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13일
본격 대체역사소설 - 오서투랄리아 #11 시장 안중근
#11. 시장 안중근
부리주번의 전투는 피해가 적지 않았다. 부대에서는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 백병전을 위해 돌격하다가 배에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은 것이 한 명.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팔과 다리에 적탄을 맞은 사람이 한명씩.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다.
시민의 피해는 조금 더 컸다. 몰로토보갹태일 때문에 건물 한 채가 홀랑 불에 탔고 아보리지니의 손에 노인 한 사람이 죽었다. 총격전이 벌어진 곳은 온통 총탄 자국이다. 오철환의 기관포 때문에 무너진 건물도 하나 있다. 물론 오철환이 무너뜨렸다고 자랑하지는 않았다.
시민의 피해를 정리하는 것은 시장의 부인의 몫이었다. 그녀는 인심좋은 주막 아주머니처럼 볼이 새빨간 중년 여자였다. 그녀는 앞장서서 노인을 잃은 노파를 달래고, 거리에 남아있는 덜 꺼진 불씨를 정리하고, 놀란 여자와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그제서야 이겼다는 실감이 났다. 직접 지휘한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적을 괴멸시키거나 거점을 탈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부하들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고, 불시에 쳐들어온 적들을 성공적으로 패퇴시켰다. 가슴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적들이 물러가고서 세 시간 가량이 지났을 때 수십 명의 남자들의 말을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적이 아니라 아군이었다.
콧수염을 보기 좋게 기른 사내가 앞장서고 있었다. 그의 첫인상은 학식과 덕망이다. 하지만 나는 그 덕망 아래에 감추어진 사나운 기백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들었고, 시장의 부인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내의 안색이 여러 번이나 변했다. 나는 먼발치에서 그가 ‘응유엔까이... 그 놈이...’ 하고 분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사내는 내게 다가와서 말에서 내려 고개를 숙이며, 오서투랄리아의 사투리가 아닌 정확한 제국어로 말했다.
“안녕하시오. 나는 부리주번의 시장 안중근이오. 마을이 큰 위험에 빠질 뻔 했는데,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하마터면 정말 큰일이 날 뻔 한 것 같소.”
그의 이름이 낯익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보았다. 아홉개다. 아홉개의 손가락. 안중근. 한때 아홉 손가락의 하얼빈 호랑이라고 불리우던, 바로 그가 틀림없다. 어떻게 여기에서 시장을 하고 있는거지?
“감사합니다. 저는 제국에서 파견된 부리주번 지구대장 홍동길입니다.”
안중근의 인상이 잠시 지푸려졌다. 그는 직책이 부리주번의 시장이라고 했다. 그것이 제국의 명첩에 기재된 직책일까? 확실하지 않다. 도, 군, 현, 부, 목 등은 들어본 적이 있어도 ‘시’라는 행정 단위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면 그는 비공인 시장. 나는 공인 시장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마을 호족과의 알력을 걱정했다. 하지만 안중근은 그릇이 큰 인물이었다. 게다가 나는 마을을 구했다. 그는 처음 내 신원을 들었을 때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으나,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문전박대를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로서 우리를 대했다. 그는 우리에게 건물 한 채를 숙소로 내주었다. 삼층 건물로, 층별로 네 개의 방이 있었으므로 우리 인원 전체가 들어가기 안성맞춤이었다.
병사들을 숙영지에 자리잡게 한 뒤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전황이 아주 안 좋습니다. 부리주번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제국의 신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소. 특히 아보리지니들의 공격이 심상치 않아요.”
“그들은 미개인 아닙니까. 우리 도시를 공격할만큼 큰 세력이 있습니까? ”
“근자에 들어 그들의 움직임이 이상하오. 나도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공격이 조직적이고 규모도 커졌소.”
“그들이 제국에 대항해서 나라를 세우기라도 하는 것 아닐까요? 종종 외부와 대항하기 위해서 성장하는 문명을 찾아볼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겪어본 바로는, 아보리지니들은 그만한 지능을 갖춘 인간들이 아니오. 그들이 나라를 세웠다면 캥거루와 코알라들도 나라를 세울 겁니다.”
일종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나는 살짝 고개를 지푸렸으나, 안중근의 온화하고 지성적인 태도를 봐서는 그의 생각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내가 민병들을 데리고 나갔던 이유도, 우리를 빈번히 괴롭히는 아보리지니의 본거지로 의심되는 곳을 소탕하려던 것이었소. 그런데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놈들이 쳐들어온 것이지요.”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안중근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은 바로 응유엔까이요.”
나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응유엔까이가 오늘 쳐들어와서 큰 위협을 가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기껏해야 이제 막 배속받은 신임 군관 아닌가.
“안남에서 갓 건너온 신임 군관이 위협이 됩니까? ”
안중근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왔으니까 신임은 신임이지요. 하지만 그는 군관이 아니라 안남의 왕자입니다. 일곱째이지요. 어차피 왕위를 이어받을 서열은 아니겠지만, 안남이라는 나라가 이 곳 오서투랄리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만한 것 아닙니까.”
왕자라니. 그가 왕자였단 말인가. 왕자가 직접 오서투랄리아까지 파견와서 전투를 지휘하고 있단 말인가?
“그들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부리주번에서 가까운 곳이겠지요? ”
“부리주번에서 남쪽으로 이백여 리를 가면 황금의 해변이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곳 인근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황금의 해변이라. 비린 것을 낚아 연명하겠군요.”
“그래서 그들은 땅이 좋은 이 곳으로 침범하려는거지요. 아무튼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이야기하시고, 내일은 돌아가신 분의 제례를 지낼거요. 조만간 마을 주민들이 감사의 뜻을 모아 작은 잔치를 열까 합니다.”
안중근은 예의바르게 군례를 하고 방 밖으로 걸어나갔다. 첫 전투의 두근거리는 열기, 응유엔까이의 정체, 그리고 그가 뿜어내던 살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반쯤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 by | 2009/04/13 16:36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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