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10일
본격 가상역사소설 [오서투랄리아] 2-1
아보리지니와의 혈투
#1. 정주영의 계획
부리주번 총관의 방은 신선놀음에 아주 그만이다. 넓게 쳐놓은 유리창 덕택에 햇볕이 따뜻하게 (사실은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하니 따뜻하다는 표현으로는 조금 부족하지만) 들어오고,, 창문을 조금 열면 바람이 시원하게 통한다.
오서투랄리아의 사람들은 심심파적으로 차를 마신다. 이 곳의 차는 제국에서 마시는 차와 조금 다르다. 정약용이 귀양오던 시절에 배에다 차를 몇 줌 넣어왔는데, 이곳까지 차를 나르는 동안 차가 시커멓게 썩어버렸다고 한다. 그 차가 오히려 풍미가 더 그윽하기에, 이후에 연구를 거듭하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흑차(黑茶)라고 한다. 흑차 한 잔에 혓바닥이 아릴 정도로 단 맛의 과자를 먹으면 오후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지난 번 금광을 빼앗기고 난 뒤 응유엔까이는 금광 탈환을 위해 몇 차례 병력을 보내는 듯 했다. 하지만 그들의 정찰병이 번번히 생포되거나 사살되었고, 또 본격적으로 대부대가 쳐들어온 적도 있지만 그때에는 오철환의 기관포가 그들의 접근 자체를 막아버린 덕택에, 한 번도 그들의 뜻을 이룬 적이 없었다.
이후 시두니에서 증원병력까지 오게 되자, 응유엔까이는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종적이 없다. 척후병을 보내본 결과, 그들은 북부 지방에 위치한 다른 금광에 대한 수비를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럴만도 하다. 부리주번의 병력이 최근 두어 달 사이에 갑자기 두 배가 넘게 늘었으니 말이다.
그 때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미선민이 들어왔다. 정필재 선생의 집에서 일하는 재주 많고 아름다운 여자인 미선민이었다. 남녀간의 내외가 별로 없기 때문에, 미선민은 스스럼없이 내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내게 제국의 문물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듣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녀에게서 오서투랄리아의 풍토, 초목의 생장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에 배우는 것이 많다.
“미선민 왔나? ”
“나가 누굴 델꼬 왔능가 맞춰보시랑? ”
“누굴 데려왔기에 부산을 떨어? ”
“자, 보씨오용.”
미선민의 뒤로 청년 하나가 들어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 청년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 훌쩍한 키, 건장한 팔다리. 나는 그의 검게 탄 얼굴 안에서 빛나는 두 눈을 보고서야 그가 정주영임을 깨달았다.
“주영이구나, 선비는 삼일에 괄목상대라 하더니, 너를 두고 한 말이다. 불과 서너 달 만에 아주 어른이 되었구나.”
정주영은 고개를 꾸뻑 숙이며 인사를 했다. 다산 정약용의 후손으로 부리주번 일대의 호족인 정필재의 큰 아들. 내가 응유엔까이의 광산을 빼앗으면서, 그 곳의 아보리지니들을 관리하고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자리를 잡은지 불과 백일 정도이다. 떠나기 전까지 그는 키는 자랐지만 애티가 물씬 풍기는 소년이었는데, 지금 그는 어깨가 떡 벌어지고 얼굴이 구릿빛으로 그을린 거한이 되어 있었다.
“고생을 조금 했더니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형님.”
“수고 많았다. 너를 보니 아주 믿음이 가는구나. 그래, 그 곳의 일들은 모두 잘 돌아가고 있나? 안남인들의 도발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예, 형님이 잘 지켜주시고, 오철환 중사가 잘 지켜주는 덕택에, 이제 안남인들은 아무도 도발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몇 번 출하를 했지? ”
“예. 아직은 원석만이지만, 원석은 몇 번 출하를 했지요. 광산이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지금까지 개발된 것은 새발에 피에 불과합니다. 갱도를 사방으로 넓히고 있는데, 심지어는 갱도에도 금이 들어있습니다.”
“그것 참 어마어마한 매장량이구나.”
“네, 형님. 그래서 이번에 광산을 대대적으로 확장을 해볼까 합니다.”
사실 지금의 광산은 안남인들과 아보리지니들이 땅을 파헤쳐놓은 것에 불과했다. 갱도라고 해봐야 깊지 않고, 채굴되는 양 또한 미미했다. 아주 바보 같지만 나는 안남인들의 광산을 쳐서 빼앗을 생각은 몇 번 했지만, 지금 있는 광산을 확장할 생각은 못 해봤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관심대로만 생각하는 것으로, 군인은 개척할 생각 대신 빼앗고 죽일 생각을 먼저 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정주영의 눈에는 용기와 확신, 빠른 계산, 그리고 배짱이 들어있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
“지금 광산 이외에 몇 군데에 더 갱도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러 갱도에서 채굴하는 금을 이곳에서 직접 제련할 수 있도록 제련소도 만들 생각입니다.”
