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30일
피쉬앤드칩스의 유래
1. 한국의 주식은 밥 + 반찬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실제 전통사회에서 밥의 존재감은 반찬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 대부분의 시골에서 반찬은 밥을 넘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약간의 장류 또는 젓갈류와 장에 절인 야채가 반찬의 거의 전부였다. 19세기 무렵이 되면 여기에 한 가지가 추가되는데, 그것이 뻘건 색의 김치 및 깍두기다. 흔히 토속적 음식으로 일컫는 된장찌개도 그리 쉬운 음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웬만한 전통 가옥에는 아궁이가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불을 지피는 것은 오직 밥을 하기 위해서였고, 밥솥 안에 같이 넣어서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나, 또는 솥뚜껑을 뒤집어 엎어놓고 조리할 수 있는 음식 정도가 가능해진다. 결국 전통음식인 신선로니 설렁탕이니 하지만, 그런 음식들은 아주 부자가 먹거나, 또는 일년에 한 번 먹는 음식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음식에서 밥의 존재는 다른 모든 반찬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밥에 대한, 또는 쌀에 대한 종교에 가까운 집착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내 세대 까지도 멀쩡한 집 할머니들이 시궁창에서 흘린 쌀알을 주워먹는것 때문에 쪽팔렸다거나, 밥그릇에 밥풀이 붙었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의 재떨이에 마빡을 강타당해본 경험이 있다. 물론 내가 어릴 적만해도, 웬만한 사람은 세끼 밥 먹는 것은 어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쌀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은 가난이 죽음으로 연결되던 시절을 겪었던 어른 세대의, 삶에 대한 의지였을 것이다. 이런 쌀에 대한 종교적 신념은 김환표의 쌀밥전쟁이라는 책에 아주 잘 나와있다.
2. 이런 사정은 전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유럽 각국의 시골에서는 주식으로 빵이나 귀리(오트밀)을 먹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에 집착하는 만큼이나 유럽에서는 빵에 집착했다. 흔히 유럽 하면, 스위스 눈덮힌 산골짜기의 오븐에서 모락모락 구워지는 흰 빵과, 들판의 소에게서 갓 짠 우유, 그 우유로 만든 버터와 치즈 같은 것을 떠올리기 좋겠지만, 이것은 아마도 상위 5%에 해당하는 그 마을 제일 부잣집에서나 가능했을 것이다. 소가 귀했을 것은 모두가 짐작할 수 있거니와, 빵 또한 귀한 음식이었다. 빵을 만들기 위한 밀은 귀했을 수도 있고 안 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밀을 빻는 제분소는 우리나라로 치면 소작농의 마름 정도 되는 넘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밀 한 되를 주면, 톱밥이 잔뜩 섞인 밀가루를 반되쯤 되돌려주는 것이 흔했다. 밀가루를 얻은 뒤에는 빵을 구워야 하는데, 빵굽는 오븐, 그러니까 화덕도 귀했다. 게다가 화덕에 불을 지피기 위한 연료도 귀했다. 하여 화덕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마을이 작고 가난할 수록 화덕에 불을 지피는 일도 드물었다. 조금 도회지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시골에서는 일년에 한 번 굽기도 했다는데. 그렇게 구운 빵을 일년동안 두고 먹었다니, 아스트랄할 따름이다. 습기가 없이 말라비틀어진 빵은 일년간 보존이 되기는 하겠지만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터인데, 그래서 수프가 없으면 먹지 못했다나 뭐라나.
식량 사정이 이런 판국이면서도 감자는 꺼려졌다. 감자의 원산지는 남미인데, 스페인을 통해 유럽에 들어왔으나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감자는 기르지 않아도 자라기 때문에 게으름뱅이의 식물이며 따라서 저걸 먹으면 나태해진다, 나병의 원인이 된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배에 가스가 차므로 농부들처럼 천한 사람은 소화시킬 수 있으나 고상한 귀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등등, 가지각색의 명목으로 감자는 기피식품이 되었다.
