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미국에서 결혼 전후의 살림살이



오늘 막 찾아낸 따끈따끈한 (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100년도 더 된) 19세기 후반 신문기사들 속에서 서재필과 관련된 내용 몇 개를 찾아냈습니다. 어쩌면 발굴된 적이 없는 자료도 몇 개 있을 것 같은데, (근데 검색의 시대니 전공자들은 아마 예전에 검색해서 확인했을지도...?) 딱히 내용이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 흔히 카피앤페이스트로 재생산되는 주요 상식과 조금 거리가 있는 것들은 있습니다. 

제 소설에서 잡아놓은 설정과 거리가 있는 것도 많네요. 그런 것들 중심으로 몇 가지 올려봅니다.  

먼저 1886년 12월 22일자 윌크스바레의 지역신문인 Wilkes-barre record 라는 신문에 올라온 기사입니다. 서재필의 미국 생활이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험한 일하며 고생하다가 동부의 윌크스바레로 건너온지는 반년이 채 안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이 신문 기사 내용을 간단히 번역해보겠습니다.  

<새로운 기업> 
우리 마을의 수많은 제현들께서 아시옵는 바와 같이 코리아에서 건너와 해리 힐맨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이손 군이 상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시옵는 바와 같이 그는 웨스트 마켓 스트리트에 있는 에반스씨의 상점 카운터 뒷자리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사옵는 바, 그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온 다양한 명절 특선 상품들을 처분하고 있습니다. 제이손 군은 매우 다행히도 그의 수입품 중 상당수를 이미 판매 완료했으며, 덕택에 그가 영어 교육을 받는 데에 있어서의 큰 장애물들이 상당히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제이손 군은 매우 똑똑하고, 고상하며, 그의 고국에서 망명해온 사람입니다. 그가 일본에서 수입한 물품들은 희귀하고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저렴한 가격에 판매중에 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상회는 충분히 칭찬할만하며, 그는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몇 군데 이 번역이 맞나 갸웃거려지는 곳도 있군요.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자면, 윌크스바레로 건너온 뒤 그는 학업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일본 제품의 수입 판매를 했었나봅니다. 학비는 홀렌벡씨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나, 학비 이외의 생활비는 모자랐을 수 있지요. 수입품을 판매하는 것이 일회성 알바였는지 이후로도 꽤 오래 운영한 상점이었는지는 본문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다른 자료도 부족합니다. 현대에는 대기업을 의미하는 enterprise 라는 단어가 19세기 말에 어떤 뉘앙스였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는 돈에 대해서 나름대로 철저하다면 철저하고, 도전적이라면 도전적인 모습입니다. 수입판매상점 밑천은 누군가로부터 빌렸겠지요. 낯설고 물선 나라에서 밑천을 빌려가며 장사하는 패기는... 


 
1894년 6월 17일 서재필 결혼 당시의 기사입니다. 간략 번역해보겠습니다. 

워싱턴DC의 제임스 화이트 대령 부부가 막내딸 뮤리엘 조세핀 암스트롱의 결혼식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신랑감은 닥터 필립 제이손으로, 워싱턴에서 알아주는 의사이자 대학교에서 세균학(microscopy)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합니다. 결혼식은 워싱턴의 커버넌트 교회에서 수요일에 열릴 예정이며, 결혼식이 끝나면 1017, 12번가, Northwest 드라이브의 화이트 대령의 자택에서 피로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제이손 부부는 7월 20일 이후에 916, 14번가, Northwest 의 자택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신부는 고 암스트롱 대령의 막내딸입니다. 

당대 지역신문에서는 결혼식 뿐 아니라 누가 이사를 갔다, 누가 이사를 왔다, 누가 방문하러 왔다, 같은 시시콜콜한 소식들이 신문에 실리더군요. 처음에는 서재필의 결혼 기사가 실린 것이 유색인종의 신기한 결혼식이기 때문 아닐까 했는데, 물론 유색인종과 백인 상류층의 결혼이라는 희귀한 이벤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딱히 대단한 화제가 된 것은 아니었나봅니다. 

결혼식을 6월 말에 하고, 7월 말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까지 뉴스에 나네요. 허니문을 상당히 길고 뻑적지근하게 떠나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당대 풍습 정도로 특이할 것은 없어보이구요) 그런데 여기서 주소가... No 916, 14번가, Norrthwest 로 나옵니다. 당시 주소체계가 지금과 같은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저 주소를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면 백악관에서 몇 발짝 안 떨어진 곳이 나옵니다. 


한편 여기서 다시 조선공사관까지는 한참 거리가 됩니다. 필립 제이손의 자택은 조선공사관보다 백악관에 가까운 곳입니다. 조선으로 치면 사대문 안에 산다고 해도 될 것 같네요. 현재는 고층건물이 들어선, 대도시 노른자위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1894년 6월 23일자 Ottawa Journal 입니다. 오타와 지역신문에 서재필의 결혼 기사가 났네요. 번역 들어갑니다. 

