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없는 삶

팔십년대라는 말에서는 웬지 화염병과 최루탄 냄새부터 풍기지만, 사실 내가 살았던 팔십년대는 그런 것들과 조금 거리가 멀다. 나의 팔십년대의 첫 번째 특징은, 거의 차를 타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멀미가 유독 심해서 차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차를 탈 일도 별로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들은 모두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었다. 학교, 집, 놀이터, 문방구, 바닷가, 목욕탕, 그런 것들은 모두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가끔 주말 외식으로는 지역 내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인 암소갈비집이나 삼삼집, 돈까스 전문 한스통닭, 또는 정말 비싼 걸 먹는 날에는 일식집 같은 곳을 갔다. 모두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 까지도 거의 차를 타지 않았다. 학교 앞에 하숙을 하거나, 걸어서 삼사십분 거리에서 자취를 했다. 걷기에 조금 먼 듯 해도 걸어다닐 때가 더 많았다. 생활은 거의 학교와 집과 그 사이의 술집에서 이루어졌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에만 하는 행사였다. 대개는 서울역을 가기 위해서였다. 버스는 거의 타지 않았다. 신촌, 홍대, 코엑스, 한강, 이런 것들은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나마 종로는 가아아끔 갔다. 웬지 쓰고 보니, 대학시절 내내 솔로였다고 고해성사 하는 느낌이 들어 눈에서 콧물이 흐른다.... 사실 대학시절의 대단할 것 없는 연애도 모두 학교 근처의 막걸리집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니 눈에서 콧물이 포풍처럼 흐른다.

확실히 나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 않는 라이프 패턴을 가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앉은 자리에서 뭉개는 삶이다만, 이제는 택배라는 매체를 통해 앉은 자리에서도 에너지를 펑펑 쓸 수 있는 삶의 구조가 오고 있다. 석유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삶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뭐라고 설명하면 될까?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석유 부산물인 나프타(납사)에서 나온다. 플라스틱, 페인트, 화학섬유로 만든 옷, 그 옷에 칠해진 염료, 앉아있는 의자의 비닐,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의 염료, 기타 등등등... 그런데 그 납사는 석유의 5%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95%는 모두 차가 태워 없앤다.

삼십년 전부터, 삼십년 후에는 석유가 고갈될 거라고 말해왔다. 요즘도 그렇게들 말하고 있다. 석유나 가스 같은 물건을 다루는 회사는 재고물량이 톱시크릿이다. 저 쉑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기 때문에. 하물며 아랍의 석유 재고량이야. 유럽/미국 각국은 그 재고량을 알아내려고 갖은 정보전을 벌일테고. 아랍은 숨길려고 생쑈를 벌일테고.

삼십년 후에는 정말 석유가 고갈될까? 글쎄다. 아랍권에서는 이제야 석유화학 설비를 엄청나게 지어대는데. 몇조 짜리 플랜트를 지어제끼는 걸로 봐서는 앞으로 수십년은 써먹을 수 있으니까 저런 걸 짓는 것 아닐까 싶은데. 그리고 그린테크놀로지다 스마트그리드다 그린카다 어쩌구 해가면서 대체품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걸로 봐서는, 석유가 떨어져도 인간의 삶의 방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 보인다.


헛소리였다. 그냥 이 시간에 깨어있다는 인증이라고나 할까... 천둥이 무섭게 친다.

by 찬별 | 2009/10/19 05:25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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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허안 at 2009/10/19 10:34
영화 에이리언1에 나오는 노스트로모호가 석유수송선이라지. 대체연료가 개발되어도 석유는 필요하다는.....

가격이 문제지 석유가 떨어질 리가 없지. 시베리아, 사하라, 알라스카, 남북극 그리고 대양 어딘가에 사방에 있을텐데 채취비용, 경제성의 문제일뿐.....
Commented by 찬별 at 2009/10/21 09:36
네, 경제성의 문제가 맞죠
Commented by 우기 at 2009/10/19 12:10
저도 정말 고등학교까지는 모두 집에서 걸어다녔습니다. 하긴 대다수가 그렇겠지만요. 하지만 지금은 그만큼의 거리라도 항상 차로 이동하죠. 미국와서 생긴 못된 습관(?)중 하나인 것같습니다. 가까운 거리도 무조건 차로.

찬별님도 저와 같은 대학을 나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저도 대학, 대학원 10여년의 세월동안 신촌, 홍대앞은 열번도 안가본 것같습니다. 모든 활동이 학교부근에서... 연애마저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같네요. ㅠㅠ

Commented by 찬별 at 2009/10/21 09:37
비슷한 삶을 사셨군요 흑흑-_-;;;;

그런데 미국은 가까운 거리라는게 별로 없잖습니까. 가까운 슈퍼가 걸어서 30분 거리.. 뭐 그렇지 않나요?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9/10/19 13:01
막걸리 학교에 다녀도 홍대/신촌 앞에서 수업외 시간을 더 많이 보낸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ㅠㅠ;;
Commented by 찬별 at 2009/10/21 09:37
ㅋㅋㅋㅋ
Commented by Allenait at 2009/10/19 13:27
석유화합물이 있으니 석유는 계속 필요하게 될것 같습니다.

석유가 부족하게 되면 진짜 채산성이 낮거나 환경오염 문제가 있다고 해도 마구 캐내게 될것 같군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9/10/21 09:38
뭔가 대체 기술을 조금씩 만들어내지만, 완벽하지는 못하겠죠.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9/10/22 15:34
같은 무렵 같은 학교를 다녔군요! 언젠가 한두번은 학교에서 뵌적이 있을지도,공통의 지인이 있을지도 모르구요. 아아.. 왠지 반가워요!
Commented by 찬별 at 2009/10/22 22:53
왜 다들 학교주변 막걸리집에서 특정 학교를 생각하시는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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