3. 기피식품을 먹기 시작한 것은 물론 배고픈 사람들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다른 곡식이 모자라서 감자만 먹다가, 감자 기근 때문에 몰살+미국으로 엑소더스,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감자는 조리하기가 쉽다. 현대와 비교하면 곤란하다. 현대에는 밀가루에 물을 타서 반죽 후 가스렌지나 오븐 위에 구우면 빵이 되는 반면, 감자 껍질을 까는 일은 아주 귀찮다. 반면에 과거에는 밀을 빻고 가루를 내고 마을에 하나 있는 화덕에 불을 지피는 등등의 생쑈와 비교하자면, 난로 위에 둔 솥에 물만 부어 끓인 후 감자를 넣으면 되니 (또는 불속에 감자를 파묻기만 해도 된다) 얼마나 쉬운가.
그래서 조금씩 감자가 하층민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으나,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것은 다름아닌 산업혁명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기른 농작물을 먹지 않았다. 게다가 도시의 가옥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엌을 가지지 않았거나 아주 초라한 굴뚝과 아궁이 하나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노동자들은 많은 끼니를 바깥에서 해결했는데, 이제는 게으름뱅이의 식물이라는둥,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둥, 그런 이유로 입씨름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의 음식에 대한 요구는 간단했다. 싸고, 푸짐하고, 열량이 높을 것.
십구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외식산업이 생겨났다. 외식산업이라고 하니까 아주 거창한데, 말하자면 밖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의 인천 부두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많은 현대식 음식들이 탄생했다거나, 일본 에도의 노동자들이 사는 곳에서 일본식 패스트푸드가 탄생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바로 가난뱅이들의 탄수화물 공급원인 감자, 면직물 공업을 통해 부산물로 나온 면실유(목화씨를 짜내서 나옴), 그리고 바다에서 잡히기는 하는데 먹지않고 버리던대구와 할리붓등의 흰살 생선 싸구려 생선들이다. 요즘은 면실유가 고급 식용유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당대에는 아주 냄새나는 싸구려 기름이었던 모양이다. 생선은 운송 과정에서 반쯤 맛이 갔다. 냄새나는 생선을 냄새나는 기름에 튀기면, 아주 냄새나는 생선튀김이 된다. 그러나 열량과 에너지 면에서 가격대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음식이기도 했다. 1888년에 영국 전역에 피쉬앤칩스를 내놓는 튀김집은 대략 1만 2천개였다고 한다. 1910년에는 2만 5천개로 2배 늘었다. 이들 튀김집이 쓰던 생선은 영국 어획고의 20~25%에 해당했으며, 감자 또한 연간 50만톤을 썼다고 한다. 통계는 래리 주커먼의 감자 이야기 중에서. 결국 영국이 자랑하는 유일한 전통음식인 피쉬앤드칩스는 대략 19세기 중반 경부터 먹기 시작한 음식이었다.

'>
'>
그래서 한국음식에서 밥의 존재는 다른 모든 반찬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밥에 대한, 또는 쌀에 대한 종교에 가까운 집착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내 세대 까지도 멀쩡한 집 할머니들이 시궁창에서 흘린 쌀알을 주워먹는것 때문에 쪽팔렸다거나, 밥그릇에 밥풀이 붙었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의 재떨이에 마빡을 강타당해본 경험이 있다. 물론 내가 어릴 적만해도, 웬만한 사람은 세끼 밥 먹는 것은 어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쌀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은 가난이 죽음으로 연결되던 시절을 겪었던 어른 세대의, 삶에 대한 의지였을 것이다. 이런 쌀에 대한 종교적 신념은 김환표의 쌀밥전쟁이라는 책에 아주 잘 나와있다.
