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0월말, 어느 평일의 휴식

물경 삼주간 주말내내 일하던 끝에 오늘은 잠시 휴식. 비공식적인 휴일이며, 전화대기+비상시출동+개인적용무의다른전화대기 등의 조건이 붙어있는터라 마음편하게 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간만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다니니 기분이 좋아졌다.

찍을 때는, 꼭 뽀샾해서 예술처럼 만들리라 생각했던, 빨간 담쟁이 덩굴들.



뚝섬 인근의 도로. 영동대교인가?
그리고 그 아래 새로 짓는 이상한 캡슐터널 같은 넘은
도대체 뭘 짓는건지 알 수가 없다.





예전에 아파트를 수식하는 말은 <인간미 없는 도시의 회색 콘크리트> 정도가 되겠다. 그 아파트가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 형태가 되었고, 그런 뒤로도 십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는 회색 콘크리트라는 말은 어폐가 되었다. 미래소년 코난의 인간형 로보트는 아직 안 나왔지만, 그들이 사는 도시는 이미 여기저기에서 지어지고 있다. 이 거대한 건물들을 볼 때면, 인간적/비인간적이라는 수식어가 아닌, 뭔가 다른 수식어가 필요할 것 같다.






한강 르네상스의 일환으로 지어진 뚝섬 수변공원은
그러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서울숲도 그렇고, 한강 공원도 그렇고, 그 주변의 어디도 그렇지만,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의 기계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상황에서는
꽃이든 나무든 평화를 주지 못한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끝에, 건대 스타타워 지하, 이마트 푸드코트에 있는 회전초밥 부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9,900원의 싼 값에 혹 해서 들어갔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생선이 없더라능... 빙빙 도는 접시 위에 얹힌 건 구운 오징어 아니면 계란 아니면 아보카도 대신에 오이를 넣고 딸기드레싱 같은 걸 듬뿍 뿌린 롤 같은 것들.... -_-;;

가끔 생선이 나오는데, 곁에 앉은 오십대 후반의 아저씨는 진짜생선회가 나온다 싶으면 바람같이 그것을 집어간다.




어쩌면 초밥의 진미는 생선초밥이 아니라 된장국에 있는지도 모른다. 구운 오징어 초밥, 계란 초밥 같은 것들로 두세 접시를 먹으며 일본식 미소된장국을 마셨을 때, 몸안 어딘가가 따뜻해지고, 마치 미지근한 술에 취한 듯 몽롱해지는 느낌. 그 느낌 때문에, 한 접시만 더, 한 접시만 더, 하면서 맛 없는 초밥을 씹다가, 무려 열한 접시를 먹고 말았다... 덕택에 저녁도 안 먹고 간단히 떼우는 중...

by 찬별 | 2009/10/28 20:36 | 잡담 | 트랙백 | 덧글(7)

최근 읽은 책 - 키노의 모험, 차폰잔폰짬뽕, 심야식당, 재밌는인생 등

무슨무슨 책을 읽었는지 영 기억나지 않는 와중. 짧게 기억 위주로.

1. 풀메탈패닉1,2 - 라노베인데, 딱 라노베 느낌으로 그럭저럭 재밌지만 허무하게 읽었다.

2. 키노의 모험 - 은철999와 이상한나라의폴은 언젠가 내가 한 번 써보고 싶은 이야기다. 키노의 모험도 나름 그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은철999 같은 깊이도 없고, 이상한나라의폴처럼 애잔하고 발랄한 느낌도 없다. 나른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너무 가볍다.

3. 차폰잔폰짬뽕 - 주영하의 신작. 아직 덜 읽었다. 로컬푸드에서 대안을 찾는다는데 그게 무엇을 위해서일까. 아무튼 그의 책을 읽으면서 늘 많이 배운다. 또한 늘 공부하는 작가라는 느낌이 든다.

4. 심야식당1,2 - 아주 재밌게 읽었다. 고양이맘마편은 애잔함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 흔히들 이 만화를 보는 사람은 집근처에 이런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많이 한다는데. 대학시절에는, 노년에 은퇴하면 대학가에다 이런 가게를 내는 것이 목표였던 적이 있다. 메뉴판에 아무것도 없이,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주는 막걸리집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혼자 밥먹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술이라도 팔작시면 오만 취객들의 땡깡도 들어줘야 되는 거 아닐까.