어제 워싱턴에서는 일본인과 미국인간 결혼식이 크게 화제가 되었다. 결혼 서약을 한 사람은 뮤리엘 암스트롱양으로서, 그의 양부는 J. E. 화이트 대령으로 철도우편국장이다. 닥터 필립 제이손은 과거 일본인이었고 현재는 워싱턴에 거주하는 의사다. 그들의 결혼식은 커버넌트 교회에서 있었고, 주례는 테니스 햄린 목사에 의해 진행되었다. 제이손 박사는 16년 전 이 대륙에 도착했고, 현재는 미국 시민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거리 관념이 참 모호하네요. 워싱턴의 결혼 소식을 오타와에서? 다만 뉴스 뒤지다보니 당시 지역신문들이 생각보다 기사를 서로서로 함께 싣기는 하더군요. 보통 결혼식은 청첩장을 받게 된 사람을 소스로 여러 지역신문에 함께 실리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이 기사는 베낀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틀린 내용이 많습니다. 그는 아시다시피 일본인이 아니며, 그가 미국에 도착한 것도 16년이 되지 않았지요. (이후로도 남은 평생 내내 서재필은 그가 일본인이라는 오해를 반복해서 받습니다. 중국인이라는 오해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네요;; ) 



1895년 8월 17일에 또 하나의 기사가 있습니다. 필립 제이손이 50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흑인에게 도둑맞았는데, 이를 우연히 경찰 두 사람이 체포했다는 기사입니다. 기사는 기사대로 재밌기는 한데, 번역하기에는 너무 기니까 관심있는 분 직접 읽어보시고... 

재밌는 것은, 오백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의 존재입니다. 당시 노무자 한 달 월급이 삼사십달러 정도인 것 같습니다. 50달러면 지금 돈으로 사오백만원은 될 것 같습니다. 이 반지가 결혼 선물일지 또는 시집오면서 가져온 것일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매우 거창한, 고급진 물건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기사에도 서재필의 집은 신혼집과 같은 주소로 기입되어 있네요.  

흔히 서재필이 독립 병원을 개업하고난 이후, 인종차별 등의 영향으로 병원 영업이 잘 되지 않았고, 그 결과 어려움을 겪어 조선공사관에서 신혼생활을 할 만큼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의 두 개의 신문기사를 보고 난 느낌은... 그렇지가 않네요. 화이트하우스에서 몇 발짝 안 떨어진 노른자위 땅에서 살고 있고, 오십 달러 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집에 지니고 있을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 뭐 자기 돈이 아니라 처가집에서 빌려준 집일 수도 있고, 기타 등등 여러가지 상황은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가 당시에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다는 것은 박용규라는 조선인이 서재필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줬다, 공사관에 유숙하게 해줬다 는 등의 언급을 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상황으로 봐서는, 필립 제이손이 어디 돌아다니면서 아쉬운 소리를 많이 하고 많이 벌어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형편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 제 소설은 서재필이 형편이 어려워서 조선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썼습니다. 고칠 엄두 따위는 나지 않습니다 -_-) 

 


by 찬별 | 2015/08/23 17:12 | + 서재필 회고록 [팩션] | 트랙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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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암호 at 2015/08/23 23:58

제목 : 한국현대사에 영향을 끼친 스페인독감
서재필, 미국에서 결혼 전후의 살림살이 갑신정변 무대가 된 우정국이란 걸 생각하면, 3번째 재혼이 되는 처 생부는 다름아닌 초대 미 철도 우정국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역사라는 존재가 생명성을 가지고 있다는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듯 해서 포스팅을 올려 봅니다. 전에 모 과학소설 카페에 스페인독감 시기에 다른 전염병이 일본제국에 출현. 인구 비율을 바꾸는 바람에 공화정으로 전환된 대한연방이 출현되었다는 짤막한 잡 ......more

Commented by gvw at 2015/08/23 19:47
novel은 새로운이라는 뜻이고, enterprise는 business라는 의미도 되니 그냥 새로운 사업 정도로 표현하셔도 될 듯합니다. Microscopy는 미생물학(microbiology)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현미경학인 듯합니다. 현재는 사장된 분과라고 하겠네요. 마지막으로 "그의 양부는 J.E. 화이트 대령이고, 그의 친부는 철도우편국장이었다" 라는 부분의 원문을 보면 "...J.E. White, superintendent of the railway mail service..."인데 superintenent가 J.E. White를 수식하는 형태이므로 의미는 그의 양부는 철도우편국장인 J.E. 화이트 대령이다. 라고 번역하는 것이 올바를 듯합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15/08/23 21:17
댓글 감사합니다. 빨간펜 첨삭지도 받는 기분이네요 ^^;

novel은 제가 noble과 헷갈렸군요. 새로운, 이라고 하니까 말이 되는 것 같네요.

