 없으며 냉혹해서 저승사자로 통하던 교관이니까.

이제 적의 선봉대와 우리의 거리는 십여 미터. 적의 응사가 거칠어졌다. 엄폐물에서 고개 한 번 내밀기도 힘들다. 자칫 고개를 내밀었다가는 그대로 피와 살이 한덩어리로 엉겨버릴 지도 모른다.

길상은 그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가 총탄을 피해가는가, 총탄이 그를 피해가는가? 그는 삽시간에 적진의 선봉대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비명과 고함이 터지기 시작했다.

나와 그리고 오분대원 몇 명이 뒤늦게 길상을 따라 달렸다. 귓가에서 총탄이 스쳐갔다.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길상은 적의 선봉대 중 한 사람을 쓰러뜨리고, 다른 세 사람을 향해 돌진하는 중이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백병전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갑자기 적진에서 온 공기를 찢는 휘파람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녹색 깃발이 올라왔다. 저건 항복 깃발이 아니라, 휴전 깃발이다. 상호간에 더 이상 피해를 입기 싫으니, 여기서 그치자는 신호다.

여기서 싸움을 멈추면 내가 손해다. 준비없이 시작된 싸움에서 잠깐동안의 전투로 호각세를 이루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싸워나가면 우리가 이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민들이 받을 피해다. 이곳은 부리주번이고, 특히나 시청 안에서 백병전이 벌어질 찰나다. 게다가 아보리지니들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이 안 됐다. 결국 더 싸우면 이기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받을 피해 또한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나는 함께 녹색 깃발을 올렸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사격중지 명령을 내렸다. 양쪽의 총격이 삽시간에 잦아들었다. 무슨 수신호가 어떻게 전달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보리지니들도 공격을 멈추었다.

우리쪽이 먼저 조금씩 후퇴했다. 이어서 적도 시청 안에서 빠져나왔다. 후퇴하는 자들 사이에 우리의 포로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 때 말을 탄 적의 지휘관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그는...

응유엔까이였다. 

우리는 서로 알아보고서 흠칫 놀랐다. 응유엔까이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조금 서툰 제국어로, 하지만 명확한 증오를 담아서 말했다.

“언젠가 너희 대한제국 놈들은 모두 내 손으로 몰살시킬테다.”

그의 증오는 이상할 정도로 날이 서있다. 단순히 군인으로서 부하를 잃은 정도의 적개심이 아니다. 그에게 내가 알지 못하는 대한제국에 대한 원한이 있는가?

그는 곧 부하를 이끌고 사라졌다. 부하들은 그들이 혹시라도 다른 움직임을 보일지를 경계했다. 나는 응유엔까이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by 찬별 | 2009/04/10 16:23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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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catnip at 2009/04/10 22:16
몰로토보갹태일이 뭔지 처음 알았네요.
아니 그런 이름이 붙어있는 물건인걸 처음 알았다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9/04/13 04:04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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