5. 빌브라이슨의 재밌는 인생 - 띠지에는 우리나라의 1970년대생인 이우일이, 20년 이상 옛날인 미국의 옛 모습에 자신이 동일시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소득이 비슷하냐는 것이 문제다. 우리의 칠십년대 후반은 아마도 미국의 수십년 전과 비슷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인터넷/휴대폰이라는 통신의 비약적 발전이 일어난 지금 시대는, 예전과는 쪼오끔 다르기는 하겠지만...

6. 몇 권 더 읽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주말 없이 일하다보니, 읽은 책 정리할 시간도 마땅치 않다. ;;;


by 찬별 | 2009/10/26 23:33 | 독서 (및 영화) | 트랙백 | 덧글(6)

자학개그

1. 인터넷에서 시작된 자학개그 코드의 최초 용어는 <엽기> 아니었나 싶다. 엽기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공포스러움과 연관되는 쪽이다. 그것이 엽기적인 그녀, 이어서 딴지일보 등을 통해 <무섭도록 골때리는> 등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엽기의 대를 잇는 말은 폐인 정도랄까. 디씨폐인은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폐인 대장은 최근 사기인지 뭔지 혐의로 구속되었나보더만은-_; 기본적으로 폐인은 자학개그다. 20세기에 폐인이라는 말은 날자날자날자꾸나 따위를 외치는 창녀 등쳐먹는 룸펜의 이미지, 또는 제발 약 한 번만 주시면 저는 남자지만 똥꼬라도 드리겠어요 굽신굽신... 따위의 이미지를 풍겼다. 하지만 21세기에 폐인은, 걍 퇴근하고 집에 오면 넥타이를 풀고 여고생 코스프레를 하는 평범한 청년.... 정도의 이미지 밖에는 풍기지 않는다.

폐인에 이어 오덕후, 된장스러움, 등의 말도 나왔지만, 자학개그의 임팩트로 치자면 <잉여>가 거의 최고봉이다. 존재 자체의 불필요함을 이렇게 한 단어로 뭉쳐주다니. 이런 말을 찾아내는 디씨 잉여들은 역시 천재야 흑흑. 그러나 여전히 잉여라는 말에서도 20세기스런 폐인에 비하면 그저 애교가 느껴질 뿐이다. 여학생이 프린트된 베개를 껴안고 븅가븅가를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본드에 취해 레이저광선을 쏘는 폐인형 청소년들보다는 훨씬 건전하지 아니한가.

2. 영국 소설의 비비꼬인 유머의 중요한 코드 중 하나는 자학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즐기는 스포츠인 크로켓의 지루함에 대해. 주구장창 마셔대는 홍차에 대해. 그들의 맛없는 요리에 대해. 사실은 해적이었을 드레이크경에 대해. 끝없이 농담한다.

그런 농담이 한국 소설에서 통할까, 를 생각해본다. 주영하의 신작 차폰짬뽕에서는, 일본 티비에서 본 조혜련의 오버에 대해 한숨을 쉰다. 내용인즉슨 조혜련이 시뻘건 김치찌개가 안 맵다며 고추가루를 마구마구 더 뿌려서 맛있게 먹는다는, 뭐 그런건데. 그 웃음의 코드라는 건 <한국인들은 무식하게 맵게 쳐먹어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만약 그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보여줬다면, 일종의 한국식 영국유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그 유머 속에 들어있는 비꼼을 보고도 한국인들이 참아낼 수 있을까?

3. 자학개그의 유행 수준은 국력과 정비례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영국식 유머도 있지만. 한국의 자학개그가 엽기, 폐인, 마침내 잉여로 다다르는 그 과정은 국가 전체의 경쟁력과 다르지 않다. 말마따나 1960년대의 가난은 굶어죽을 수도 있는 가난이었다. 2010년의 가난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폐인이니 잉여니 하는 지독한 수식을 붙여도 용서할 수 있다. 한편, 전통에 대한 집착 수준은 국력과 반비례하는 것 같다. 록불님의 주적인 환Q 들은 조금 예외겠지만...


by 찬별 | 2009/10/24 23:15 | 잡담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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