“제련소라...”
“그러려면 물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일단은 사람이 많이 더 필요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한 돈도 필요합니다. 광산에서 제련소까지 물건을 옮길 인력도 필요합니다.”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다. 나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마.”
#2. 제련소 공사
첫 번째 공사는 현재의 광산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오륙미터를 간신히 파들어갔던 광산에서는 몇일 동안 채굴이 중단되는 대신에 확장 공사가 진행됐다. 깊이로 이삼십 미터를 파고 내려가고, 거기서부터 조심조심 사방으로 확장해나가는 것이었다.
정주영도 땅을 파는 일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얼마나 깊이 파야 할지, 그렇게 파면서도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은 목축과 또 다른 문제였다. 시두니에서 기술자를 불러야 하지 않느냐는 말에, 정주영은 일단 한 번 해보자고 대답했다.
그는 땅속을 파고 드는 일을 아보리지니들에게 맡겼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아보리지니들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아무런 거리낌없이 공사를 맡았다. 그들은 한 달 만에 지하 갱도를 육십 미터까지 파고 들어갔다. 갱도는 나무와 철근을 박아 지지했다.
땅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자 채굴량이 당장 달라졌다. 지금껏 열 번 삽질에 한 덩어리의 원석을 캐었다면, 지금은 두 번만 삽질해도 한 덩어리의 원석이 나왔다.
그러자 정주영은 두 번째 공사로 제련소를 짓도록 했다. 원래는 두세 개의 광산을 더 개발한 뒤에 자체적 제련소를 가지려고 했다.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첫 번째 광산에서 채굴되는 양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았다. 광산을 세 개쯤 개발해야 나올 것으로 짐작했던 양이었다. 그러니 즉시 제련소를 만드는 것이 숙제가 되었다.
미선민은 이 공사를 천천히 할 것을 권했다. 미선민은 고대에 가장 존경받던 기술이 대장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혀서 될 일이 있고 안될 일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주영은 해보면 된다는 신조로 일단 밀어붙이자고 했다.
수백 도의 고열을 내기 위한 용광로, 금과 불순물을 걸러내는 시설, 정제된 금을 굳히는 시설 등을 처음 만드는 데에는 대략 일주일이 걸렸다. 낙천적이고 느릿느릿한 부리주번 사람 기준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빠른 행보였다. 부리주번에 있는 대장장이와 옹기장이가 힘을 합쳐서 용광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시설은 불과 사흘 만에 망가지고 말았다. 흙으로 빚은 가마가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깨진 것이다. 불 붙은 땔감이 좌르르 쏟아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사람이 크게 다칠 뻔 했다. 결국 정주영은 시두니에서 기술자를 불러올 수 밖에 없었다.
기술자는 부숴진 용광로의 잔해를 보고는 말했다.
“흙이 문제였습니다.”
“흙이? ”
“오서투랄리아의 흙은 열기가 너무 높아지면 갈라집니다.”
“그렇고마니롱.”
“적당한 흙을 구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가루가 곱고 점성이 강한 흙은 보통 지하수가 있는 지역 주변에 많습니다.”
정주영이 기술자를 데리고 부리주번 근처의 이런 저런 곳을 구경시켰다. 하지만 기술자는 매번 흙을 만져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점성이 부족해서 굳지 않는다, 습기가 과해서 향후 갈라진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댔다.
이번에는 정주영은 기술자를 광산 근처로 데려가서 토질을 검사하도록 했다. 이번에는 쓸만한 흙이 있기는 했지만, 양이 많지 않았다. 마치 금광에서 금을 캐듯이 집을 짓기 위한 흙을 골라야 하는 판이다.
그 때 미선민이 말했다.
“붕가라탑은 어떠니양?”
정주영이 눈을 반짝 떴다.
나는 붕가라탑을 지도에서만 본 적이 있을 뿐, 실물을 본 적은 없다. 그곳은 부리주번에서 이백 리 가까이 강을 타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륙으로 십 리쯤 들어간 곳에 있다.
정주영이 말했다.
“형님, 군사들이 일을 좀 도와줄 수 있갔시욘? ”
#3. 붕가라탑, 아보리지니의 첫 번째 공격
“나는 이런 일에 무지한 무부라서 잘 모르겠네만, 흙이 그렇게 중요한거요? ”
미선민이 먼저 웃으며 말했다.