2. 이런 사정은 전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유럽 각국의 시골에서는 주식으로 빵이나 귀리(오트밀)을 먹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에 집착하는 만큼이나 유럽에서는 빵에 집착했다. 흔히 유럽 하면, 스위스 눈덮힌 산골짜기의 오븐에서 모락모락 구워지는 흰 빵과, 들판의 소에게서 갓 짠 우유, 그 우유로 만든 버터와 치즈 같은 것을 떠올리기 좋겠지만, 이것은 아마도 상위 5%에 해당하는 그 마을 제일 부잣집에서나 가능했을 것이다. 소가 귀했을 것은 모두가 짐작할 수 있거니와, 빵 또한 귀한 음식이었다. 빵을 만들기 위한 밀은 귀했을 수도 있고 안 귀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밀을 빻는 제분소는 우리나라로 치면 소작농의 마름 정도 되는 넘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밀 한 되를 주면, 톱밥이 잔뜩 섞인 밀가루를 반되쯤 되돌려주는 것이 흔했다. 밀가루를 얻은 뒤에는 빵을 구워야 하는데, 빵굽는 오븐, 그러니까 화덕도 귀했다. 게다가 화덕에 불을 지피기 위한 연료도 귀했다. 하여 화덕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마을이 작고 가난할 수록 화덕에 불을 지피는 일도 드물었다. 조금 도회지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시골에서는 일년에 한 번 굽기도 했다는데. 그렇게 구운 빵을 일년동안 두고 먹었다니, 아스트랄할 따름이다. 습기가 없이 말라비틀어진 빵은 일년간 보존이 되기는 하겠지만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터인데, 그래서 수프가 없으면 먹지 못했다나 뭐라나.
식량 사정이 이런 판국이면서도 감자는 꺼려졌다. 감자의 원산지는 남미인데, 스페인을 통해 유럽에 들어왔으나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감자는 기르지 않아도 자라기 때문에 게으름뱅이의 식물이며 따라서 저걸 먹으면 나태해진다, 나병의 원인이 된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배에 가스가 차므로 농부들처럼 천한 사람은 소화시킬 수 있으나 고상한 귀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등등, 가지각색의 명목으로 감자는 기피식품이 되었다.
3. 기피식품을 먹기 시작한 것은 물론 배고픈 사람들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다른 곡식이 모자라서 감자만 먹다가, 감자 기근 때문에 몰살+미국으로 엑소더스,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감자는 조리하기가 쉽다. 현대와 비교하면 곤란하다. 현대에는 밀가루에 물을 타서 반죽 후 가스렌지나 오븐 위에 구우면 빵이 되는 반면, 감자 껍질을 까는 일은 아주 귀찮다. 반면에 과거에는 밀을 빻고 가루를 내고 마을에 하나 있는 화덕에 불을 지피는 등등의 생쑈와 비교하자면, 난로 위에 둔 솥에 물만 부어 끓인 후 감자를 넣으면 되니 (또는 불속에 감자를 파묻기만 해도 된다) 얼마나 쉬운가.
그래서 조금씩 감자가 하층민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으나,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것은 다름아닌 산업혁명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이 기른 농작물을 먹지 않았다. 게다가 도시의 가옥들은 대부분 자신의 부엌을 가지지 않았거나 아주 초라한 굴뚝과 아궁이 하나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노동자들은 많은 끼니를 바깥에서 해결했는데, 이제는 게으름뱅이의 식물이라는둥,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둥, 그런 이유로 입씨름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의 음식에 대한 요구는 간단했다. 싸고, 푸짐하고, 열량이 높을 것.
