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25일
#20 - 뉴질랜드, 웰링턴
오클랜드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남섬과 북섬의 경계에 있는 도시인 웰링턴에 도착. 바람이 많이 부는 도시라서 '윈디 웰리'라고도 부른다. 파에카카리키에 숙소를 잡고서 여기까지 대략 40~50분 가량 기차를 타면 웰링턴에 도착한다.
윈디웰리답게 바람이 심하다. 최대의 도시라는 오클랜드는 어딘지 느슨하고 질서없다는 느낌이 들었던 반면, 이 곳 웰링턴은 질서잡힌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관광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양복을 갖춰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빌딩과 빌딩 사이를 오락거린다. 실제로 그런 도시일 수도 있지만, 내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을 가지 않아서일 수도. 심지어 이 도시에서는 그 흔한 여행자 숙소 하나 보지 못했으니까.


박물관도 많이 다녀서 슬슬 지겨워졌다능. 저건 독수리가 멸종된 거조인 (이름 까먹음)을 낚아채는 장면. 말도 안되는 장면 같은데,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한다.

가난한 배낭여행객답게 어느 건물 지하에 들어가서 4 Item에 $7 인가 하는 중국료리를 한 접시 시켜서 둘이서 나눠먹고 (나눠먹으면서 우리 꼭 이렇게 살아야 해? 같은 대화를 나누고)

케이블카를 타고 산꼭대기에 있는 식물원을 찾아갔다. 아주 높은 경사를 비틀비틀거리면서 케이블카가 올라갔다. 관광객용이라기보다는 현지인의 교통용인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는 공원묘지가 있었다. 인구가 적고 땅이 넓은 나라이므로 죽은자에게도 넉넉한 땅을 나눠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어떤 묘비에 눈이 꽂혔다.

남편과 딸, 그리고 세 명의 어린 손자손녀(성이 다른 것으로봐서 외손도 포함)를 먼저 보낸 노파는 1902년에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다시 웰링턴 역으로 돌아가서. 역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맥주와 닭꼬치를 사들고 파에카카리키의 숙소로 돌아갔다. 독일 여자인 앤과 뉴질랜드 현지남인 글랜, 그리고 그들의 딸인 니나가 숙소에 들어왔다.

글렌은 원래 윈드써핑 강사로서 독신생활을 즐기다가, 이곳에 여행왔던 여자인 앤을 꼬셔서;;; 결혼에 골인한 이후 지금은 페인트공으로 일한다고 한다. 그는 'Man'이라는 말을 아주 부드럽고 친근하게 구사했고, 미국인의 방송이 뉴질랜드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고 한탄했고, 그리고 뉴질랜드에 건너온 동양인들의 신분 상승 욕구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이곳으로의 이민 이야기를 꺼내자, 그것은 네가 네 현재를 얼마만큼 버릴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고, 아주 현철한 사람처럼 말했다.
요즘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낡은 턴테이블에서는 지직거리며 오래된 노래가 흘러나왔고, 판이 튀어 같은 노래가 반복될 때면, 술상에 앉아있던 우리들은 하나! 둘! 셋! 하면서 크게 발을 굴렀다. 턴테이블이 무한루프를 탈출하면 우리는 다같이 낄낄거렸다. 갓난이 니나와 고양이 두 마리는 방바닥을 부지런히 기어다녔고, 식스팩은 살짝 모자란 느낌이 들었다.
아무 뜬금 없는 사진 한 장.

웰링턴 역에는 9 3/4 플랫폼이 있다. 공공기관조차 이 정도 유머감각이 있다니.

# by | 2009/07/25 13:10 | 찬별의 려행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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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가나 중국음식이 가격대비 양이 많군요.^^
여행기 올려주시는 거 보고 있자니 슬슬 저도 떠나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