“동길 오라비넌 잘 암시롱 그라요롱. 글코롬 쉬운 일이 아니랑게롱. 흙이라고 다 같은 흑이 아닝께, 불에 굽는다고 전부 단단해징것도 아니고롱 말이요. 생각해보쎠로잉. 모래로꾸 집을 짓을 수 있겄냥가롱? ”
그러자 시두니에서 왔다는 기술자가 말했다.
“제국에서는 집을 흙으로 짓잖습니까. 하지만 오서투랄리아에서 흙으로 지은 집을 본 적이 있습니까? ”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렇다. 대부분의 민가는 널판지로 짓고, 시두니 본부 같은 큰 건물은 아예 화강암으로 지었다. 제국에서는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흙을 바르는 것과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이 흙은 쓸만하겠습니다.”
기술자는 손끝으로 돌탑 조각을 떼어내 부스러뜨리며 말했다. 기술자가 고개를 끄떡이자, 마침내 정주영과 미선민이 눈을 마주하며 활짝 웃었다.
“그래, 이 흙이 쓸만하다니 써야겠지만, 그래도 이 경관을 해치는 것은 좀 아깝군.”
나는 짐짓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는 미선민과 기술자, 정주영, 모두가 잠시 말을 멈추고 주변을 보았다.
누구든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벌판은 장관이다. 세상 어디에 돌기둥이 숲을 이룬 곳이 있을까. 어림잡아도 이삼백 개는 될만큼 많은 돌기둥이 벌판 가득하게 늘어서있다.
하나하나의 돌기둥도 아름답다. 가는 것은 어린아이 몸통만하고, 굵은 것은 어른 세 명이 껴안아야 할만큼 굵다. 높은 것은 삼사십척은 되고, 낮은 것도 십척은 된다. 돌기둥은 두 가지 색으로 되었는데, 흰 색의 아랫단과 푸른 색의 윗단이 일부러 쌓아놓은 듯 색이 다르다.
수백 개의 돌기둥은 단순히 아름다운 정도를 넘어서, 비장미 또는 신성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참말로 이뿐 곳이기는 하지요롱.”
미선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깡- 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돌탑 사이에 있던 오철환이 나무 베는 도끼로 돌탑을 때린 것이다. 도끼로 돌을 찧으면, 날이 빠지고 도끼질한 이는 손이 저려야 정상이다. 하지만 돌이 연해서 도끼질한 만큼 움푹 들어가있었다.
“그냥 나무하듯이 썰면 되겠는데요.”
오철환이 아래에서 고함을 질렀다. 나는 그대로 한 번 해보라고 마주 고함을 질렀다.
기술자가 말했다.
“흰 돌과 푸른 돌을 빻아서 섞으면, 쇠를 녹일만큼 고온이라도 튼튼히 견딜 수 있는 용광로가 될 겁니다.”
나는 기술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 사람이 돌탑에 기어올라가 꼭대기에 밧줄을 묶었다. 세 방향에서 밧줄을 잡아당겨 돌탑을 지탱하는 가운데 오철환이 신나게 도끼질을 했다. 쩌렁쩌렁하게 돌 깨지는 소리가 나고, 돌가루가 사방으로 휘날렸다. 마침내 오철환이 큰 소리로 외쳤다.
“넘겨라-! ”
길이 삼십 척의 거대한 돌기둥을 다른 돌기둥이 없는 쪽으로 조심조심 기울였다. 돌이 마침내 쿵 넘어지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철환이 첫 번째 돌기둥을 넘어뜨린 것이 시범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돌탑을 하나씩 끼고, 가지고 온 연장대로 도끼질과 톱질을 시작했다. 돌탑이 썩썩 썰려나갔다. 군사들도 지루한 경계근무 대신 몸을 쓰는 것이 신나서 흥을 냈다.
가만히 채굴 현장을 보고 있는데, 계곡 너머의 수풀에서 까만 얼굴 하나가 쏙 솟아나왔다. 아마도 아보리지니일 것이다. 돌을 깨고 부수는 소리가 온 숲을 쩌렁쩌렁 울리니까 구경이라도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까지 접근하도록 보초 녀석들은 무슨 딴 짓을 했던 거지? 낮잠이라도 자고 있나?실전을 치룬 지 너무 오래라서 군기가 빠진 모양이다. 단단히 군기를 채워줘야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였다. 아보리지니의 머리가 연달아 쏙쏙 숲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은 호기심으로 구경하려는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모두 조심햇! ”
나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와 동시에 숲속에서 수십 명의 아보리지니가 한꺼번에 머리를 번쩍 치켜들고, 이어서 창을 던졌다.
# by | 2009/05/10 00:20 | 찬별의 소설 | 트랙백 | 덧글(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