십구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외식산업이 생겨났다. 외식산업이라고 하니까 아주 거창한데, 말하자면 밖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의 인천 부두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많은 현대식 음식들이 탄생했다거나, 일본 에도의 노동자들이 사는 곳에서 일본식 패스트푸드가 탄생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바로 가난뱅이들의 탄수화물 공급원인 감자, 면직물 공업을 통해 부산물로 나온 면실유(목화씨를 짜내서 나옴), 그리고 바다에서 잡히기는 하는데 먹지않고 버리던

# by | 2009/08/30 14:30 | 세계음식 이야기 | 트랙백(1) | 핑백(1) | 덧글(9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피쉬앤드칩스의 유래
각 나라의 대표음식은 대부분 서민들이 값싸게 손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들로부터 전래되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피쉬 앤 칩스도 사정이 다르진 않은데요. 유래가 좀 독특하네요....more
... 껏해야 수십 년, 길어야 백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질 뿐입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불리는 피쉬 앤 칩스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었죠 (피쉬앤드칩스의 유래 - 찬별님). 일본식 음식이라고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릴만한 스시도 현재의 형태가 된 것은 기껏해야 19세기이며, 스시 중에서도 가장 비싼 참치 대뱃살 초밥을 사람 ... more
그게 혹시 그 메뉴가 처음 나온 19세기에는 튀김재료인 생선이 냉동/냉장된 상태가 아니라 염장생선이었기 때문에 간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염장생선을 쓰지 않지만 "원래 간 안 하는 거니까" 계속 안하는 게 아닐지?
다만 흰살 생선도 염장을 해서 보관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19세기 무렵에는 철도가 놓아졌기 때문에, 느려도 이틀이면 내륙까지 생선이 운송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권에서는 고등어 꽁치, 양넘들은 주로 청어를 염장+건조했던 걸로 알고있거든요.
질 좋은 고급 대구는 염장생선으로 만들어 유럽으로 가고 질 낮은 대구는 말려서 대구포로 만들어 카리브로 보냈다고 합니다.
위의 이야기는 <감자 이야기> <빵의 역사> 이런 책 두어 권에서 대충 기억나는대로 짜집기한 건데, 나중에 북대서양 생선 이야기 같은 것을 한 번 읽어본 후에 다시 한 번 쓸게요 ^^;
특히나 대구가 고급어종이 될수록 대구사용은 점점 사용되지 않았죠.
대충 영국근해에서 잡은 싼 물고기는 다 튀겨서 내놓았을겁니다.
염장을 하고 말린제품은 피쉬엔칩스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싼제품이죠.
게다가 스톡피쉬는 튀김요리로는 부적합죠.. 기본적으로 물에 불려서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스튜용도로 사용하기 좋져머
고우/ 그렇죠, 말 그대로 잡히는 생선 대충 아무거나 튀겼을 듯 하네요 ㅎㅎ
일단 피쉬 앤 칩스가 인기를 얻던 때는 나름 크다는 어선들에 증기기관이
장착되던 때입니다.
그러니 이전보다 바람의 영향을 덜받고 좀 더 멀리 나갈 수 있었죠.
여기에 예인가능한 그물의 크기가 커지면서 싹쓸이 어업이 태동하던
때이기도 하죠.
게다가 철도와 시장의 확대로 대량 어획한걸 대량 운송과 대량 소비 체계를
뒷받침 해줄 체계가 갖춰지던 때이기도 하죠.
이러면 생선이 오늘날 기준에서는 맛이 간 수준으로 한물갔다해도 비교적
빨리 운송이 가능했을 겁니다.
청어따위는 염장, 대구는 말리고 장어는 눈을 버드나무로 꿰어 소금치며
게나 새우는톱밥에 파묻는다는 전통적인 방법 따위는 사라질만도 하죠.
뭐 어차피 잡어니까 말입니다. (생선의 전통적인 운반에 대해서는 프랑스
우화의 여우 르나르가 도적질하는 모습을 보시면 될겁니다. 늑대 이장그랭이
따라하다 골탕을 먹죠.)
그리고 이렇게 가져온 것을 이미 이 때쯤이면 구운 감자로 자리잡은 감자와
함께 면산업의 부산물이자 정제되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냄새나는 값싼
면실유로 튀기게 되죠.
싸면서 한끼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식품이었으니 말입니다.
p.s:
대구와 같은 흰살 생선이 염장되거나 건조되지 않고 사용된건 북해까지
어선들이 나가고 냉장하는데다 그걸 더 빨리 운반하는 체계가 잡힌 때부터
가능해진 걸로 보시면 될겁니다.
그러니 더 이후의 일이죠.
물론 그 와중에 영국과 아이슬랜드가 서로 으르렁댄 경우도 생겼지만.