가운데의 microscopy는 애매하네요. 사장된 분과는 아니고 현대에도 있는 학문(또는 의학분과)입니다. 그런데 적합한 번역어가 없는 상태죠. 저는 이런 경우에 새로운 번역어를 만드는 것을 꺼립니다. 약간 의미의 왜곡이 있더라도 기존 용어 중 최대한 비슷한 말을 고르는 것을 선호합니다.

마지막은, 문장만 보면 이렇게도 저렇게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J E White와 철도우편국장은 다른 사람입니다. White는 양부, 철도우편국장은 친부이지요.
Commented by 가녀린 얼음요새 at 2015/08/23 22:54
찬별/

microscopy는 gvw님 제안대로 현미경학으로 번역하는 게 맞지 않나 싶네요. 세균학으로 번역하면 오역의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균학은 microscopy가 적용된 여러 분야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1898년에 출판된 <Medical Microscopy>라는 의대교과서의 목차를 보시면, 대충 어떤 분야였는지 감이 오실 겁니다.그야 말로 현미경 사용 및 적용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분야였지요. https://archive.org/details/medicalmicroscop00weth

뮤리엘의 양부를 소개하는 부분도 번역상으로 보면 gvw님의 지적이 맞는데, 만약, 찬별님 말씀대로 화이트 대령과 철도우편국장이 다른 사람이라면, 기사의 오류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번역은 원문 그대로 하고, 괄호 등으로 따로 기사의 오류를 지적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15/08/24 09:05
네, 이 상황은 조금 당황스러운 시츄에이숀입니다만...

- 세균학이라는 표현은 기존 서재필에 대한 우리말 번역서 류에서 읽었던 단어를 떠오르는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적합한 번역어는 아닙니다. 다만 현미경학 또한 좋은 우리말은 아닌 것 같네요. 현미경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니까요.굳이 새로운 말을 만들자면, 방사선의학, 영상의학 등의 조어법에 비춰 현미경의학 정도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두 분이 함께 지적하셔서 원문을 다시 읽고 천천히 생각해보니, 뮤리엘 암스트롱의 친부가 초대 철도우편국장, 양부 (J E White)가 2대 철도우편국장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제 실수가 맞습니다.
Commented by 암호 at 2015/08/23 21:34
오늘이 실미도 사건이 일어난지 44년이 되는데, 유한양행 당시 본사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유일한 회장이 보건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계기가 사실상 USA 독감인 스페인 독감을 발원지가 되는 미 중부에서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절박하게 느낀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필립제이슨도 세균학을 공부했으니, 청결하다는 미국이 실상 전염병 투성이라는 점에 심적으로 흔들려, 유일한 회장 모습에서 젊을 적 자기 모습을 본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15/08/24 09:07
네, 시기상으로 그런 연관성이 이어질 수도 있겠네요.
Commented by 언에일리언 at 2015/08/24 15:56
재미있는 기록이군요. 서재필도 윤치호처럼 일기 같은걸 남겼으면 더 재미있었을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찬별 at 2015/08/25 09:10
그러게요. 1920년까지는 정말 격동의 연속이라고 부를 삶인 것 같은데요.
Commented by ScrapHeap at 2015/08/26 21:15
제가 보기에는 첫 기사에서 'behind Mr. Evans' counter'에 있는 것은 'Mr. Jaisohn'이 아니라 'the enterprise'로 보입니다. 즉 '우리 마을의 수많은 제현들께서 아시옵는 바와 같이 코리아에서 건너와 한창 공부중인 해리 힐맨 아카데미의 학생 제이손 군이 웨스트 마켓 스트리트에 있는 에반스씨의 상점 내에서 상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 것이지요.

찬별님 설정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저 기사에서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상화를 따로 운영하는 수완가보다는 고국에서 가져온 물건까지 처분하면서 학비를 대는 고학생의 모습이 보입니다. 일본 수입품이라는 것은 서재필의 뻥 아닐까요? 조선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싹 정리하는 것이겠죠. 양키들이 조선 물건인지 일본 물건인지 알게 뭐겠어요. '상당수를 이미 팔았다'는 대목도 왠지 '품절 임박!'같은 상술로 느껴지고...
Commented by 찬별 at 2015/08/26 22:07
아, 그렇게 보이셨군요. 사실 저는 기사로는 그야말로 수완가라는 느낌이었어요. 조선에서 가져온 물건들은 할 수 있었다면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다 정리했을테고,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돈 필요하니까, 땅 짚고 헤엄치는 일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택한 것이 이 무역업 아닐까....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는 나름대로 사무용품 도매점으로 성공가도를 걷는데, 그것도 뭐 다른 건 아니고 그냥 상회, 즉 유통업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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