영국 전통음식으로는 푸딩도 있습니다.
저는 칩스때문에라도 케첩없이는 못먹었습니다만...-.-
굉장히 흥미롭군요 그 좋은 구황식품을...
아일랜드 이야기 때문에 흔히 먹었던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도 고구마가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와서
구황 식품으로 자리 잡았었죠 아마?
칡뿌리 캐서 먹고 했던걸 생각하면
역시 결국은 뿌리 채소가 답인가 봅니다
수랏상이라는 12첩 반상도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차려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O첩 반상"이라는 말 자체가 서민을 위한 밥상이 아니라, 양반들이 격식을 따져서 차려먹는 밥상이지요. 12첩 반상은 실제로 밥+기본찬류 + 12그릇의 반찬이 들어갔으니, 어마어마한 상차림이구요. 수랏상으로 12첩 반상을 받지 않는 검소한 임금들이 있었지요.
아무튼 옛날 사람들이라고 늘 가난하게 먹지는 않았다는 것은 맞구요...
예전에 tv에 나오던 제이미였나 그 요리사가 조리하는건 참 맛나보이던데.
레몬과 tartar 소스는 개념 ㅠㅠ
레몬 뿌리면 좀 덜하지 않나요 그래도?
(호주사는 1인)
피쉬앤 칩스 영~ 건강에 좋지않을 것 같아서, 정말 귀찮을 때만 사먹었었는 데.. 담번에 가면 피수앤칩스가 좀 더 살갑게 느껴질 듯..^^;;
정말 재밌고 유용했다는..ㅎㅎㅎ
아놔
보관성이 좋아 잘 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허구헌날 튀김만...
정말 맛있고도 몸에 좋은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한국에는 그런음식점이 없잖아요 흨흨
생선도 먹는 종류가 무지 한정돼 있고.... 수퍼마켓 해산물 코너에 가며 생선들은 전부 포가 떠진지 일주일은 지난 듯한 시들시들한 모습.; 이놈들 일본을 본받으란 말이다 ㅠㅠㅠㅠ 같은 섬나란데 한쪽은 식도락의 천국이고 한쪽은... 그저 눈물만;
제가 느끼기에도 우리나라의 중세가 유럽의 중세보다 좀 더 먹고살기 쉬웠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유럽에서 좋은 소금과 대구를 위해서 벌인 어마어마한 전쟁들은 다 썡쇼인가요? ㄱ-;
기원을 알게 되는군요.
하지만 지금도 맛없는건 그때나 지금이나...어우 느끼해!!!
지금보다 밥의 비중이 훨씬 더 크다는 대전제에는 물론 동의합니다요. 그냥 지나가다 사족처럼 덧붙여요.
피쉬 앤 칩스의 주 원재료(?)인 대구가 지금은 엄청나게 고급어종인데다 대구땜에 아이슬란드랑 영국이 전쟁할뻔했죠. 호주에서 생활할때 홈스테이 맘이 말씀해 주신게 생각나네요.
사실 피쉬앤칩스의 생선튀김의 맛을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군대에서 나오던 생선튀김(가공품)의 맛을 떠올리면 딱 그맛이라능ㅠㅠ
여튼 느끼한건 여전하죠 ㅠㅜ
그 때문에 다양한 요리법이 많기는 했지만 조리 후 보관이나, 단백질과 염분에 비해 탄수화물과 지방이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한 튀기기 요리가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탄수화물 덩어리에 조리가 쉬운 편인 감자와 함께 대구를 튀겨낸 형태가 현재의 피쉬 앤 칩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보면 안동지방의 고등어 염장이나 잉글랜드의 대구 염장은 보존과 교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던거죠. 기름을 쓰는 조리가 선호된다는 것과, 저인망으로 인해 멸종 수준으로 그 개체량이 격감한 부분까지도 비슷하고... -_-;
빵의역사는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는데,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빵이란 참 먹기 힘든 음식이었구나'....ㅡㅡ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